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3월 9일, 고(故) 장자연씨의 발인 당시 영정 사진.ⓒ 연합뉴스
"솔직히 제가 계속 국내에서 거주를 했다면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거주하면서 본) 캐나다 같은 경우는 피해자나 가해자가 이름과 얼굴이 다 공개가 됩니다.
또 그런 것이 당연시 여겨지고, 피해자가 숨어서 사는 세상이 아니라 존중을 받는 것을 보면서 어찌 보면 한국도 그래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가해자들이 너무 떳떳하게 사는 걸 보면서 좀 억울하다는 심정이 많이 들었던 게 사실인 것 같아요."
고(故) 장자연씨의 동료였던 윤지오씨의 말이다. 그는 10년을 이름도, 얼굴도 감추고 살았다고 했다. 배우를 꿈꿨던, 배우의 길로 나아가던 20대 여성은 결국 일상을 접고 해외로 떠나야 했다. 작품 캐스팅은 불가능해졌고, 증언 이후 쏟아진 언론의 주목은 일은 물론 학업마저도 포기하게 만들었다. 고 장자연씨가 당한 추행을 직접 목격했고, 그로 인해 자신이 보고 겪은 것을 수사기관에 진술하고 법정 증언에 나섰던 대가가 그렇게 혹독했다는 얘기였다.
고 장자연씨가 사망한 지 10여 년이 흐른 5일, 장자연씨의 소속사 동료 배우였던 윤지오씨는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가해자들의 당당한 삶이 부당하다고 말했다. 윤씨가 사건 이후 최초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자리였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 13번째 증언 >이란 책에 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씨는 "저는 항상 (장자연이) 문건을 왜 작성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자살로 알려진 죽음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과거 수사기관에 호소했으나 묵살 당했다는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윤씨의 인터뷰는 예고됐던 방송 시간을 훌쩍 넘길 만큼 길었고, 우리가 그간 알지 못했던 의문스러운 사실로 채워져 있었다. 윤지오씨의 인터뷰 중,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대목만 꼽아 봐도 이 정도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윤지오씨의 모습ⓒ tbs
윤씨가 리스트에서 본 '같은 언론사, 같은 성 세 사람'
"(장자연 리스트를) 딱 한 차례 봤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이 나는 이름도 물론 있고 아닌 이름도 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언론사의 동일한 성을 가진 세 명이 거론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본인이 거론됐다고 해서, 딱 한 번 직접 봤다고 했다. "유가족 분들이 당일 날 보시기 전", 그러니까 소각돼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윤씨는 고 장자연씨로부터 접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들의 명단에서 (<조선일보> 사주 일가로 유추되는) 동일한 언론사의 동일한 성을 가진 세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고, 이를 수사기관에 13차례나 진술했다고 한다.
오래된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물음에도 윤씨는 "질문을 먼저 해 주시면 사실에 근거해서 다 성실하게 대답을 했다"고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핵심적인 질문은 건너 뛴 채 "구두의 색깔이 무엇이었냐", "무슨 구두를 신었었냐"와 같은 "수박 겉핥기식 질문"만 계속했다는 것이 윤씨의 설명이다. 이를 두고 윤씨는 자신의 책에서 "진실을 말하면 말할수록 더 큰 벽에 계속 부딪혔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경찰의 부실 수사가 문제였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21살인 제가 느끼기에도 수사가 굉장히 부실하게 이루어졌었고, 당시에 (경찰이) 저에게 건네주신 인물 사진 속에 (전 <조선일보> 기자) 조씨가 없어서 지목을 하지 못했었어요. 그리고 지목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분이 아니었었고. 가 진술이 엇갈린 게 딱 한 부분이 있다면(그것이고), 목격한 정황이나 모든 것은 번복하거나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당시 수사에 관한 윤씨의 설명이다.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장자연 리스트 조사 과정에서, 과거 특정 언론사의 세 사람을 포함 명단 속 유명 인사들이 제대로 수사받지 않은 정황이 제기됐다. 다시 장자연 리스트를 수면으로 올린 검찰 과거사 위원회 산하 진상조사단이 지난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차남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아울러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직 <조선일보> 기자 조아무개씨 역시 과거 경찰 조사에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윤씨는 지난해 12월 열린 기자 조아무개씨의 재판에도 증인으로 출석해, 일관된 진술을 이어가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가해자는 분명히 존재한다"며 진실 규명과 처벌을 촉구하기도 했다.
특정 언론사가 미행까지 했다고 주장... 부실 수사 정황도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경찰 조사에서 윤씨와 대면했던 경찰들은 윤씨를 비웃기까지 했다고 한다. 또 최면 수사까지 임했지만, 윤씨는 "당혹스러운" 경찰의 수사 결과를 받아 봐야 했다. 자신의 일관된 진술에도 불구하고 당황스러운 결과가 나오고 사건이 덮이자 공포심까지 들었다는 윤씨. 그를 괴롭힌 이들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항상은 아니었고, 회사 가는 게 제가 자가가 그때 당시에는 없다 보니까 경찰 쪽에서 집까지 데려다주셨는데 뒤에서 미행이 붙었다고 하시면서 신호도 무시하고 계속 위험하게 운전을 하도 끝까지 쫓아 오셨었고 추후에는 차를 멈추고 '왜 쫓아오느냐?'라고 질문을 하니 '취재 때문에 그런다' 하는데 유독 집착을 많이 보였던 한 언론사가 있었고요."
조사를 받는 와중에 특정 언론사의 차량이 윤씨를 미행을 했다는 것이다. 진행자 김어준이 "그 언론사가 이름이 거론됐던 그 언론사입니까?"라고 묻자, "네"라고 대답한 윤씨는 당시 차량에 언론사 이름이 나와 있었다며 "언론사 차량이 아예 프린팅이 되어 있는 차를 가지고 쫓아왔었어요"라고 부연했다.
▲고 장자연씨의 모습(자료사진).ⓒ 연합뉴스
"어떻게 보면 제2의 피해자처럼 지난 세월을 살아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던 윤씨는 "(장자연씨가) 그 리스트를 왜 만들었을까요?"라는 질문에 "저도 어떻게 보면 가장 주목을 해야 되는 것"이라며 문건의 작성 의도 자체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던졌다.
"위약금을 물고 저는 기획사에서 나온 상태였고, 언니는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아마 기획사를 나오기 위해서 작성된 문건이었지 않을까. 또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에 공개를 하고자 쓴 문건이 아니라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쓰여진 문건…
언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도 유서가 단 한 장도 발견이 되지 않았거든요. 만약 싸우기 위해서 작성된 문건이었다면 유서를 남기면서 '이런 문건이 있다'라고 명시를 한다든지 그 문건 자체를 더 쓸 텐데 그러지 않고 그 문건을 다른 누군가가 갖고 있고, 공개를 다른 분이 하셨거든요."
정리하자면, 고 장자연씨의 소속사 동료였고 성추행 장면을 직접 목격한 윤씨는 장씨가 그 문건을 유서와 같은 의도가 아닌 문건의 존재를 가지고 당시 소속사 사장에 맞서려는 의도로 작성했을 것이라고 줄곧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장자연 문건이 유서와 같은 성격이 아닐 수 있다는 문제 제기는 분명 그간의 해석과는 확연히 다른 관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윤씨의 생각을 수사기관에서는 그 누구도 묻지 않았고, 결국 "문건을 왜 작성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윤씨의 생각은 완전히 묻혀 버린 셈이 됐다.
▲KBS <뉴스 9>은 2009년 3월 19일 고 장자연씨 문건 파문과 관련해 '장씨 유족, 언론사 대표 등 4명 고발' 등 상세히 보도했다.ⓒ KBS
"(1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숨어 살기 좀 너무 급급했었고, 그것들이 솔직히 잘못된 것인데 당연시 되는 이런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 수 없다'라는 판단이 들어서 해외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저 같은 피해를 겪은 분들이 세상 밖에서 당당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책을) 썼고요.
가해자가 움츠러들고 본인의 죄에 대한 죄의식 속에 살아야 되는데 피해자가 오히려 책임감과 죄의식을 가지고 사는 그런 현실이 한탄스러웠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은 바뀌어졌으면 하는 그런 소망을 가져서 용기를 내고 이 자리에 나오게 됐습니다."
본의 아니게 제2의 피해자가 됐다는 윤씨는 "피해자가 오히려 책임감과 죄의식을 가지고 사는 현실"에 한탄하고 있었다. 윤씨 말고도 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내부고발자나 공익제보자 등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소회였다.
윤씨의 인터뷰 하루 전인 4일,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의혹을 당시 경찰이 동영상 파일 등 3만여 건의 포렌식 결과를 확보하고도 검찰에 자료를 넘기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증거를 축소, 왜곡한 정황과 함께 당시 박근혜 정부의 압력이 있었는지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당시 21살이던 배우 윤씨의 눈에 보기에도 부실수사가 의심됐다면, 과거 장자연 사건의 수사 축소·은폐는 물론 리스트에 등장하는 유력 인사들의 압력 여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는 3월까지 활동 기간을 연장한 검찰 과거사 위원회 진상조사단의 철저하고 폭넓은 수사가 촉구되는 대목이다. 제2의 피해자로 지난 10년을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는 윤씨의 억울함을 위해서, 그리고 검찰의 명예회복과 더불어 부실 수사로 고통받은 고 장자연씨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