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연대 여성단체에 3억 손배... '소송남발' 지적도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페이스북 계정에 지난 7일 올라온 게시글. '든든'은 소셜 미디어 개정에 일본 현지에서 1인 시위 중인 여성의 사진과 더불어 해시태그를 게재했다. 더불어 든든은 "유바리국제영화제의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 개막작 선정 유감"이란 한글 문구와 해당 내용을 영어, 일본어 문구로 표기한 홍보물도 공개했다.ⓒ 든든 SN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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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바리 국제판타스틱영화제(아래 유바리 영화제) 개막일인 지난 7일 오후, 한국영화성평등 센터 '든든'은 소셜 미디어 개정에 일본 현지에서 1인 시위 중인 여성의 사진과 더불어 해시태그를 게재했다. 더불어 든든은 "유바리국제영화제의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 개막작 선정 유감"이란 한글 문구와 해당 내용을 영어, 일본어 문구로 표기한 홍보물도 공개했다.
앞서 지난달 14일 '든든'은 유바리 영화제의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의 개막작 선정에 유감을 표하는 성명을 낸 바 있다. 든든의 이러한 '액션'은 같은 달 8일 한국여성민우회(아래 민우회)의 개막작 선정 반대 논평에 이어 한국 영화계의 우려와 반발을 유바리 측에 직접 전달했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다.
앞서 민우회는 이 '개막작 반대' 의견을 유바리 영화제 측에 공식 전달했고, 이에 유바리 측은 개막작 취소는 어렵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다만, 유바리 영화제 측은 "김기덕 감독이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헌데, 이번엔 김기덕 감독이 다른 '액션'을 취했다. 김 감독이 역으로 민우회에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 민우회에 따르면, 김기덕 감독은 민우회가 논평을 낸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지난달 12일 소를 제기했다. 이에 민우회는 지난 6일 "피해의 목소리에 반성과 사과도 없이, 역으로 고소하는 행위는 전형적이고도 익숙한 가해자들의 모습"이라며 반발했다.
김기덕 감독이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민우회의 입장 표명으로 인해 자신의 명예가 훼손 당했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또 김 감독은 민우회가 유바리 측에 전달한 입장과 그로 비롯한 언론 보도로 인해 자기 영화의 해외 판매와 개봉이 어려워졌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정말 그럴까. 지난 7일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동대책위원회와 민우회 등이 연 '영화감독 김기덕 3억 손해배상 청구소송 규탄을 위한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의 의견은 무척이나 달랐다.
▲7일 한국여성민우회가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 주최한 '김기덕의 3억 손배소송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 관련 사진.ⓒ 한국여성민우회
소송 남발하는 김기덕의 자충수
"그가 피해자와 함께 진실을 규명하려고 노력해온 언론과 단체의 활동을 '불법행위'로 규정하였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피해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것, 영화계의 인권침해와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 사건 해결을 위해 연대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신의 영화 판매와 개봉이 어려워진 것은 피해자 지원단체의 활동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위계적이고도 성차별적인 행위의 결과라는 점을 말입니다."
위 내용은 김 감독으로부터 피소된 한국여성민우회 강혜란 공동대표가 7일 한 발언 중 일부다. 민우회는 이같이 김 감독의 활동과 관련된 어려움이 스스로의 행위에서 출발했음을 명시했다. 김 감독은 이러한 소송전을 연이어 벌이고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의 소송 남발 시도는 법원과 검찰로부터 '거부' 당하는 중이다.
▲지난 2018년 MBC < PD수첩 >이 공개한 김기덕 감독 관련 성폭력 혐의 증언.ⓒ MBC
앞서 지난해 6월 김 감독은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편을 제작한 MBC < PD수첩 > 제작진과 방송에 출연 김 감독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배우를 무고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김 감독은 < PD수첩 > 방송 2편에 해당하는 '거장의 민낯, 그 후' 편에는 방송금지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즉각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 논란이 일었던 것은 당연지사다. 그리고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어 지난 1월 검찰은 무고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고, 법원 역시 < PD수첩 > 제작진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당시 김기덕 감독에게 피소 당했던 < PD수첩 > 박건식 PD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일침을 날렸다.
"김기덕 감독은 MBC < PD수첩 >에 대해서도 두 차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방송금지가처분소송, 형사고소를 제기했는데 모두 무혐의가 나왔습니다. 김 감독은 여배우 한 분만을 지칭했습니다만 (김기덕 감독을) 고소한 사람이 그 분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희 취재 결과 한 분만이 아니었습니다. 용기있게 나선 배우 한 분이 있다고 해서, 그리고 그것이 무혐의가 됐다고 해서 김 감독의 모든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김 감독의 '소송 남발'은 자연스레 영화계의 반발과 여론의 냉대를 불러올 만하다. 이러한 자충수 자체가 신작의 개봉은 물론 국내에서의 활동 자체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12월 < PD수첩 >은 김 감독이 카자흐스탄에서 신작을 촬영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더불어 이러한 김 감독의 소송전이 문제시되는 것은 피소를 당한 이들에게 물리적 어려움을 끼치는 한편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해당한다는 점 때문이다.
▲지난 2018년 3월 6일 오후 방송된 MBC 탐사보도 프로그램 < PD수첩 > '거장의 민낯'편 중 한 장면.ⓒ MBC
"피해자와 연대하는 단체를 향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남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김기덕 감독의 한국여성민우회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말하기가 허위라는 광범위한 의심을 조장하고 더 나아가 피해자를 지지하는 모든 행동을 가로막겠다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김기덕은 피해자의 정당한 문제제기를 가로막는 행위를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피해자와 연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격을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금액으로도 피해자와 함께 연대하여 맞서려는 정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김기덕 감독이 부디 깨닫기 바랍니다."
김기덕은 국내 활동을 포기한 것일까
일본 유바리에서 '김기덕 감독 영화의 개막작 선정 유감' 1인 시위를 벌인 든든의 '액션'은 달라진 영화계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법의 힘을 빌리고, 행여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왔을 경우 어떻게든 면죄부로 삼으려는 김 감독의 행위를 영화계도, 여론도 이미 간파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유바리 영화제 개막작 선정과 김 감독의 소송 전만 놓고 봐도, 김 감독이 해외 영화제 초청과 상영을 통해 나름의 복귀를 타진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 가능하다. 한편 김 감독은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석해서도 별다른 사과를 하지 않았다. 대신 전 세계 언론의 성폭행 의혹에 대한 질문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안타깝게도 김 감독은, 미투 운동 이후 한국은 물론 서구 사회의 달라진 분위기와 영화계의 온도를 감지하지 못한 듯하다.
"영화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과 미투 운동 덕분에 우리는 이전과는 달라졌습니다. 김기덕 감독이 오랫동안 영화촬영 현장에서 행할 수 있었던 인권침해가 피해자의 용기 덕택에 수면 위로 드러났고, 더이상 그 폭력을 침묵하거나 방관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손해를 끼친 것은 김기덕 감독 자신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고,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달라진 시대의 흐름을 인지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만이 시대에 역행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7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독립영화협회 성평등위원 남순아 감독의 조언이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이상길 수석부위원장 역시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지위에서 비롯된 위력을 통해 다수의 영화제작 중에 성폭력 등 부당한 행위를 하였음이 용기있는 피해자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라며 "하지만 납득할 만한 사과나 반성 없이 영화 제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라고 꼬집었다.
박 PD는 이날 본인의 페이스북에 기자회견 소식을 전하며 김 감독의 소송을 두고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라고 적었다. 그럴 수 있다. 자신의 행동에 단 한마디 사과 없이 해외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하고, 해외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김 감독이 벌이는 소송전을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김 감독은 이대로는 국내에서 활동할 의지가 없는 듯하다. '미투 운동' 이후 '잠행' 같은 해외 활동을 거듭하면서도 물밑으로 소송을 남발한다면 더더욱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그런 김 감독에게 8일 민우회가 전한 경고는 이러했다. 덧붙이자면,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단 한 번도 잘못을 인정한 적 없는 김기덕 감독에게 전한다. 우리는 단 한 발의 퇴보도 없을 것이다. 이 싸움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시작됐지만, 우리의 정의를 통해 끝날 것이다.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된 김기덕 감독이 지난 2018년 2월 1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하얏트호텔에서 기자회견에 앞서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