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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급한뭉클쟁이 Sep 21. 2019

슈퍼밴드

함께 빛나기 위한 만남의 장

5월 초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비행기였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일찍 주무시는 부모님께서 TV 앞에 앉아한 음악 프로그램을 열렬히 시청 중이셨다. "진짜 너무 잘해, 완전 실력파야, 실력파."라는 어머님의 말씀과 어떤 프로그램이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시는 아버지께서도 "이번 프로그램만큼은 다르다"며 참가 뮤지션들의 실력을 칭찬하셨다. (나는 아쉽게도(?) 확인할 바가 없지만 "한때 기타 줄 좀 튕기셨다"는 아버지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듯한 기타 줄을 튕기셨다.)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이길래 그러시지?라는 의문이 나를 TV 앞 소파 한 구석에 자리 잡게 했고, 그렇게 나의 '슈퍼밴드 입덕'이 시작되었다.


JTBC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인 "슈퍼밴드"는 "숨겨진 천재 뮤지션을 찾아 최고의 조합과 음악으로 만들어질 슈퍼밴드를 결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존 음악 프로그램이나 오디션 프로그램과 차별화되었던 건 본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음악적 '커리어 (career)'를 시작하려는 일반인이라기보다는 이미 본인의 음악적 스타일과 장르를 갖고 있고, 프로듀싱 실력을 보유하고 있거나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뮤지션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최종 우승자는 함께 참가했던 팀이나 개인이 아닌, "슈퍼밴드"라는 '만남의 장'에서 새롭게 꾸려진 "밴드"가 되는 것이다. 방송 자체에서도 누누이 설명하고 강조했듯이 '슈퍼밴드'의 우승자는 "어감에서 느껴지는 '록 밴드' 같은 특정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으며, 최종 우승팀의 인원수 역시 미정"이었다. 그저 참가자들이 음악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날 수 있는 '판'을 제공함으로써 (실제로 방송에서 각 참가자에게 '음악적 이상형'을 물어보고 나중에 그 이상형 소개서를 회고적으로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부분이 정말 인상 깊었다.) 상상 못 할 시너지 효과로 새로운 밴드의 탄생과정을 볼거리로 제공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시청자는 물론 제작진도 슈퍼밴드가 어떤 형태의, 어떤 장르의, 그리고 어떤 멤버로 구성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는데 그 "예측 불가함" 자체가 "슈퍼밴드" 프로그램의 묘미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자 그렇다면 다시 제주도 가족 여행 전 날로 돌아가 보자. 필자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날은 5월 4일로 "슈퍼밴드" 4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이 글에서 모든 참가자를 소개하기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으니 바로 이름을 언급하자면 그 날 방송에서는 아일팀, 케빈오팀, 벤지팀, 안성진팀, 그리고 자이로팀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엄마 아빠 옆에 앉아 음악 방송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랜덤 (random)'한 팀 조합을 통해 구성된 '밴드'가 어떻게 이렇게 '고퀄 (High-quality)' 무대를 선보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었다. 분명 순서가 밀려 밴드 구성에 고생을 한 팀도 있었고, 연습 시간이 부족하거나, 밴드 스타일 합주가 낯설어 어려워하는 뮤지션도 있었다. 하지만 합주 연습 기간을 거치고 음악적 교감을 통해 그들은 매번 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프로그램 진행 상 누구 팀 대 누구 팀 해서 다섯 명의 심사위원 중 더 많은 표를 얻은 팀 구성원만 전원 다음 라운드 진출이고 나머지 진 팀의 멤버들은 이번이 "마지막 무대일 수도 있다"는 '내러티브 (narrative)'였는데 이 점이 너무 아쉽고 가끔 화나기도 했다. (정말 탈락할 멤버가 없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가끔 독창성과 창의성보다는 밴드를 구성할 때 '유용한' 악기나 프로듀싱 실력을 겸비한 참가자들이 이러한 경연에서 더 안전하다는 느낌도 받았는데, 일단 이런 '느낌'은 아무개 시청자 한 명의 시청 소감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야겠다.


무엇보다 JTBC의 "슈퍼밴드"에 대해 가장 마음에 들고 감사했던 건 다음날 (그러니까 금요일 저녁 방송 후 다음날 토요일) 정 오면 음원이 '풀린다'는 점이었다. 맙소사... 물론 가끔씩 정말 마음에 들었던 무대였어도 제작권 문제 때문에 음원으로는 감상할 수 없는 곡도 있었지만 대부분 매주 금요일 필자의 심금을 울렸던 무대의 음원은 전부 다 음원으로 공개되었다. (그래서 필자의 플레이리스트 스트리밍 회수를 보면 장난 없다.) 덕분에 필자는 제주도 가족여행 중 해안도로를 달리며 우리 가족의 DJ가 되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노래를 열심히 선곡했고 역시나 반응은 좋았다. 제주도 여행 후에도 금요일마다 가족과 함께 "슈퍼밴드"를 챙겨보며 각자 "최애" 뮤지션을 응원하고 함께 음악을 감상하곤 했는데 이렇게 음악을 통해 부모님과 교감할 수 있어서 더 행복했다. 그래서 "슈퍼밴드" 방송 기간 동안엔 부모님과 대화할 내용도 늘어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마음에 마음의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최종 파이널 라운드 방송 날엔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유료 문자 투표까지 함께 했다. 가족 ID를 총동원해서 사전 온라인 투표까지 열심히 참여했고, 결국 필자의 '최애' 팀이 우승할 수 있었다! 호피 폴라 파이팅!)

방송 다음날 ‘풀린’ 슈퍼밴드 음원들을 열심히 모아 만든 플레이리스트
공연 다닐 때마다 우승팀 ‘호피폴라’ 팬임을 인증했다

누군가 왜 필자의 '최애'가 '호피 폴라'인지 (라고 쓰고 하현상이라고 읽으시면 됩니다) 묻는다면... 우선 필자는 좋은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런 음악에 대해 알 수 있는 원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음원 차트에 의존하거나 광고 음악, 또는 영화 OST를 즐겨 들었는데 그런 필자에게 "슈퍼밴드"는 '좋은 음악 집합소, ' 즉 '좋은 음악 소개서'와 같은 방송이었고, 덕분에 필자의 플레이리스트는 훨씬 더 풍부해졌다. 많은 참가자들이 1 라운드 때 '커버 (cover)'한 곡부터 밴드 음악으로 멋지게 탈바꿈하여 무대에서 선보이기까지 다양한 음악이 소개되었는데 그중 매번 필자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었던 무대는 모두 뮤지션 하현 상의 무대였다.


하현상은 겉으로 보기에 연약하지만 음악적 감성과 내공은 본인의 확고한 스타일로 꽉 차있을 것만 같은, 음악적 "외유내강" 스타일의 뮤지션이다. 1라운드 때 커버했던 '코다라인 (Kodaline)'의 "All I Want"부터 슈퍼밴드 무대 영상 중 조회수 1위를 자랑하는 "Viva La Vida" 무대, 그리고 나중에 찾아본 영상 중 영화 "싱 스트리트 (Sing Street)"의 "To Find You"와 '데미안 라이스 (Damien Rice)'의 곡들을 직접 부른 하현 상의 노랫소리는 진심으로 필자의 심금을 울렸다. "슈퍼밴드"에서도 심사위원 윤종신은 그의 노래를 들은 직후 "어떤 음악을 하려는지 딱 알겠다"라고 말했는데 필자에게 그 정도의 경험적 판단력은 없지만 그의 노래와 음악 활동을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응원하게 될 거라는 점을 일찌감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나 SNS 라이브 방송에서 매번 본인에게는 다양한 모습이 있고, 특정 모습을 숨기거나 더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마저 본인의 참모습인 거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철학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매번 완벽할 수 없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기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선택들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가려는 듯한 그의 답변에 필자는 공감할 수 있었다.

부산 록 페스티벌 공연 무대와 (왼쪽) 썸데이페스티벌 공연 무대 (오른쪽)
대구 콘서트 공연 때 담아온 너무 멋진 호피폴라 단체샷

이렇게 "슈퍼밴드"에 입덕 하고, 특히나 하현상을 좋아하게 되니 처음으로 공연을 보러 (문화활동을 하러!) 전국을 누비게 되었다. 먼저 2019년 부산 록 페스티벌에 슈퍼밴드 우승팀이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7월 말 친한 친구와 여름휴가 장소로 부산으로 택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언니와 함께 한강 난지공원의 '섬데이 페스티벌'에 가서 슈퍼밴드의 '호피 폴라, ' '퍼플레인, ' 그리고 '케빈 오 밴드 (애프터문)'의 공연을 보러 갔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막을 내린 "슈퍼밴드 전국 투어 콘서트"의 마지막 공연인 대구 공연에 가서 (막차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티켓팅 성공의 기쁨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전국 투어 콘서트는 참가자 조원상이 2라운드 때 프로듀싱했던 콜드플레이의 "Adventure of the Lifetime"를 전원 합주 형태로 재구성한 오프닝 무대가 정말 정말 최고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6-7분 동안 온몸에 닭살이 돋았었다. 개인적으로 하현상을 가장 좋아하지만 "슈퍼밴드" 참가자들의 음악과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슈퍼밴드 진리의 공연 Coldplay의 “Adventure of a Lifetime” 오프닝 무대... 아직도 전율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슈퍼밴드" 방송이 종영한지도 두 달이 지났다. 올여름 내내 좋은 음악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프로그램이었는데 덕분에 문화생활에도 재미가 들려 전국을 누비며 공연장을 찾을 수 있어서 더 의미 있었다. 하지만 필자의 최애 음악 프로그램에도 분명 아쉬움이 남는데, "슈퍼밴드"에서 여성 대표성 (Female representation) 이 많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1라운드 때부터 참가자 지원 기준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필자가 알 방법이 없지만 참가자 중 여성 아티스트, 뮤지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사위원인 악동 뮤지션의 수현을 제외하고.) 참가자들이 음악적으로 교류하고 성장하면서 서로 응원하고 그 '브로맨스 (Bromance)'를 실컷 감상할 수 있어서 감동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서 지향하는 "음악적 동반자를 만날 수 있는 '판'"이야말로 뮤지션들에게 정말 필요한 환경이자 기회일 텐데 너무 남성 아티스트에게만 기회가 가지 않았나 라는 의문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 남기도 했다. '슈퍼밴드'라는 결과물, 세상에 없던 음악의 탄생 과정, 그리고 국내 실력 있는 음악 천재들이 밴드를 이루며 어떤 성장과정을 거치는지 직접 볼 수 있어서 너무 재미있고 뭉클했지만 "슈퍼밴드"가 시즌 2로 돌아온다면 참가자의 다양성까지 고려하는, 조금 더 포용성 높은 프로그램으로 돌아온다면 더더욱 멋지고 감동적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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