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급사가 공개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 라미 말렉의 900만 돌파 인증샷.ⓒ 20세기폭스코리아
영화흥행에 가정법이란 없다. 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의 존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개봉 10주차, 지난 10월 31일 개봉 이후 3개월 간 상영에도 박스오피스 4위를 유지하며 900만을 돌파한 <보헤미안 랩소디>(이하 <보랩>) 열풍이 훨씬 더 미약했다면, <마약왕> <스윙키즈> 같이 흥행참패를 면치 못한 한국영화 연말대작들의 성적은 조금이나마 달라졌을까.
지난 29일 <보헤미안 랩소디>가 급기야 누적관객 901만 명을 기록했다. 이 가공할 만한 신드롬은 급기야 영화계 안팎에서 "설마 천만이야 가겠어?"에서 "이러다 천만 가는 거 아냐?"라는 반응까지 끌어내는 중이다.
토요일이던 29일 하루 스코어가 이를 방증한다. 이날 하루 675개 스크린에서 9만5694명을 동원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5개 더 많은 680개 스크린에서 6만8940 명 동원에 그친 <스윙키즈>를 가볍게 눌렀다. <스윙키즈>는 <마약왕> <범블비>와 함께 지난 19일 개봉한 2주차 신작이다.
또 이날 <보헤미안 랩소디>는 10%의 예매점유율과 9.1%의 매출점유율, 44%의 좌석판매율을 기록함으로써 '10주차'라는 개봉 시간을 무색케 만들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 첫 주 <완벽한 타인>에 밀려 2위로 출발, 개봉 4주차에야 겨우 1위를 탈환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영화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흥행인 셈이다.
이를 반영하듯 <보헤미안 랩소디>는 900만을 돌파하며 역대 외화 흥행 6위에 올라섰다. 1위부터 5위인 <아바타>(2009)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과 <인터스텔라>(2014), <겨울왕국>(2014) 모두 천만을 훌쩍 넘긴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이제 <보헤미안 랩소디> 역시 천만을 돌파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러한 역대 외화 흥행작들의 면면은 역설적으로 북미를 제외하고 퀸의 본고장인 영국 내 흥행까지 넘어선 <보헤미안 랩소디>의 국내 흥행이 얼마나 의외인지를 반증하는 열쇠와도 같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마블 'MCU'와 또 한국인이 유독 사랑하는 스타 감독 제임스 카메론과 크리스토퍼 놀란, 그리고 부활한 애니메이션 명가 디즈니의 뮤지컬 가족영화라는 '유명세'나 '이점'도 없었다.
그저 '퀸'과 '음악영화'의 힘으로 지칠 줄 모르는 동원력을 발휘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신드롬. 2019년을 앞두고 이를 짚어보는 일은 분명 하향평준화가 가시화되고 있는 한국 상업영화가 새로이 참고할 만한 혹은 생산해내곤 있지만 '웰메이드'하지 못했던 요소들의 복기와도 같았다. 이미 수없이 평가돼 온 요소들과 중복되지 않는 선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의 신드롬을 다시 살펴봤다.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대중성, 음악영화의 힘
▲MBC <내 심장을 할퀸>의 한 장면.ⓒ MBC
'퀸'의 대중성과 프레디 머큐리의 재발견, '싱어롱'관의 폭발적 관심을 비롯해 한국에서만 유독 사랑 받는 '음악영화'의 힘, 세대를 아우르는 실화영화의 매력, 국내 박스오피스 특유의 쏠림 현상까지.
이미 <보헤미안 랩소디>의 신드롬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로 이뤄져 왔고, 그 개별 평가 역시 대부분 다르지 않다. 이와 관련,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 초기 MBC가 발 빠르게 편성한 <라이브 에이드> 실황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만큼 유튜브를 넘어 두고두고 회자 중이다. 또 '싱어롱'관에 열광하는 관객들 위주로 '팬심'을 조명한 MBC <내 심장을 할퀸> 역시 평균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해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관심을 입증한 바 있다.
그리하여, <보헤미안 랩소디>이 입증한 '음악영화'에 대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요는 '퀸'이라는 전설적인 록 밴드의 높고 너른 대중성과 만나 행복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가깝게는 <원스>부터 좀 더 멀게는 전성기 디즈니 뮤지컬 애니메이션들이나 <보디가드>, <접속> 등과 같이 OST와 접속했던 1990년대 세대들은 물론 <비긴 어게인>이나 <레미제라블>의 흥행을 이끌었던 이후 세대를 모두 만족시키는 결과를 빚어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비긴 어게인>이나 <레미제라블> 모두 한국에서 유독 사랑받은 작품들로 꼽힌다는 점이다. 여기에 <미녀는 괴로워>나 <과속 스캔들>, <써니>와 같이 음악이나 공연 장면을 완성도 있게 내세운 작품들에 한국 관객들이 유독 눈과 귀를 열어왔다는 사실 역시 상기할 만하다. 결과적으로, 이 음악영화로서의 '코드'는 히트곡 많은 '퀸'이란 밴드와 만나 요즘말로 '퀸망진창'과 같은 '포텐'이 터졌다고 볼 수 있다.
실화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배급사가 공개한 '퀸'의 브라이언 메이 축하 영상.ⓒ 20세기폭스코리아
더욱이, <보헤미안 랩소디> 관람 후 새삼 놀랐다는 반응도 넘쳐났다. 퀸이 이렇게도 히트곡이 많았느냐 혹은 한국에서 지금까지 들려지는 퀸의 노래가 이렇게 많았느냐는 반응들이 그것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물론이요, '위 윌 락 유'와 같이 광고 배경 음악 등으로 끊임없이 재생되는 퀸의 곡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키는 '러브송'에 가까운 슬로우 락부터 훨씬 더 실험적인 '아트록', 오페라와 접목시킨 프레디 머큐리의 듀엣곡까지.
당시 퀸과 접속했던 세대는 물론이요, 그 자식 세대인 작금의 10대를 만족시키는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소구력은 놀랄 만큼 강했다.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에게 사랑받았던 퀸의 대중성은 '실화영화'라는 또 하나의 한국적 흥행 코드와 만나 만개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록 스타가 아니었다면 인종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리고 성소수자임을 감추고 살았던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 여정은 소수자성을 그대로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면만 놓고 보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러한 '고난'을 딛고 일어선 스타탄생의 신화를 재현한다. 또 밴드 멤버들 간의 실제 관계나 현실과 영화와의 차별화된 지점까지 찾아보고 다시 보는 재미가 쏠쏠한 퀸과 프레미 머큐리의 생애는 결국 한국인이 유독 좋아하고 소비하는 '실화영화'의 매력과 100% 일치한다.
눈길을 끄는 과거 시대상과 그 안에 녹아든 매력적인 캐릭터, 그 안의 볼거리와 서사야말로 한국 관객들이 즐기는 '실화영화'의 고유한 장점일 터. <엑스맨> 시리즈와 미드 < M. D 하우스 > 등을 탄생시킨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이러한 요소들에 프레디 머큐리와 밴드 멤버들에게 보내는 애정과 경외감을 '쫄깃'하다기보다 어떻게 하면 우아하게 그릴 수 있는지를 연구한 듯 싶다. 그 결과가 바로 클라이맥스를 수놓은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 전후가 아닐는지.
한편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는 아마도 가장 성공한 '성소수자'가 주인공인 영화로 남을 듯 싶다.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하기 전까지의 성정체성 문제와 더불어 메리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주요 테마로 설정함으로서, 가장 성공한 게이 감독 중 한 명인 브라이언 싱어는 직접적이진 않지만 그의 생애에 끼쳤던 이 정체성 문제를 자연스레 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실화영화'의 테두리 안에서 훨씬 더 효과적으로 묘사된 것은 물론이고.
쏠림 현상의 이면
▲<보헤미안 랩소디> 포스터.ⓒ 20세기폭스코리아
마지막으로 쏠림 현상. <보랩>이 개봉 4주차 주말에 처음으로 1위에 올라섰고, 그 전후로 2위나 3~4위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보헤미안 랩소디>가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은 단 2주다). 영화 내외적인 신드롬이 입소문을 견인했고, 결국 '봐야 할 영화'에 등극했다는 사실 말이다.
흥행 비수기로 꼽히는 11월 첫째주 <완벽한 타인>과 맞붙어 800개대 스크린으로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첫 주말 이후 900개 대 스크린을 유지하며 입소문을 늘려갔고, 결국 <라이브 에이드>와 같은 미디어와 '싱어롱' 관과 같은 팬덤의 열광을 키워가며 장기 흥행에 돌입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흥행 첫 주 스크린을 독식하는 독과점과 같은 논란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보헤미안 랩소디> 역시 외화 흥행 1위 <아바타>를 보유한 20세기폭스코리아라는 직배 배급사의 작품이다. 국내 3대 투자배급사와 같이 언제든 국내 멀티플렉스들이 스크린을 열어 줄 준비를 마친 '그들만의 리그'에 입성한 배급사의 작품이란 얘기다. 다만 일찌감치 1위를 내주고 2위로 출발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매주 개봉작들과 경쟁을 벌이며 1000개 안팎의 스크린을 안정적으로 가져갔을 뿐이다. 그러니까 '안 해서'라기 보다 '못 해서' 스크린을 못 벌린 경우랄까.
배급 상황 외의 현상을 설명하자면, 오히려 '대세' 영화나 신드롬을 어떻게든 따라잡아야 안정감을 찾는 관객 전반의 심리와 이를 부추기는 미디어의 경쟁이 쏠림 현상을 만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취향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를 육성하기보다, 대세나 평균에서 도태되고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영화흥행'적인 반영이랄까.
기어이 시장 구조와는 맞지 않는 '천만' 영화를 한 해 몇 편씩 만들어내는 것도 모자라 <보헤미안 랩소디> 같이 영화를 만든 나라보다 월등한 흥행을 만들어내는 이 같은 쏠림 현상을 대세만을 쫓는다거나 금방 끓었다 식는 '냄비'라는 식의 질타로 쉬이 분석하기란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