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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Dec 28. 2019

작은 것에 감동을 느끼는 사람

디테일에 집중하고 그 차이를 섬세하게 느껴보자

뉴질랜드 북섬의 수도 같은 대도시, 오클랜드를 여행하던 중이었다.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던 숙소에서 지내던 터라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 여행 전부터 구글맵에 표시해둔 여러 군데의 브런치 카페가 있었지만 직접 문 앞까지 가보니 연말이라 2020년에 돌아오겠다는 팻말뿐이었고, 그렇게 나는 세렌디피티 (serendipity), 즉 뜻밖의 기쁨을 찾아 오클랜드 High St을 거닐고 있었다.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카페는 바로 ‘The Shelf.’ ‘선반,’ 또는 ‘책꽂이’라는 의미의 단어를 카페 이름으로 삼은 카페에 들어서 보니 실제로 나무 책꽂이와 그 위에 정성스럽게 놓인 인테리어 소품들이 공간의 대부분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런 작은 섬세함이라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이 카페는 내 스타일일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무 책장이 인상깊었던 카페 내부 인테리어


천천히 메뉴를 스캔해보니 디저트류 베이커리가 많았다. 당근케이크, 바나나 머핀, 초콜릿 크루아상, 진저 쿠키 등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제빵류가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실 홍차 한 잔에 당근 케이크 한 조각을 먹을까 잠깐 고민하긴 했으나 식사류를 먹고 싶었던 나는 짠 (savory) 메뉴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에그 마요 샌드위치와 우유와 함께 서빙되는 얼그레이 차 한 잔을 주문했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 스러운 디저트와 샌드위치 진열대


카페 안을 조금 더 둘러보다가 생화를 예쁘게 담아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 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뭔가 생각 정리도 하고 끄적이고 가고 싶은 마음에 조명도 비교적 밝고 벽에 근사한 나무 액자가 걸린 자리가 마음에 들어 들고 온 짐을 내려두었다. 그렇게 잠깐 앉아서 기다리다 보니 벌써 내가 주문한 홍차와 샌드위치를 서빙해주셨다.


‘The Shelf’에서 주문한 에그마요 샌드위치와 얼그레이 홍차 (with milk)


가져다주신 음식이 너무 예뻤다. 나는 정말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좋아하는데 세부적인 요소에 신경을 써준 (attention to detail)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뭐 별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달랐다. 먼저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샌드위치가 너무 차가울까 봐 파니니 기계로 샌드위치를 한 번 데워주셨다. 그리고 얼그레이 홍차는 찻 잎에서 우러나오는 맛이 최상일 수 있도록 3분짜리 모래시계와 함께 가져다주셨다. 내가 올 초 커피를 끊은 이후로는 차를 정말 즐겨마시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잠깐 동안만 우려낸 티백이 아깝다는 생각에 마냥 우려 마시기도 했었다. (물론 그래서 차가 너무 써진 탓에 결국 다 마시지도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지만...) 그런데 이렇게 귀여운 모래시계랑 함께 차를 내어주시니 시간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그냥 은은한 얼그레이 향을 즐기면서 따뜻한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었다. 우유 온도 역시 차가 너무 식지 않도록 미지근한 정도로 준비해주셨다. 역시 디테일이 중요하다!

얼그레이 차와 함께 주신 3분짜리 모래시계. 나도 하나 사가고 싶었다. 좋은 티백은 시간 준수가 생명인데, 좀 더 디테일에 신경을 써봐야겠다.


잠깐 머물면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잠깐의 경험도 최대한으로, 완전하게 경험하고 싶은 것이 나의 욕심이고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삶은 그저 네모 칸에 체크 표시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싶은 마음이 욕심일까? 사실 물음표를 쓰고 있지만 이는 질문이 아니다, 내가 굳건히 믿고 있는 의견이자 주장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 (About Time)’의 주인공 Tim이 느꼈듯이 매일을, 일부러 그 날로 다시 돌아온 것처럼 (“as if you’ve deliverately come back to re-live the day”) 살아가기 위해서는 긴 호흡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고, 조급함보다는 여유를 도모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강요는 없다, 그저 내가 정의한 미덕이자 지혜에 대해 글로 풀어서 표현해보고 싶었다.


앞서 조심스럽게 언급했듯이 모두가 여유를 미덕으로 여길 거라고 감히 예상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개인이 각자 삶의 모든 부분에 대해 다른 생각과 고유한 정의를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개인이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을 비판하거나 폄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다르다는 건 누구의 잘못이나 귀찮음이 아닌, 우리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원동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배가 든든해지니 글을 쓸 에너지가 생겼다보다. 여행 와서 이렇게 마음에 드는 카페에 앉아 내가 그 순간 느낀 고찰에 대해 글을 쓰고 다니 마음이 더 평온해짐을 느낀다.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이를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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