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방송된 KBS1 <거리의 만찬> '언론에 당해봤어?'편
▲8일 방송된 KBS 1TV <거리의 만찬>에 출연한 홍가혜씨.ⓒ KBS
"저도 그랬거든요. 저도 일단, 사과를 드릴게요. 저도 (홍가혜씨가) 진짜 그런 사람인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그런 기사가 너무 많이 나오고, 우리는 보고 들리는 게 전부니까 진짜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우리가 (홍가혜씨를) 따라다닐 수도 없고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사실 가혜씨 보고, '별사람이 다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박미선의 사과는 진심처럼 들렸다. 세월호 참사 직후 팽목항에서 MBN과의 인터뷰 후 구속됐다는 홍가혜씨의 사연을 듣던 <거리의 만찬> 진행자 박미선은 먼저 사과의 말부터 건넸다. 그리고, 5년 전 홍씨에게 쏟아진 '마녀사냥'과 같은 기사들을 믿었다며, "별사람이 다 있구나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아마도 많은 대중이 그랬을 것이다. 당시 하루에도 수백 개씩 쏟아진 홍가혜씨 관련 기사를 접한 이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허언증'을 비롯해 악의에 찬 내용들로 가득 찬 기사들이 홍씨를 공격했고, 수사 당국은 인터뷰 하나로 홍씨를 구속했다. 허위 사실을 유포했고, 세월호 유가족과 해경 및 그 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죄목이었다.
8일 방송된 KBS 1TV <거리의 만찬> '언론에 당해봤어?' 편은 그렇게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로 피해를 입은 홍씨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대표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렇다면 진행자 박미선의 사과를 접한 홍씨의 답은 어땠을까. 그 답은 박미선을 비롯해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과 많이 받았어요. 불특정 다수, 언론 시민단체 분들이 다 사과를 했어요. 그때 오해했다고, 미안하다고. 그 말이 전혀 위로가 안 돼요. 오히려 더 절망스러웠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누군가가 '구조가 되지 않고 있다'고 하면, 그 말이 사실인지부터 (확인하고), 그러면 '빨리 구조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부터 나오는 게 정의로운 사회라고 생각해요
메시지를 죽이기 위해 메신저를 죽였다는 말이 있듯이, 그 발언을 삭제하기 위해 제 가십성 보도를 내보낸 거고. 그렇게 많은 언론이 똑같이 얘기하니까 쟤 이상하구나… 이건 너무나 절망적인 사회의 양상인 거예요."
5년 만에 공영방송에서 다시 본 '홍가혜 인터뷰'
공영방송 KBS를 통해 이른바 '홍가혜 인터뷰'가 5년 만에 다시 전파를 탔다. <거리의 만찬>은 홍씨가 101일간 구속됐던 상황을 되짚기 위해 2014년 4월 18일 아침, 홍씨가 팽목항에서 한 인터뷰 화면 중 일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다시 접한 홍씨의 인터뷰는, 훗날 알려진 '사실' 그대로였다. 그렇기에 이후 홍씨에게 펼쳐진 어이없는 상황을 떠올린다면, 더욱더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언론에 보도되는 상황과 실제 상황과 많이 상이하고 있습니다. 해양 경찰청에서 경찰청장이 지원한다고 했었던 장비며 인력이며 배며 장비 지원은 전부 다 안 되고 있었고요. 민간과 해양이 같이 협력해서 수색을 벌인다고 언론에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런 부분들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관련 모든 기관 사람들이 저희와 대화를 거부하고 있고 바다에 나가 있는 사람에게 한다는 소리가 시간만 대충 때우고 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구조대원이 유가족 대표에게 한다는 말이 '여기는 희망도 기적도 없다?' 그딴 말 하고 있었다고요."
전 국민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매체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소셜미디어상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홍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킬 사안임이 분명한 인터뷰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홍씨를 공격하듯 그 발언의 진위를 따지며 사실을 무력화시키려는 매체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발언의 주체인 홍씨 자체를 공격하는 기사나 댓글, SNS 글이 쏟아졌다. 일방적인 비방과 왜곡된 정보들이 난무했다.
급기야 검·경은 홍씨의 인터뷰가 나간 지 이틀 만에, 인터뷰 내용이 해경의 명예를 훼손했고, 허위에 해당한다며 이례적으로 홍씨를 구속기소 했다. 그 누구도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의 구조를 게을리하고, 언론을 통제하려 했으며, 진상 규명을 방해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못 하던 시기였다.
이후 박근혜 정권이 청와대 차원에서 세월호 관련 보도에 언론 지침을 내리는 것도 모자라 여론 통제를 위해 국정원까지 동원했단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후로도 오래도록 악의적인 기사와 소위 '어뷰징' 기사가 물밀 듯이 포털을 점령했다. <거리의 만찬>에서 홍씨는 어느 순간엔 자신도 "내가 허언증인가?"라고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해 출연자들을 숙연케 했다.
언론에 처절하게 당해봤던 피해자 홍가혜의 싸움
하지만, 홍씨는 여러 차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그게 정의라고 믿기에 법정 투쟁을 벌였다고 했다. <거리의 만찬>에서도 홍씨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부지기수였지만, 사회를 위해, 태어난 아이를 위해 싸워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박미선이 생각과 같은 대중의 낙인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진실이 승리한 것일까? 이후 법원은 모든 소송에서 홍씨의 손을 들어줬다. 작년 11월 대법원은 해경 명예훼손과 관련된 소송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1·2심의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의 구조작업과 지휘, 현장 통제가 미흡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홍씨 인터뷰가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모두 허위로 단정하긴 어렵다"는 취지로 홍씨의 손을 들어줬다.
홍씨는 23개 각 언론사와 기자 개인과 벌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모두 승소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언론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6천만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고, 이에 즉각 항소했다. 홍씨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선일보 파산펀딩' 모금을 진행하며 법정 투쟁을 계속하고 있고, 급기야 지난 5일엔 국가를 상대로 1억 원의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는 바로 '대한민국', 사건 당시 홍씨를 수사·기소한 광주지검 목포지청 검사, 전남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이었다. 지난달 10일 방송된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 J>에 출연한 홍씨는 "<조선일보>는 '홍가혜씨가 국가적 혼란을 초래했다'고 주장하지만 국가적 재난 사태에 혼란을 자초한 건 당시 박근혜 정부였다"고 일침을 날린 바 있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석에 서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피고인석에 서야 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국가였음을 이 소송을 통해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날 진행자인 방송인 이지혜는 홍씨의 팔목을 보고선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자해의 흔적이라도 봤던 걸까. 이지혜는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너무 힘들었구나"라며 위로를 건넸다. 그러자 홍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겪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더불어,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고 답했다
"나는 도움을 주러 간 사람인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 도움은커녕 방해만 됐다. 그런 생각 때문에 한 2년 동안 매일 잠도 못 자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지금도 만성이라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질환인데, 술 마시고 정신을 차려보면 머리가 아프다고 자해를 하고 있더라."
그리고, '반올림' 황상기 대표의 당부
사실 <거리의 만찬>은 이날 작정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 더 집중하겠다는 의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에 당해봤니?'에 대한 답은, 방송 서두 KBS 보도국을 찾은 진행자들의 대화에서 이미 결론이 난 상태였다.
보도국 풍경과 회의 장면을 살펴본 진행자 박미선과 김지윤, 이지혜는 "이 분들의 결정이 100% 다 옳은 건 아니지 않아요?"라거나 "취재 경쟁을 하다 보면 무리수도 있을 수 있겠다", "잘못된 기사를 내보낼 가능성도 있고 그 피해가 굉장히 크다"는 대화를 이어갔다. "펜이 칼보다 무섭다"는 쉽지만 거부할 수 없는 진리 역시 되새겼다.
각계 여성들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 소수자, 타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만찬을 나누는 이전 방송과 비교할 때, 관련 출연자들의 배경이 되는 분량을 비교적 빨리 마무리하고 곧바로 당사자들의 설명을 듣는 식이었다. 대부분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언론, 방송의 피해자들이라서 가능한 구성일 수 있었다.
이날 방송에서 홍씨와 함께 출연한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대표 역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백혈병 피해자들을 위한 삼성과의 싸움에서 거대 재벌 편에선 언론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털어놨다. 사망 원인을 밝혀주겠다던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1년 동안 싸웠고, 작년 11월 결국 삼성의 공식 사과를 이끌어낸 황 대표. 그는 방송 말미, 한국 언론에 이런 당부를 했다.
"언론의 존재 목적은 잘못된 일이 있을 때 원인이 무엇인지 가해자한테는 처벌하게끔 만드는 것이 언론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피해자의) 말에 대해 귀를 기울여서 억울한 사람, 약자들을 중심으로 기사를 써주시면 국민들이 상당히 공평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이를 위해, 자식 세대를 위해 싸우겠다"던 홍가혜씨의 말과 더불어 쉽지만 진심이 담긴, 한국 언론이 되새기고 가져가야 할 진실이 담긴 한 마디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두 피해자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자 노력한, '홍가혜 인터뷰'를 5년 만에 내보낸 '공영방송' <거리의 만찬>. 이날 방송은 '수신료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한 방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