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게이트와 정준영, 장자연 사건으로 본 한국 사회
▲성관계 동영상 불법촬영과 유포 혐의를 받는 가수 정준영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19.3.12ⓒ 연합뉴스
"어젯밤 정준영은 당사에 사과문을 전달하여 왔으며, 당사는 정준영 본인의 입장을 가감 없이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당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더 이상 정준영과의 계약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사는 2019년 1월 자사 레이블 '레이블엠'과 계약한 가수 정준영과 2019년 3월 13일부로 계약 해지를 합의하였습니다."
정준영의 소속사 '메이크어스 엔터테인먼트'는 신속했다. 앞서 13일 자정이 넘은 시각, 정준영의 사과문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날 오전, 소속사는 정준영과의 계약 해지 소식을 전했다. 연예 기획사가 소속 연예인을 이리도 신속하게 내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하루 전인 12일 오후 정준영의 인천공항 입국 장면이 KBS 등 소셜 미디어로 생중계되며 높은 관심을 받은 가운데,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정준영 역시 언론에 사과문을 배포했다. 사과문에는 "제 모든 죄를 인정합니다"라며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분들"과 "분노를 느낄 모든 분들께 무릎 꿇어 사죄드립니다" 같은 문장들이 담겼다.
▲ '빅뱅' 승리 광역수사대 자진출석인기그룹 '빅뱅'의 승리(본명 이승현)가 지난 2월 27일 오후 자신이 사내이사였던 강남 클럽 '버닝썬', 마약, 해외 투자자 성접대 등 각종 의혹 관련 수사를 받기 위해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자진출석하고 있다.ⓒ 권우성
앞서 '빅뱅' 승리가 인스타그램 글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고, 이어 13일 YG 엔터테인먼트는 승리와 전속계약을 해지한다고 밝혔다. 정준영은 보도자료 형식을 취해 '연예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카톡 방'을 공유했던 두 사람은 내일(14일) 나란히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다.
"제가 출연하던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고 모든 연예 활동을 중단할 것이며, 이제는 자숙이 아닌 공인으로서의 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범행에 해당하는 저의 비윤리적이고 위법한 행위들을 평생 반성하겠습니다."
소셜 미디어 상에서는 사과문을 공개하기 전에 변호사의 조언을 받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자신이 행한 잘못을 제대로 열거하고, 반성의 뜻을 충분히 표현했으며, 이를 통해 향후 어떻게 행동할지 계획까지 전한 이 입장문은 항간에 화제가 된 '사과문의 좋은 예'에 들어맞는 형식을 나름 갖추고는 있었다.
하지만 사과문과 별개로, 정준영을 향한 대중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럴 만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준영이 저지른 과오뿐만 아니라 연루된 사안과 정황들은 단순히 위법과 범죄를 넘어 윤리와 규범에 반할 뿐 아니라 권력층과의 유착까지 암시하는 중이다. 게다가 범죄 사실조차 인식 못했거나 알고도 침묵해야만 했던 피해자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짐작조차 쉽지 않다. 여러모로, 총체적인 재난 수준이랄까.
3년 전 이미 수사 받았던 정준영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지난 12일 방송된 SBS < 8뉴스 > 중 한 장면.ⓒ SBS
"유명 연예인은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성을 상품화하고 단순히 쾌락의 수단으로만 삼았다는 측면에서 매우 개탄스럽습니다."
12일 SBS < 8뉴스 >가 전한 한국여성변호사회 김영미 변호사의 목소리다. 이날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영상 유포 등 불법 행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벌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날 < 8뉴스 >가 후속 보도한 정준영의 '불법 촬영물 공유' 사건과 그 행태는 개탄을 넘어 경악과 충격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뉴스에서는 단톡방에서 대화한 당사자들도 자신들의 행각이 범죄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자랑스럽게 지인들에게 범죄 행위를 알리고, 스스로 찍은 영상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SBS는 "그런데 저희가 추가로 대화를 분석해 봤더니 멀쩡한 여성에게 수면제를 먹인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자신들의 행동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걸 시인한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단체 대화방 속 남자들은 시시덕거리며 성폭행을 자랑했다. 그저 일상이었다. 자기들 삶이 영화인 양 도취해 있었고, "살인만 하지 않았을 뿐 구속될 만한 일이 많다"고 자인하기도 했다.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고, 그걸 말리거나 지적하는 이는 없었다. 최근 SNS에서 괜히 '남성연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드높은 것이 아니다.
▲지난 12일 방송된 SBS < 8뉴스 > 중 한 장면.ⓒ SBS
▲지난 12일 방송된 SBS < 8뉴스 > 중 한 장면.ⓒ SBS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다. SBS < 8뉴스 > 보도에 따르면, 정준영의 대화방 자료는 지난 2015년~2016년 사이 8개월 치 대화 수만 건이라 알려졌다. 정준영은 2016년 전 여자친구로부터 성관계 중 신체 일부를 촬영한 혐의로 고소를 당하고 수사를 받기 전까지 단체방 대화를 계속했다고 한다. 당시 수사기관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정준영은 불과 4개월 만에 의기양양 방송에 복귀했다. 당시 KBS < 1박2일 > 유일용 PD는 정준영의 복귀와 관련해 이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지난 연말부터 멤버들이 불안해 하더라. 녹화 때마다 정준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특히 속초 녹화 때 새해에 나가는 방송이다 보니 유독 동생을 걱정하고 많이 찾더라. 실제로 녹화 때 요물막내 빈자리가 컸던 것 같다.
그때 녹화하면서 멤버들을 보며 제작진끼리 회의하면서 복귀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빈자리를 오래 두면 전체적으로 힘이 떨어질 것 같아 복귀를 생각했다." (2017년 1월 <엑스포츠뉴스> '1박2일' PD "정준영 복귀, 초심 돌아가 더 겸손해질 것"(인터뷰) 보도 중에서)
문제시된 부분은 공영 방송이 4개월 만에 불법 촬영 혐의로 고소된 바 있는 연예인을 빠르게 복귀시켰다는 점이다. 유 PD는 '남성' 멤버들이 그 '동생'을 유독 걱정하고 많이 찾았다고 했다. 정준영의 복귀 방송은 시청률 20%를 넘기며 화제를 모았다. 문제시 된 남성 연예인이 왜 이리 빨리 복귀할 수 있는지를 고스란히 증명하는 상징적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른바 '황금폰'이라 알려진 정준영의 휴대폰을 경찰이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다는 지적이다. 당시 경찰이 휴대전화가 망가졌다는 정준영 측 진술만 그대로 믿고 중요 증거를 복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 정도다. 12일 방송된 < 8뉴스 >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지난 12일 방송된 SBS < 8뉴스 > 중 한 장면.ⓒ SBS
"정씨 측은 끝내 휴대전화가 망가져 복구할 수 없다는 의견서를 제출했고, 경찰은 복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복구 전에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입니다. 또 정준영씨가 영상 촬영 사실을 시인하고 녹취록과 같은 다른 증거도 확보한 상태여서 휴대전화가 없어도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남은 문제들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경제력을 쌓고, 그 경제력이 결국 권력이 되고, 그 권력을 이용해서 많은 악행을 저지르는, 악의 순환 고리가 형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중략) 다수의 공권력과 어떤 유착관계들이 담겨 있는 자료였고 특히나 경찰과 유착관계가 굉장히 의심됐습니다. 이거를 도저히 경찰에 넘겼을 때 정말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까."
정준영의 휴대폰 대화 자료를 국민권익위에 신고한 방정현 변호사는 <8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연신 제보자의 신변과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설상가상이라 해야 할까. 정준영의 전 여자친구가 처음으로 고소하고 2년 7개월이 흐른 지금, 정준영과 그 지인들의 '디지털 성범죄 행각'은 더 큰 게이트로 비화될 조짐이다. 2016년 경찰 수사가 어떤 점에서 부실했는지에 대한 실마리도 드러나는 중이다.
▲13일 방송된 CBS <김현정의 뉴스쇼>의 한 장면. 정준영 카톡방 관련 공익제보자 방정현 변호사가 출연했다.ⓒ CBS
1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한 방 변호사는 경찰이 아닌 국민권위익에 제보한 이유에 대해 "경찰과의 유착관계가 의심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료를 검토해 보니 제보자가 왜 이렇게까지 공개를 꺼려했는지 이유를 알겠더라. 그 안의 내용들을 봤을 때 경찰과 유착 관계가 굉장히 의심되는 정황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제보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무서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 변호사는 "(대화 내용에 경찰 관계자가) 등장은 여럿이 하는데 다 유착이 돼 있다기보다는 가장 큰 우두머리하고 유착이 돼 있으니까 (지시가) 내려오는 형태로 보인다"고 밝혔다. 진행자가 "가장 높은 직급, 가장 우두머리라고 표현한 그 사람은 어느 정도의 직위냐"고 재차 묻자 방 변호사는 "말씀드리기 곤란하다"면서도 "서장 수준은 아니고 더 위"라고 답했다.
방 변호사의 인터뷰와 후속 제보가 중요한 것은, 3년 전 경찰이 정준영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고 처벌해 불법 촬영물 범죄에 경종을 울릴 수 있었다는 걸 입증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는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이었고, 디지털 성범죄나 불법 촬영물 공유 사건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지금과는 달랐다. 그 사이, 안타깝게도 또 다른 피해자들은 늘어만 갔다.
버닝썬 사건과 빅뱅 승리의 입건 이후 드러난 정준영을 향한 국민적 공분은 범죄 자체도 반 인권적이지만, 그 사건이 무마됐던 정황 역시도 매우 의심스럽기 때문이리라. 여기에 일반인 여성들이 실제 다수 피해를 입은 사건이고, 양진호 사장의 구속 이후 날로 경각심이 높아져가는 디지털 성범죄라는 사실 역시 공분을 키웠다.
더욱이, 정준영 사건은 남성 중심의 성접대, 유흥 문화의 폐해를 총체적으로 증명하는 버닝썬 사건이 드러나면서 함께 수면 위로 올라왔다. 성접대, 약물과 성범죄 등 버닝썬 사건이 쏘아올린 성범죄와 정준영 사건 역시 같은 DNA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방 변호사의 제보를 통해 고위 수사기관 관계자와의 유착 관계까지 그 의혹을 더하고 있다.
버닝썬 사건에서 보듯, 그저 방송인 정준영 개인이 연예인 생활을 중단하고 평생 반성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3년 전 무혐의 처분으로 정준영이 연예인 생명을 연장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은 경찰 수사에서 경찰 고위관계자를 포함해 수사기관의 유착 관계까지를 성실하게 밝혀내는 것이다.
▲ ‘장자연 사건’ 참고인 조사 마친 배우 윤지오‘장자연 사건'의 목격자로 알려진 고인의 동료배우 윤지오씨가 12일 오후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와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권우성
또 하나, 고 장자연씨의 동료 배우 윤지오는 12일 검찰 조사 전후 기자들과 만난 후 13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제 시선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은 아직은 권력과 재력이 먼저인 슬픈 사회네요"라며 "유독 언니의 사건이 (언론 기사에) 오를 때마다 비이성적으로 유독 자극적인 보도가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매번 보면서도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일각에서는 정준영 사건에 쏠리는 관심으로 인해 여타 이슈들이 묻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버닝썬 사건 수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보도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렇지 않다. 남성 권력 중심의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괴물 같은 사건들은 결코 그 뿌리는 물론 구조와 양상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13일 오전 정준영 사건 보도에 맞춰 낸 입장 역시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지난 12일 방송된 SBS < 8뉴스 > 중 한 장면.ⓒ SBS
그 중 "촬영물을 이용한 사이버성폭력이 더 이상 '남성문화'의 일부가 되지 않으려면 비동의 촬영과 유포를 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유포된 영상을 공유하거나 시청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남성사회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는 부분이야말로 많은 사람이 새겨야 할 말 아닐까.
장자연 사건과 버닝썬 게이트의 경중을 따지기 전에, 두 사건의 뿌리가 같다는 걸 인식하며 비뚤어진 인식과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지금의 분노가 불법촬영물 유통 및 소지 처벌을 제도화하는 힘으로 모이길 바란다"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요청이 현실로 이뤄지려면 말이다.
한편 <버닝썬, 정준영 그리고 남성연대>라는 제목의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논평 내용은 아래와 같다. 조금 길지만 전체를 인용하는 이유는 불법 촬영 및 유포 사건에 대한 경각심은 물론 남성 중심의 한국사회가 드러내는 난맥상을 제대로 짚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논평 전문이다.
<버닝썬, 정준영 그리고 남성연대>
2018년 12월, 버닝썬 클럽 폭행 사건이 공론화된 지 벌써 3개월이 되었다. 어제부터는 가수 정준영의 불법촬영 및 유포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사건들을 따라가며 익숙함을 느낀다. 이 새로울 것이 없는 새로운 사건들은 한국사회의 남성연대가 어떻게 여성을 도구화하고 재화로 활용하며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1. 단톡방 내 불법촬영물 유포
정준영 카톡방 불법촬영 및 유포 사건에서 알 수 있듯, 불법촬영물 유포는 온라인 공간에 공공연히 게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 간 메신저로 공유하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진다. 불법 포르노사이트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피해촬영물을 소비하는 문화는 오프라인 남성집단에서 더욱더 끈끈한 형태로 적용된다. 남성들만의 공간에서, 여성은 인격체가 아닌 물성을 가진 신체로만 존재한다.우리는 여성이 남성문화에서 '남성성'을 인정받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준영 사건이 크게 논란이 된 것은 그가 전에 없던 극악무도한 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사회 곳곳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여성과의 성관계 경험을 과시하는 수많은 '정준영'들이 존재한다. 그가 공인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한사성에 상시 접수되는 다른 사건들처럼 주목받지 못한 채 지나갔을 것이다. 여성을 전리품으로 삼아 착취하는 남성문화는 여전히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2. 클럽이라는 성착취카르텔
클럽 버닝썬은 강간을 파는 공간이었다. 강간을 산업화하는 일은 그에 협조하고 묵인하는 남성연대 속에서 가능했다. 클럽 MD 들은 '싱싱한 골뱅이'가 준비되어 있다며 약에 취해 기절한 여성들의 나체를 유포하는 호객행위를 했다. 여성들이 그 거래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거래를 원하는 남성들과 그 거래를 위한 돈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계약이 성립되었다.
지역 경찰은 단돈 230만 원에 이와 같은 여성폭력의 현장을 눈감아주는 형태로 남성연대를 공고히 했다. 대단치도 않은 돈을 받고 여성폭력 현장을 눈감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성의 안전과 인권이 그들에겐 230만 원보다 저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클럽 측은 돈벌이를 위해 필요한 물 좋은 여자 게스트, 일명 '물게'들은 무료로 입장시키고 술을 서비스로 제공했다. 강간당하고 불법촬영 당할 소비재를 공급하기 위해 클럽의 '삐끼'들은 지나가는 여성들의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성매매 산업을 통해 더 편리하게 여성을 공급하기도 했다. 클럽 버닝썬의 단톡방에는 재력가를 접대하면서 '잘 대주는 여성', '창녀'를 준비하라는 발언이 나왔다. 승리는 현재 성매매 알선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상태이다.
클럽 버닝썬 사태는 우리에게 몇 가지 키워드를 남겼다.
"강간 약물 산업 - 클럽 MD - 여성 무료입장 - 지역 경찰과의 유착 - 성매매 - 약물 강간 - 비즈니스를 위한 성접대"
이와 같은 키워드가 여성들이 '놀기 위해' 드나들던 공간에서 나온다는 것은 거대한 남성연대, 성착취 카르텔이 얼마나 우리의 일상에 밀착되어 있는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웹하드 카르텔처럼, 아직 선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유사 카르텔이 사회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3. 남초커뮤니티의 반응
불법촬영물은 오랜 시간 남성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메신저 속에서 일종의 놀이 문화로 소비되어 왔다. 남성들은 자신이 존재하는 온, 오프라인의 모든 공간에서 해당 행위를 익숙하게 경험해 왔기 때문에 불법촬영과 유포가 범죄인 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그를 묵인하고, 동조하기 쉬웠을 것이다.
직접 촬영과 유포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방관과 동조를 통해 기꺼이 공범자가 되어주었던 남성들은 '잘못 걸린' 가해자에게 공감과 측은함을 드러내는 한편, 피해자 여성의 신상을 추적하고 영상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매 사건마다 피해경험자를 추적하는 검색어가 인기 순위에 오르는 일관된 반응 속에서, 언론은 피해자의 신상을 드러내는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한다.
자신 또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불법촬영 및 유포를 경험했을까봐 불안해지는 대신 '그래서 그 여자는 누구래?'라고 유쾌하게 질문할 수 있다면, 그 질문을 가능케 하는 권력은 어디서 온 것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피해자에게 향하는 화살을 성폭력 피해를 상품화해 재소비하는 남성연대에게 쏘아야 한다.
촬영물을 이용한 사이버성폭력이 더 이상 '남성문화'의 일부가 되지 않으려면 비동의 촬영과 유포를 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유포된 영상을 공유하거나 시청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남성사회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과 영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이버성폭력 사건이 완성된다. 새롭지 않은 새로운 사건들을 기억하며, 이와 같은 성폭력을 함께 파훼하는 연대자가 되어 달라. 지금의 분노가 불법촬영물 유통 및 소지 처벌을 제도화하는 힘으로 모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