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한 자취 일기

스물일곱, 첫 자취를 시작하다

by 성급한뭉클쟁이

환경과 진로, 그리고 인간관계로부터 많은 숨 막힘을 느꼈던 2020년.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이로 인한 일상 속 제한들을 몸소 겪어내다 보니 답답함이 증폭되는 한 해를 보내게 되었다. 수많은 고민을 차례대로 해결할 수 있는 속 시원한 해결책을 마련하진 못했지만 당장 나의 몸과 마음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최상의 해법을 찾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취다!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브런치 프로필과 앞서 발행했던 글에서 자주 언급했듯이 필자는 현재 연구실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대학원생이다.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작년 12월 석사 졸업을 무사히 마치고 박사 입학을 앞두고 있는 공학도이다. (이렇게 표현하니 뭔가 거창한 것 같지만 일상생활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저 열심히 실험하고, 논문 읽고,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동료들과 협업도 잘하면서 본인의 연구 실적까지 잘 쌓아 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기에도 벅찬 일개 대학원생일 뿐이다.) 하지만 주어진 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본성 대신 항상 “내가 이 길을 왜 걷고 있는지” 명확한 이유를 찾고 싶어 했던 필자는 현재 본인이 걷고 있는 “과학”의 길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감을 느꼈고 이런 본성 때문에 석사 과정 내내 스스로를 혹독하게 고생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아... 아까운 내 청춘의 멘털이여...


서론이 길어졌는데 사실 요지는 간단하다. 당장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뜬 구름 위 새로운 진로를 찾아 나서는 대신 당장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좀 더 감사히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지금의 진로 역시 과거의 내가 선택하여 걷고 있는 길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엄청난 합리화를 필요로 하진 않았다. (다만 지금의 이 곳이 아닌 다른 어떤 행선지로든 떠나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내비친 주변 지인들에게 민망할 뿐이었다. 머쓱함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고.)


따라서 현재 본인의 여정을 부정하는 대신 매일을 즐기고 답답함을 해소하여 일상생활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자취를 결심하게 되었다! 학부생활부터 석사 생활까지 총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나의 동거인이자 베스트 프렌드인 룸메이트와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bittersweet) 이별을 겪게 되었고 운이 좋게 2021년 새해의 시작을 새롭게 마련된 나의 공간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대전에 내 방 하나”가 생긴 것이다!


자취를 시작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논점과 일화, 느낀 점과 ‘TMI (Too Much Information)’이 너무 많아서 자취 일기를 시리즈 물로 연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 간단하게(?) 몇 가지 좋은 점에 대해서 마음껏 자랑해보자면 내 공간을 관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크다는 점이다.


우선 내 로망을 실현할 수 있었다. 작은 기숙사 방을 친한 친구와 나누어 사용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제약 조건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만 벼르고 있던(?) 자취 버킷리스트가 몇 가지 있었는데 요리와 홈트레이닝, 그리고 아침시간 활용이다.


앞서 발행됐던 글에서도 자주 언급했듯이 나는 ‘클린’한 입맛을 갖고 있다. 과일과 야채를 좋아하고, 내가 섭취하는 음식의 영향소 균형에 대해서도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굳건하기 때문에 꼭 체중감량을 목적으로 하는 ‘식단 관리’가 아니더라도 양질의 단백질을 챙겨 먹고 충분한 채소와 섬유질을 챙겨 먹어 건강을 유지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취사가 불가한 기숙사에서 요리는커녕 마땅히 밥을 챙겨 먹을 공간도 마련되어있지 않아서 외식이 잦았고 약속이 없는 날은 시리얼과 닭가슴살로 식사를 대신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도 체중은 줄지 않았던 것도 좀 미스터리다. 역시 그만큼 균형 잡힌 생활습관이 중요한가 보다.) 어렸을 때는 따뜻한 국과 밥, 다양한 반찬을 챙겨주셨던 어머니 덕분에 집밥에 대한 입맛이 굉장히 고급화되어있는데 기숙사 생활 중 식생활이 가장 어렵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부엌이 있는, 심지어 인덕션 (Induction) 이 두 개나 있는 취사 공간이 생기 고나니 이번 달 지출의 반 이상은 장보기에 소비하게 되었다.

빵을 워낙 좋아하는 필자는 아침이나 저녁을 무겁게 먹은 날엔 간단한 빵식을 좋아한다! 빵식의 최대 장점은 음식물 쓰레기가 간소화 된다는 점도 있다.
낫또와 아보카도, 그리고 명란젓을 준비해두면 언제든 맛있는 덮밥을 먹을 수 있다! 마법 소스 참기름은 필수! 그리고 따뜻함을 위해 멸치다시팩 도움을 받아 된장 배춧국에 도전했다.
참치와 스위트콘에 마요네즈는 맛 없기 힘든 조합이었다.
첫 자취에 신이나서 친구들을 초대해서 요리를 해먹곤 했는데 다소 심심한(?) 맛이었지만 맥주와 잘 어울렸던 떡볶이, 그리고 이것 저것 빵에 올려 먹는 브런치 메뉴를 따라해보았다.
SNS에서 핫한 백종원 선생님의 구운계란카레 (왼쪽) 그리고 명란 오일파스타를 (오른쪽) 만들어서 어머니께서 선사해주신 부라타 치즈와 함께 먹으니 꿀맛이었다.
워낙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라 투자해서(?) 비싼 과일도 잘 챙겨먹고 있다! 아침은 동료들과의 점심을 위해 가볍게 먹는데 아침 과일식도 좋은 것 같다.

1월부터 자취를 시작하며 구글닥으로 가계부를 쓰고 있는데 (내 통장 눈감아...) 스스로의 행복과 ‘웰빙 (well being)’을 위해 너무 많은 투자를 하는 걸까 싶긴 한데, 이런 일말의 죄책감은 “이 모든 것이 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라는 간단한 합리화로 증발시킬 수 있다.


나의 공간이 생기고 홈트레이닝도 꾸준히 해내고 있다. 필자는 요가를 좋아해서 꾸준히 요가 수련에 다니고 있었는데 코로나 19가 수련의 뭉클함을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혼자서라도 몸을 풀어가는 방법을 도모하려 했지만 좁은 공간에서는 역시나 쉽지 않았는데 자취를 시작하며 무려 90cm짜리 폼롤러와 요가매트를 장만했다! 이런 습관은 내가 아침 시간 활용을 즐긴다는 점과도 연결되는데 일찍 일어나서 스트레칭도 하고 폼롤러로 뻐근한 어깨와 등을 풀어가니 장시간 실험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는 거짓말이지만, 예전보단 통증도 많이 나아졌다). 아침 시간에 스트레칭도 하고 간단히 챙겨 먹고 JTBC <아침&>까지 챙겨보고 출근하면 하루 종일 에너지가 가득한 느낌이다. 그리고 아침 시간을 활용하여 충전했던 에너지가 방전될 즈음엔 집으로 돌아와 건강하고 든든하게 챙겨 먹고 틈틈이 좋아하는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게 되었다. 이 역시 하루를 개운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소중한 루틴 (routine)으로 자리 잡았다.

자취를 시작하고 가구가 마련되기도 전에 주문한 폼롤러와 요가매트! 나에게 정말 소중한 시간을 안겨주고 있는 아이템이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나의 ‘프로페셔널 (professional)’ 한 활동 영역과 (sphere) ‘퍼스널 (personal)’한 영역이 잘 분리되었다는 점이다. 학교 특성상 전교생이 교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덕분에 친구들과의 깊은 유대감과 추억, 그리고 편리성을 얻게 되었지만 모든 일엔 일장일단이 있듯이 불편한 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모두가 학교에서 생활한다는 이유로 새벽까지 이어지는 조모임을 끊기가 어려웠고 내가 일하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분리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방에서 쉬기 위해 몸을 눕혀도 신경 쓰던 일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고 이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번 아웃 (burn-out)’에 대해 깊이 공감하기도 한다. 하지만 드디어 굳이 출근해서 도착해야 하는 연구실이 되었고 퇴근하면 온전히 나를 위해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니 나를 더 잘 돌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프로페셔널과 퍼스널 자아를 둘 다 지켜낼 수 있다고 표현하면 되려나. 어찌 되었는 일과 쉼의 공간을 분리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더 영향력 있는 변화를 안겨주었고 덕분에 출근한 시간 동안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작지만 내 공간을 ‘나’로 물 들여가는 과정에서 큰 기쁨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 간단한 예시로는 온화한 주황빛 불빛을 내뿜는 스탠드인데 어렸을 때 정말 갖고 싶었던 기억이 있는데 큰 쓸모를 느끼지 못하셨는지 내 방에 스탠드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자취를 시작하게 되고 장스탠드랑 단스탠드를 마련하게 되었고 형광등보다는 따뜻한 불빛을 켜고 생활하고 있다. 너무 낭만적이다.

새하얀 형광등 보단 따뜻한 주황빛 전구가 더 좋다. 빛 퍼짐을 바라보고 있는 일도 기분 좋다.

좋은 점도 많지만 자취하면서 불편한 점이나 새롭게 느끼게 되는 점, 그리고 소비 생활에 있어서도 처음으로 겪게 되는 점들도 당연히 참 많은데 앞으로 나의 생각과 깨달음에 대해 잘 정리해서 기록해두려고 한다. (이렇게 일기와 글과 더 친해지게 된 것도 자취 덕분인 것 같다.) 그리고 올해의 시작부터 나에게 편안한 공간을 선물하고 기분 좋은 에너지가 가득해진 만큼 새로운 인연 역시 가득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