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가는 당신을 위한 권성민 PD의 에세이 <서울에 내 방 하나>
진로 고민을 끝냈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지만 결심은 내렸다. 내가 잘하는 일보단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잘 먹는다고 어른들이 떠먹여 주는 떡을 계속해서 받아먹기엔 내가 좋아하는 떡은 언제 먹을 수 있으려나 싶은 마음이 들어 내린 결정이다. 당장은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만 서서히 이런 마음을 호기심과 설렘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플랜 B, 플랜 C 등을 세우고 결심을 내렸을 것이다. 울타리에서 다음 울타리로, 우물에서 옆 우물로 한 발자국 씩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내가 구체적인 미래 진로 계획보다 방향성에 대해 먼저 결심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온 것이 머쓱할 만큼 결론에 대해 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아마 마음속 결심을 내린지는 꽤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면서도 괜한 기회비용들, 즉 결정했을 때 잃게 될 것들만 눈 앞에서 확대되며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나 보다.
거듭 반복해서 강조해봤자 본인만 더 불안해지겠지만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없는 게 현재 상황 (status quo)이다. 하지만 몇 가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꿈꾸고 있는 방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독립이다. 독립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물리적 독립일 수도 있고, 심적 독립일 수도 있고, 경제적 독립을 뜻할 수도 있다. 몇 가지 더 나열해볼 수 있겠지만 핵심은 그 어떤 종류의 독립이든 그렇게 해내고 싶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기숙사 학교에서 6년 동안 공부하면서 개인의 공간, 즉 나만이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네 방향의 벽'이란 내 삶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불평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인생에서 나만큼 나를 잘 아는, 둘도 없는 룸메이트 친구를 사귀었고 우리가 서로 느끼는 유대감과 연대감은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이십 대 초중반을 그녀와 함께 나눈 것에 대해서 단 1%의 후회도 없다. 하지만 서로 이십 대 중반을 지나 인생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성장하면서 개인의 공간에 대한 갈망이 커져갔고, 이런 갈망 역시 함께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해주면서 각자 졸업 후 삶을 그리곤 했다. 계속해서 공동체의 규칙에 맞춰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엔 해소되지 못한 갈증이 크게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곧 시작될 내 삶의 새로운 단계 (phase)에서 어디에서든 "내 방 하나"라는 공간을 꿈꾸게 되었다.
이렇게 따끈따끈한 진로 결심을 내린 주말. 서점에서 뜻밖의 우연으로 내 눈길을 사로잡은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되었다. 제목 <서울에 내 방 하나>라니. 이렇게 시의적절한 책과의 만남이 또 있을까? 온라인 서점이 참 편리하긴 하지만 내가 오프라인 서점을 절대 포기하기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세렌디피티 (serendipity)', 낭만적인 우연의 순간 속 마주하게 될 책이 내 인생의 큰 선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내 인생의 조물주가 "옛다 지금 한 번 읽어봐라"하고 선물을 건네는 듯한 뭉클함이다.
운명적인 만남 끝에 펼치게 된 <서울에 내 방 하나>는 권성민 PD의 두 번째 에세이집이다. 부제는 "손 닿는 만큼 어른이 되어가는 순간들"이다. 언제쯤 불확실한 삶의 요소들이 안정기에 접어들며 어른이 되는 건지 궁금해하면서도 많고 많은 책임감을 짊어져야 하는 어른이 절대 되고 싶지 않은 내게 직접 속삭이는 듯한 구절이었다. 매일 마음이 바뀌고 큰 결정을 앞두고 "산들바람에도 세상이 막막해지는" 시기를 거치며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왠지 이번 에세이집이 나에게 명확한 답을 줄 수는 없어도 큰 위로를 줄 것 같았다.
우연히 만난 책이지만 읽다 보니 작가님의 글이 내가 좋아하는, 내가 추구하는 온도랑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읽는 내내 정말 기뻤다. (작가님 MBTI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유독 작가님과 주파수가 맞다고 생각했던 건 둘 다 좋아하는 요소가 자주 겹쳤기 때문이고, 그 좋아하는 뭉클함에 대해서 풀어쓴 감정이 내가 느낀 것과 비슷했기 때문인데, 첫 번째 취향 겹침은 바로 '책'이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한다. 공격적으로 짧은 시간에 여러 권의 책을 읽어 나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한 날은 에코백 안에 꼭 한 권씩 넣어서 다니는 책을 꺼내 읽고, 항상 읽고 싶은 책이 많아 독서 리스트가 주기적으로 길어지며, 가끔 책 욕심이 과해서 책을 사놓고 바로 읽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독서인이다. 이런 죄책감을 위로하듯 권성민 작가님은 누군가의 책장, 누군가의 읽을거리 취향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사람들의 소소한 취향이 보이는 순간이 좋다. 그런 취향 중에서도 제일 눈길이 많이 가는 건 단연 책이다. 약속 장소에 미리 나온 지인이 책을 읽고 있으면 무얼 읽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평소에 밖을 나가면 꼭 책을 한 권씩 넣어서 다니는 사람인 듯 가방 사이로 비어져 나온 책 귀퉁이를 발견했을 때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책이 그 사람 안에 흘려 넣은 이야기들이 듣고 싶어 진다. 취향이 생긴다는 건 독립적인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책장에서 취향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을 사놓고 안 읽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원래 책은 '사놓은 것 중에 읽는 거'다. 설령 사놓고 아직 못 읽었더라도 책장에 꽂혀 있고 목차만 훑어봐도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졌고 생각의 방향을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책은 읽으면 됐지 왜 자꾸 사냐. 비용도 공간도 낭비라며 한소리 하거나 나아가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여러 권 사는 것을 허영이라며 조롱하기도 왕왕하지만, 사실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생각과 기억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심지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일수록 눈앞에 실물이 없으면 내가 뭘 읽었는지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책 선물에 대한 견해도 공유했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제일 피해야 하는 것은 책 선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선물을 매력이 있다"는 말 역시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개인 SNS에 책 선물에 대해 후기글을 썼던 적이 있다. 막상 본인은 소심한 마음에 책 선물도, 추천도 어려워하지만 내가 받는 건 최고로 좋아한다는 내용이었다. 책 선물이 얼마나 고심 끝에 가능한 일인지도 잘 알고, 책을 통해 추가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더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도 큰 재미와 기쁨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책 선물을 고려할 때 ‘소심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것이 정말 어려운 일임을 잘 알기 때문인데, 취향을 잘 모를 수도 있고, 내가 읽었을 때 큰 울림과 감동을 느낀 대목이 상대방에겐 그저 그런, 진부한 구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게다가 너도 꼭 읽어보라는 은근한 압박은 선물을 건네는 따뜻한 마음과 의도와는 상관없이 ‘꼰대'같을 수도 있다.) 낭만적인만큼 분명 위험요소가 따르는 책 선물이지만 이는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세심하게 관찰해주었는지 알 수 있는 척도라고도 생각했다. 상대방이 어떤 지적 또는 감성적 자극을 좋아할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위로와 깨달음의 구절이 필요할지 등에 대해서 잘 생각해보아야 성공적인 책 선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선물을 받으면 새로운 읽을거리가 생겼음에 기쁘고, 책을 읽는 과정 내내 선물한 자와 지적 연대가 가능해서 그 또한 큰 기쁨과 뭉클한 감동 요소가 된다. 이렇게 생각했던 내 마음을 미리 알았는지 권성민 작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에게 뭔가 선물할 일이 있을 때 제일 피해야 하는 것은 책 선물이다. 물어보고 사주는 건 해당 사항이 아니다 (선물 같은 느낌이 영 없기 때문, 그럴 거면 도서상품권을 주고 말지.) 책 선물이랑 자고로 추천을 겸하여 은근히 내 취향을 태워 보내는 묘미가 있어야 한다. 잘만 성공하면 두 사람 사이에 괜찮은 얘깃거리도 생기면서 꽤 진득한 공감대를 만들 수도 있다. 게다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겐 이미 읽어야 할 목록이 최소 다섯 권 이상 쌓여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업무처럼 의무로 읽어야 하는 책이 항상 있어서 읽고 싶은 책 순서는 자꾸 뒤로 밀린다. 의무 독서를 빨리 끝내고 유희 독서로 넘어가고 싶은데, 그 사이에 또 다른 의무 독서 목록이 추가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선물은 매력이 있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책을 읽노라면 문득 그의 얼굴이 스쳐가는 순간들을 만난다. 분명 이 구절 때문에 이 책을 마음에 품었을 거야, 확신이 들면 괜히 웃음이 난다. 책은 저자가 망망대해에 띄워 보낸 병 속에 담긴 편지였다가 수신인이 분명하게 나로 적힌 등기 우편이 된다. 책은 저마다 부르는 시기가 있으니, 앞선 목록들 사이로 새치기하는 일도 왕왕 벌어진다. 달리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겠는가. 좋은 책이라면 언제나 독서대 펼치고 환영이지. 내 얘기다.
두 번째로 겹치는 취향은 '글쓰기'다. 나 역시 막연하게 '글공부'가 하고 싶어 미디어학부, 언론정보학과 사이트를 뒤져보던 학창 시절을 보냈었다. 권성민 작가님은 끝까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게다가 재미까지 느껴 실력까지 쌓은 케이스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직업이 무엇이든, 전공이 무엇이든 개인으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기록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 역시 작가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글이 되지 않은 생각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다 기화하지만 한 번 글로 남긴 생각은 다시 읽어보지 않아도 오래도록 기억난다."
기억을 위한 기록도 중요하지만 '정리'를 위한 글쓰기는 더욱 그 목적이 분명하다. 나 역시 생각 정리를 위해, 내 사고 과정을 좀 더 직접적으로 느껴보고 그 과정 속에 숨어 있는 해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쓴다. 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 내가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그제야 새롭게 깨달음을 얻은 듯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과 비슷하다. 이미 내 머릿속 깊은 곳에 '답' 또는 '결심'은 존재했지만 그것을 끄집어내어 글로 풀어써야만 내가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정돈된 생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글쓰기는 우리의 삶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중고등학생 때도 6년 간 매일 다이어리 속지를 채워나갔던 경험이 있다. 대학생이 되고 그런 습관을 이어나가지 못했는데 올 해는 수도 많고 복잡하기까지 한 진로 고민을 앞두고 본인의 생각과 과정을 정리하기 위해서 매일 짧지 않은 분량의 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데 분명 도움이 되고 있다. 이번 글의 첫 문장과 같이 "진로 고민을 끝냈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것도 일기장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공통점은 작가님 역시 이것저것 많이 하며 본인을 바쁜 상태로 유지한다는 점이다. 삶의 방식에 있어서 좋고 나쁨,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비슷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권성민 작가님 역시 본인의 "바쁨"에 대해 고백했다.
나는 그다지 여유를 즐기는 성격이 아니다. 늘 해야 할 일을 잔뜩 끌어안고 있다. 그중에는 굳이 꼭 안 해도 되는데 나서서 만든 일이 적지 않다. 짬이 안 날 때는 본업과 상관없는 무언가를 만든다. 그것도 아니면 글이라도 써야, 책이라도 읽어내야 시간을 허비하지 않은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삶에 여백을 잘 두지 않는다. 여백이 생기면 조바심이 돋는다. 썩 바람직하지 않은 습관인 건 알지만 습관은 습관이 되어버린 순간부터 내 마음대로 안돼서 습관이다.
나 역시 여유를 즐기지 못한다. 무엇이든 몰입해서 하는 것이 좋고 To-do list는 꾸준히 업데이트되어 한 번도 말끔했던 적이 없다. 혹시라도 본업에서 잠깐 일이 마무리되어할 일이 없어도 위에서 언급했듯이 독서를 하거나 다이어리를 쓴다. 둘 다 이미 읽고 썼다면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보고, 이미 다 본 내용이라면 좋아하는 시트콤을 틀어놓고 '홈트'를 한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주변 모든 체력단련실이 문을 굳게 닫고 있어 선택한 마지막 운동 수단인데 나름 꾸준히 하다 보면 몸의 변화는 느끼기 어려워도(?) 재미있게 운동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님은 "필라테스 하는 남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큰 근육보다는 세심하게 힘을 길러낼 수 있는 운동을 선호하고, 그래서 필라테스를 2년째 꾸준히 하고 있다고 소개했는데 나의 경우엔 요가다. 지난 2년 반 동안 꾸준히 요가 수련을 받았는데 처음으로 내가 즐거워서 꾸준히 하게 된 운동이다. 요가를 '운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누가 뭐래도 상관없다. 내가 수련하면서 흘리는 땀과 근육 단련, 마음의 안정은 그 어떤 '데드'나 '벤치' 그리고 '삼대 몇'의 수치로 감히 가치를 논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몸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가 받아야 하는 관심을 다 받아내고야 말고, 평소에 골고루 주느냐, 아니면 한 번에 몰아서 주느냐가 다를 뿐"이라는 작가님의 말과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취미생활 역시 바쁘게 습관화하며 "운동 없이는 죽음뿐"이라는 깨달음에 차근차근 체력을 단련해나가는 작가님의 모습, 그의 "취향 확실함"에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한 가지 "공감 요소" 라기보다는 정말 좋았던 구절을 소개하고 싶은데 이는 '행복'에 관한 가치관이다. 나 역시 힘든 날이 잦아질 때면 주변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는 깨달음에 빠져 지내곤 한다. 이토록 쉽지 않은 삶 속에서 원동력 삼을 수 있는 것은 "내 사람"들과의 기억 (memory)뿐이라는 삶의 진리.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선 행복 그 자체를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닌 내 친구들, 내 가족,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행복한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권성민 작가님 역시 비슷한 성찰을 공유해주셨다.
사실 사는 데는 따로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라기보단,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 아닐까. 행복하기 위해 산다기보다는, 삶을 행복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는 것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고 그 속에 빛나는 행복의 순간들이 알알이 박혀 있기 때문에 계속 살아낼 수 있는 것 아닐까. 삶을 행복으로 가득 채울 수는 없어도 곳곳에 박혀 있는 행복의 순간들이 우리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완벽한 세상을 만들긴 쉽지 않아 보여도 그런 세상을 향해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이들이 도처에 알알이 박혀 있어 살아갈 힘을 얻으니.
그렇다. 행복의 순간들이 박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다. 주변 사람들과 겸손하게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에 잘 알고 있는 듯한, 최소한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듯한 작가님의 글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혼자 사는 것의 좋은 점, 편안함은 숨을 쉬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이치라는 말과 함께 개인의 자유를 충분히 내어주는 것으로 '독립'의 끝을 장식하는 작가님의 에세이집 구성이 참 인상 깊었다. 마지막 장 <휴일의 감각>에선 작가님이 얼마나 '혼자'임을 좋아하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합을 통해 더 많은 행복의 순간을 쌓아나갈 계획을 갖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챕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가 좋다. 혼자여도 괜찮다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향긋한 마실 것을 사이에 두고 삶이 풍성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은 견줄 것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을 애를 써야 하는 일이다... 비혼 주의자가 아닌 이상, 자립의 계단 가장 끝에 올라가면 결혼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삶의 편안함은 자연히 결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서로 아무런 접점 없이 20년 넘게 살아온 타인과 어느 순간부터 평생 함께하기로 결정한다. 그 순간부터는 어떤 것도 혼자 결정할 수 없다. 서로의 허기에 맞추어 배를 채워야 한다. 자고 깨는 시간이 서로 다를 수는 있어도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잠자리에 누워 있다는 것을 늘 의식해야 한다... 그러나 결혼은 내가 선택한 상대와의 연합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삶을 기꺼이 점유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결혼은 서로의 자유를 충분히 내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 역시 비혼 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상상하고 꿈꾸는 "자립의 계단 가장 끝"에는 "결혼"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생의 다음 단계로 '독립'을 꿈꾸고 있는 나에게도 가장 큰 감동을 주는 구절이었다. "역설적이게도 홀로 단단하게 설 수 있으려면 넉넉하게 품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과 더불어 연인과 사랑에 빠졌을 때, 서로 선택한 상대와의 연합이 아름다운 약속의 형태로 삶에 변화를 불러오는 그 과정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마지막 공감의 온도는 "겸손함"이다. 감히 본인이 겸손한 사람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스스로의 겸손을 주장하는 일 자체가 겸손하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역시 주변에 감사하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기쁜 일과 성취가 잇따르는 날들을 마주하게 되어도 "꽃이 피었을 때 비로소 뿌리가 해온 일을 목도하는 것처럼, 인생의 커다란 이벤트들이랑 오랫동안 나를 만들어온 양분이 무엇인지 확인하게 해주는 개화의 순간"을 맞이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진정한 '독립'이란 내 성장에 자양분이 되어준 주변 소중한 사람들의 노고를 알아보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부끄럽지만 조금씩 그 마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표현하려는 노력의 용기가 아닐까. 힘겹게 진로의 방향성을 갖게 된 이번 여름, 어디든 내 방 하나를 갈망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돌봄과 사랑을 있는 힘껏 느껴낼 수 있도록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의 힘으로 단단히 서있을 수 있는 만큼 누군가를 품어낼 수 있는 힘 역시 길러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