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속 대화주의자 (conversationalist)의 사회생활
코로나19 사태가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팬데믹 삼 년 차를 맞이하며 사회적 거리두기 방안 역시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데 오늘 날짜 기준 우리에게 허락된 사적 모임 인원은 6명이고 카페나 식당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은 오후 아홉 시가 기준이 되었다.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아졌다. 이전처럼 왁자지껄 신나는 모임자리는 볼 수 없게 되었고 국민 개개인의 방역 책임감을 고려했을 때 이런 대규모 모임 자리를 갖는 일은 사회적 핀잔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국 소상공인의 상황 역시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모든 상황을 한 방에 해결해줄 만병통치약 (panacea) 따위는 없겠지만 하루빨리 상황이 나아지길, 불안함을 느끼지 않고도 서로의 표정을 읽고 체온을 느낄 수 있던 이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사실 이번 글에서 논의하고 싶은 건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나 소상공인을 위한 손실보상 이야기가 아니다. "사적 모임 6인, 영업시간 9시"제한을 기본으로 하는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가 나에게 어떤 불편함을 (또는 편안함을(?)) 가져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대규모 모임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명확한 대화 주제 없이 시끄럽기만 한 자리는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쉽게 말해 기가 빨리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MBTI에서 첫 번째 기준인 '외향형 (Extrovert)'과 '내향형 (Introvert)'으로 사람을 나눴을 때 필자는 당연히 후자에 속하는 편이다. (나름 50대 50 정도의 비율을 유지하며 양향 성격자 (ambivert) 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나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보편적으로 봤을 때 나는 내향형 인간이 맞는 것 같다.) 이전에 게재했던 "1:1 약속"이라는 글에서도 (https://brunch.co.kr/@hastysentiment/10) 깊게 논의한 적이 있는데 나는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며 우리 관계가 한 층 더 특별해지고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그런 만남의 자리를 훨씬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따로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밥 약속이나 커피 약속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글을 게재하고 벌써 약 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대학원에 갓 입학하여 아직 학부생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고 "사회생활"은 아직 나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자 사회 활동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벌써 박사 2년 차를 맞이한 대학원생으로서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는' 일은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아주 없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위해 "거의"라고 표현하고 싶다.) 기업 생활보다 압박감이야 덜 하겠지만 준 (semi) 사회생활에 버금가는 프로페셔널함을 요구하는 대학원 생활을 하다 보니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에 쏟을 에너지를 많이 잃은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많은 선배들이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는 좁아질 일만 남았다고 했었는데 살짝 이른 감이(?) 있지만 벌써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요즘엔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따로 1:1 만남을 요청할 용기도 잘 생기지 않아 혼자 머쓱함을 삼키는 일이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코로나19에 맞서 싸우기 위한 방역지침 덕분에(?) 대학원 생활 동안 증폭된 나의 소심한 성향이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아주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 방안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말이지만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을 이유로 (아니 핑계로(?)) 내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정도의 사적 모임 규모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나는 여섯 명을 훌쩍 넘기는 규모의 친한"팟"은 없지만 결국 서로에게 집중하기 딱 좋은 만큼의 사적 모임 인원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토록 소규모"팟"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본인의 대화주의적 (conversationalist) 성향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깊은 대화의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그 시간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대의 힘을 굳건하게 믿고 있는 대화 주의자다. 그래서 시간이 좀 더 필요하더라도 한 명씩 이야기를 들어보고 내 이야기를 반복하여 들려주는 일이 더 즐겁다. 이는 가족과 친구들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교수님과 함께하는 또는 따로 하는 회식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철저히 내 기준이지만 모임 인원이 네 명을 넘어가면 벌써 대화 주제가 하나 이상으로 나뉘어버린다. 물리적으로 잘 듣고 대화 주제의 흐름을 잘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교수님께서도 코로나19 이전의 전체 회식자리가 그리운 동시에 좀 더 친밀하게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규모 식사자리 역시 특전 (perk)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 역시 완전히 공감하는 바이다. (그래서 내가 우리 교수님 지도학생인가 보다.)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모범시민으로서 작년 연말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했던 네 명의 친구들과 오랜만에 집에서 송년회 모임을 가졌다. 서로의 장점을 상기시켜주기 위해 각자 느껴왔던 바를 공유하고, 자기애 충전을 위해(?) 스스로 느끼는 본인의 장점이자 강점,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칭찬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의 완벽한 '컴포트 존 (comfort zone)'에 머물 때는 국민 MC로 빙의하여 대화 내용을 주도하고 시끄럽게 토론하기도 한다. 나는 틀림없는 양향 성격자 (ambivert)다.) 친구들이 이야기 해준 다양한 장점 외에도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점, 강점 그리고 칭찬에 대해 각 잡고 고민해볼 시간이 생겨서 내린 결론은 바로 '대화 능력'이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한다고 느끼고 자존감이 높아질 만큼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좋은 대화를 나눌 때인 것 같다.
유독 기대했던 것보다 깊은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여운이 남는 날들이 있다. 이런 날들엔 보통 상대방 역시 같은 마음에 한 번 더 인사를 주고받곤 하는데 "너랑 함께한 대화가 참 즐거웠다"는 인사는 나를 정말 기쁘게 한다. 내 혼자 느낀 감정이 아니라는 점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깊은 유대감을 나눌 수 있는 인연을 갖게 되었다는 뭉클함에 두 번 감동하게 된다.
"없던 오늘"을 읽고 팬이 되어버린 유병욱 카피라이터는 음력 새해를 맞이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SNS에 업로드했다.
인간관계는 인연이 아니라 의지다.
나 역시 작년부터 자취를 시작하고 대학원 생활을 내 현실로 받아들이며(?) 많이 느꼈던 깨달음이다. 매일 같이 일상을 함께 하며 그토록 "견고해 보이던 관계들이 얼마나 허약한 지는, 몇 년의 시간만 흐르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래서 "인간관계의 시작엔 운명 같은 게 있을지 몰라도 그 뒤로는 무엇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나에게 여전히 당신은 왜 중요한지. 당신이 그때 전한 마음 한 조각은 얼마나 좋았는지. 우리는 예전처럼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당신이 언젠가 전한 어떤 말은 여전히 내 가슴속 어딘가에 별처럼 박혀 있어, 유독 내가 초라해 보이던 날 나는 그 말들을 몇 번이나 꺼내보았는지"에 대해 더 열심히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이런 대화를 더 많이 나누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방안 완화 이후에도 소규모의 질적 대화를 도모하기 위한 자리를 많이 만들고 꾸준히 참여하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최근에 대학생이 되고 사귄 친구들 중 가장 친한 친구들을 만나 마냥 신나게 근황을 나누고 짧지만 즐거운 대화를 나눴는데 문득 분위기에 취해 이런 말을 내뱉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삶에 있어달라고 말이다. 술 없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나 역시 놀랍지만 그만큼 소중한 친구들이기에 가능했던 고백이었다. 앞으로도 커피와 함께, 술과 함께, 그리고 다양한 분위기와 시간대 속에서 나의 소중한 인연들과 인생에 대한 통찰을 나누고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 진지하고 유쾌한 대화주의적 삶을 지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