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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an 03. 2019

50여분간 이어진 이순자의 '망언'... 다 들어보니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쇼박스


JTBC가 영화 <택시운전사>를 지난해 추석에 'TV 최초'로 방영한데 이어 2019년 1월 1일 밤 재편성했다. 덕분에 영화를 다시 봤다. 특히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은 다시 봐도 울컥하는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기어코 흐르는 만섭의 눈물이 뜨겁게 다가오기는 개봉 때나 매한가지였다.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택시기사 만섭은 우연에 필연을 거쳐 광주로 내려가, 당시 '5·18 광주'의 진면목과 신군부의 폭압을 목격한다. 현실적 시간으로는 고작 1박 2일간의 변화다. 그러나 그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은 현실에서도 강력한 트라우마를 남길 수밖에 없었으리라. '만섭'의 실제 인물인 김사복씨 역시 '광주 트라우마'를 버티지 못하고 술을 자주 입에 댔다고, 아들 김승필씨는 훗날 증언했다. 결국 김사복씨는 간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택시운전사>의 주제 중 하나거니와 다시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역시나 "광주의 진실을 알려달라"던 사람들의 절규였다. 종국엔 군인들에게 목숨을 잃은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분)도, 광주 택시기사 황태술(유해진 분)도,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만섭에게 "꼭 보도해 달라"며 둘을 돕는다. 광주를 외면코자 했던 만섭 역시 신군부의 무차별 사격에 목숨을 잃은 시민들을 보고 병원에서 망연자실해 하던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빨리 카메라를 들고 찍어라"라고 종용하기에 이른다.
 
이 <택시운전사>를 2017년 여름 1200만 관객이 넘게 관람한 것 역시 '아직도 누군가는 잘 모르고 있던 광주의 진실'을 영화적으로 간접 체험코자 하는 열망이 반영된 결과였으리라. 그렇게 새해 첫날 5·18 광주를 다시 목도하는 일을 새삼스럽지만은 않게 만들어준 이들은 JTBC만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아버지는 내 남편 전두환"이란 발언으로 같은 날 수많은 국민들을 분노케 한 이순자씨 역시 일등공신이었다.
 
이순자의 언론플레이    

▲전 대통령인 전두환씨의 부인 이순자씨는 <뉴스타운> TV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아버지는 내 남편 전두환"이라고 주장했다. 화면 캡처ⓒ 뉴스타운


"<전두환 회고록>을 작심하고 쓴 것 같다. 광주에 파견돼 정당한 임무를 수행한 국군장병들이 헬기에서 기총소사를 했다는 허위주장 때문에 뒤집어쓰게 될 학살자의 누명을 반드시 벗겨줘야 되겠다, 라는 책임을 절실히 느낀 게 아닌가."

보수매체 <뉴스타운> TV가 1일 공개한 이순자씨 인터뷰를 부러 챙겨봤다. 발언 하나하나가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였을 뿐 아니라, 사실 왜곡을 넘어 역사 왜곡으로 점철돼 있었다. 특히나 대부분의 주장이 여러 차례 소개된 <전두환 회고록>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었고, 이순자씨가 준비한 원고를 읽은 대목 역시 대동소이했다.
 
이날 한 매체가 헤드라인으로 뽑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아버지는 내 남편 전두환"이란 표현이 공분을 불러일으켰지만, 50분여의 인터뷰 전체가 유족들과 광주시민들, 국민들의 혈압을 올린 표현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이런 식.
 
"개인의 자유와 권리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사안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믿는 바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런 생각을 표현했다고 해서 법으로 제재하는 것은 민주화에 역행하는 거다. 5.18 단체들이 자신과 다른 생각, 입장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한, 스스로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이렇게 이씨는 7일 출석을 앞둔 명예훼손 재판의 원고인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와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 그리고 고 조비오 신부 유족 등)를 꾸짖었다. 세상에나,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니. 신군부가 어떻게 그 '사상'을 억압하고 고문과 학살을 자행했는지, 그리하여 집권 시기 동안 죽음으로 몰고 간 '열사'들이,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많은지 까맣게 잊은 듯한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인터뷰가 오는 7일 예정된 재판을 염두에 둔 언론플레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앞서 지난해 8월 첫 공판 이후 "알츠하이머" 등의 사유로 불출석을 이어가고 있는 전씨는 광주지방법원으로부터 오늘 7일 출석을 요구 받은 상태다. 이씨는 재판 출석과 관련 "(법원이) 광주에 내려와서 증언하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코미디다. 조금 전 일도 기억 못 하는 사람이 무슨 증언을 어떻게 하느냐. 가족 입장에서 먹먹하다.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을 곱씹다보면, 그의 뻔뻔함 앞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저 신군부와 전두환 정권의 안위만을 위해 일으킨 학살이 5.18 광주라는 사실을 이씨는 잊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이씨는 "계엄령이 선포됐고, 명을 받고 광주에서 임무를 수행한 사람은 역적으로 몰리고, 무기를 들고 데모한 사람들은 민주화 영웅이 됐잖아요"라며 "국군은 살인마로 몰리고 있잖아요, 영화에서처럼"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뉴스타운> TV의 진행자 역시 "그런 영화들이 많다"고 장단을 맞췄다. 그러나 이러한 이씨와 남편 전씨의 '기억상실증'과 같은 왜곡 발언이나 <전두환 회고록> 출간 같은 파렴치한 행위는 수차례 거듭돼 왔다. <택시운전사>와 같은 영화적 체험이 사회적인 신드롬을 낳았던 것 역시 그러한 전씨와 전씨 측근들의 '도발'들이 한몫 한 덕분 아니겠는가.
 
설훈 의원의 분노
 
"<택시운전사> 장면 중 계엄군이 시위를 벌이는 광주 시민을 겨냥해 사격하는 장면은 완전히 날조된 것이다. 당시 계엄군들이 먼저 공격을 받아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다."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던 2017년 8월, 전씨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당당하게 주장했다. 민 전 비서관은 "(영화에) 악의적인 왜곡이나 날조가 있다면 법적 대응을 검토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반면 영화는 국민과 언론의 높은 관심 속에 보란 듯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민 전 비서관의 주장대로라면, 2년 전 1200만이 넘는 국민들이 모두 '날조'된 영화를 관람한 셈이 된다.
 
"전두환의 만행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광주 5·18민주화운동으로 많은 무고한 생명이 죽어갔고, 유가족들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그리고 지금도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역사의 단죄를 받아도 시원치 않을 당사자가 감히 민주주의를 운운하며 실성에 가까운 발언을 내뱉은 사실에 광주항쟁의 원혼들을 대신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중략).

인간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이 같은 발언을 해서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일 수도 없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재판정에 나와 역사 앞에 석고대죄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 같은 발언을 일삼는 괴수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유성호


2일 더불어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이순자씨의 인터뷰와 관련해 최고회의 공식 석상에서 위와 같이 발언했다. 분노는 물론 "실성", "괴수"와 같은 꽤나 격한 표현까지 등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설 위원 자신이 5·18 광주와 떨어뜨릴 수 없는 트라우마의 피해자이기에 가능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어 설 의원은 "저는 개인적으로 80년 소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죽음의 고통을 당하는 고문을 당했다"며 개인적 소회를 털어놨다. 감옥에서 숱한 저주의 나날을 보내며 그 저주가 본인에게 해롭다는 것을 알고 감옥에서 전두환씨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 의원은 그 '용서'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후회했다. 납득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그 용서가 지극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때 용서하지 말았어야 했다. 많은 국민들이 용서했던 그 사실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용서하지 말았어야 한다."
 
2019년 새해 첫날 공개된 이순자씨의 '망발' 인터뷰는 이렇게 5.18 광주는 물론 전두환 군사독재의 숱한 피해자들의 공분을 일깨우는 자극제가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설훈 의원처럼 감히 '용서'를 꺼내들었던 이들조차 다시 분노케 만들기에 충분한.
 
이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사람은, 역사는 지은대로 받는다"는 말을 꺼냈다. 역사 앞에서 전씨와 자신이 당당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발언이었지만, 그 말을 국민들이 고스란히 돌려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하다. 아니, 영상 속 이씨는 아예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 이씨와 전씨에게 '용서'란 어불성설이지 않겠는가. "지은대로 받는" 그 역사의 평가 앞에 당당히 서시길. 그 첫걸음이 바로 7일 재판 출석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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