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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Dec 03. 2018

조니 뎁과 안젤리나 졸리, 그리고 베니스! 베니스!

<투어리스트>와 베니스

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볼까요. 당신은 지금 파리 리옹역에서 이탈리아 베니스로 가는 특급열차에 몸을 싣고 있습니다. 네, ‘그’ 오리엔트 특급열차 말이죠. 출장이든, 여행이든, 피곤에 찌들지만 않았다면 달뜬 기분을 느낄 가능성이 농후한 이 여정엔 파트너가 필요한 법입니다. 더군다나, 옆자리가 허전하다면 더더욱 말이죠. 그 순간,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미인이 혹은 조니 뎁과 같은 매력남이 옆자리로 다가와 앉는 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이 두 배우가 처음으로 만난 영화 <투어리스트>(2010)는 이러한 판타지를 한껏 자극하는 한편 그러한 강력한 설정을 살짝 비틀고 변주해내는 유려한 리듬을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그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를 만남에 빠져드는 주인공은 조니 뎁이 분한 미국인 수학교사 프랭크입니다. 한가로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여유롭게 독서 삼매경에 빠진 이 남자는 사실 애인과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상태죠. 실연의 아픔을 달래고자 몸을 실은 베니스행 열차에서 프랭크에게 다가오는 매혹적인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하는 엘리제입니다. 좌석에 앉아 매혹적인 눈빛을 보내는 엘리제와 예상 밖의 급 전개에 당황하면서도 싫지 않은 프랭크. 이 선남선녀는 분위기 있는 이 오리엔탈 특급열차(실제로는 파리-베니스간 직행 열차는 없다고 하니, 참고하세요!)의 식당 칸에서 와인을 나누며 모종의 ‘탐색전’을 벌이고, 결국 베니스에 도착해 보트에 올라탄 엘리제가 먼저 ‘동행’을 제안하면서 달콤한 ‘투어’가 시작되는 듯 보이죠. 첫날밤까진 그랬어요. 베니스의 황홀한 야경을 배경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아끼면 기쁨도 두 배라는 듯이 너른 호텔 방에 함께 묶게 됩니다. 하지만! 달콤한 키스와 언제 지났는지 모를 하룻밤도 잠시, 이튿날 아침 눈을 뜬 프랭크에게 총을 든 괴한이 들이 닥치고, 아무리 둘러봐도 엘리제는 온데 간 데 없습니다. 어쩌겠어요. 잠옷 차림 그대로 창밖으로 줄행랑을 치는 수밖에.


그렇습니다. <투어리스트>는 단순한 로맨스 영화는 아니에요. 무척 익숙한 ‘투샷’임에도 과거에도 이후에도 함께 연기한 적 없는 조니 뎁과 안젤리나 졸리. 그 둘이 만났으니, 뭔가 범상치 않은 전개가 예상될 만하지 않은가요. 맞아요. ‘물의 도시’ 베니스의 수려한 풍광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엘리제가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자이고, 수사시관에 쫓기는 신세라는 걸 처음부터 숨기지 않죠(물론 후반부 반전을 위한 영화적 장치이긴 하지만요). 그런 긴박한 상황 속에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동시에 베니스를 배경으로 한 두 남녀의 아슬아슬한 로맨스가 자리하고, 또 마지막에는 짐작 가능해서 다소 맥이 빠지는 ‘반전’도 준비해 놓고 있지요. 말하자면, 평범한 할리우드의 장르 공식을 무색하게 만드는 연출인 거죠.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한국에서도 명성을 얻은 <타인의 삶>(2007)으로 데뷔한 독일 출신의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는데, <투어리스트>의 혹평 세례와 흥행 실패 때문인지 무려 8년 만인 올해 <웍스 위드아웃 언 오서>란 신작으로 복귀를 했습니다.


그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투어리스트>는 베니스를 전면에 내세운 흔치 않은 상업영화임에 분명합니다. 물위의 고풍스런 건물들과 수상 보트, 베니스 곳곳의 명소들을 원없이 볼 수 있어요! 주로 자동차 추격신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수상 보트 추격전이 심상찮게 펼쳐지는 것이 그 좋은 예죠. 주인공들이 보트를 타고 베니스 시내를 누비는 장면들은 그 풍광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긴장감보다는 묘한 안도감을 주기도 한답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유유히 보트 위에서 베니스의 풍광을 바라보는 장면도 마찬가지고요. 아, 다니엘리 호텔은 영화의 개봉 이후 더 유명해졌다는 후문이에요. 안 그래도 럭셔리 콜렉션 체인으로 유명한 이 호텔은 조니 뎁과 안젤리나 졸리가 첫날 밤, 첫 키스를 나누는 로맨틱한 장면의 배경이자, 다음 날 아침 조니 뎁이 잠결에 쫓기듯 도망치는 장소이기도 하죠. ‘투어리스트’란 제목의 영화가 베니스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여행객들의 천국인 산 마르코 광장을 지나친다면 이상하겠죠? 조니 뎁이 인파 속에서 트레이드 마크인 담배를 문 채 생각에 잠기는 장면이 바로 이 산 마르코 광장에서 촬영됐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브릿지 장면이라 할 수 있죠. 옛날엔 국영소였던 아르세날레 역시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이국적 풍광을 자랑합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투어리스트>야 말로 베니스 여행 욕구를 절로 불러일으키는 진정한 베니스 가이드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반전은 뭐냐고요? 알려드릴 순 없지만, 어쨌든 ‘베니스 만세!’를 외칠 만한 ‘해피엔딩’이라는 점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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