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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n 15. 2020

독보적인 '여성' 변호사 캐릭터의 탄생, 신혜선의 호연

영화 <결백>


▲ 영화 <결백> 스틸컷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주), (주)키다리

 

종종 '어, 정말 그랬어?'라고 되돌아보게 되는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난감하다. 한국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면면을 돌아보는 일도 그러하다. 지난해 2월 정우성 주연의 영화 <증인>의 개봉 당시 영화 전문지 <씨네21> 온라인판 '씨네플레이'가 내놓은 <관객 마음 뒤흔든 한국영화 속 변호사 캐릭터 6>이란 기사가 딱 그러했다.


'송우석 변호사(<변호인>의 송강호), 이준영 변호사(<재심>의 정우), 변호성 변호사(<성난 변호사>의 이선균), 강림 차사(<신과함께> 시리즈의 하정우), 윤진원, 장대석 변호사(<소수의견>의 윤계상, 유해진)'


눈으로 확인한 그대로다. 공통점은 모두 '남성' 변호사다. <증인>의 '좋은' 변호사 순호 캐릭터를 연기한 것 역시 정우성이었다. 이 6편 모두 2010년대 영화다. 근 10년 간 유의미한 '변호사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 모두 남성 배우들이라는 사실은 꽤나 문제적이다. 2000년대나 20세기 한국영화로 시야를 확장해본들 달라질까.


그나마 <배심원들>에서 국민참여 재판을 주도하는 주심 판사를 '여성 배우' 문소리가, 공판 검사를 이영진이 연기한 것에 안도해야 할까. 아니면 <더킹>에서 김소진이 '정치검사' 정우성과 조인성을 질책했던 연기를 소환하면 될까.


그보다는 그 흔한 재판 장면 하나 없이도 극적 긴장감을 잃지 않는 <에린 브로코비치>의 '엄마'이자 '변호인' 줄리아 로버츠의 연기를 확인했던 것이 2000년이요, <어 퓨 굿맨>의 톰 크루주의 동료 군법무관을 데미 무어가 연기한 것이 1992년이었던 점을 떠올린 필요가 있어 보인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드리워진 한국 영화계의 암운을 헤치고 지난 10일 개봉,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결백>이 시종일관 눈길을 끄는 요인이 바로 여기 있다. 남성 변호사의 동료도, 애인도, 친구도 아닌 능력 있고 당당한 여성 변호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 해결을 주도하고 속 시원히 활약하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 흔치 않은 주인공 정인을 연기한 신혜선의 호연 또한 근래 들어 한국영화에서 주목받는 '여성서사'의 측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눈여겨 볼 만하다. 결론적으로, <결백>은 코로나19 상황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넘는 관객들이 극장에서 즐겼을 만한 미덕을 자랑하는 '대중영화'다.


처음 만나는 여성 캐릭터, 신혜선의 호연

   

▲ 영화 <결백> 스틸컷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주), (주)키다리


가족들을 뉴스에서 목격했다. 어머니 화자(배종옥)가 살인 용의자로 몰려 구속됐다는 소식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대형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정인(신혜선), 대학 입학 이후 발길을 끊었던 시골 마을로 한달음에 내달린다.


이미 구속된 화자는 장례식이 한창이던 시골집에서 마을 사람들이 마신 막걸리에 농약을 탔다고 했다. 이 믿기지 않는 소식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 가족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동생 정수(홍경) 하나. 보다 못한 정인은 급성 치매를 앓는 엄마의 변호를 자처하고, 곳곳에 남겨진 석연치 않은 단서들을 쫓아 사건을 재구성해 나가기 시작한다.


'살인자로 몰린 채 치매를 앓는 엄마의 변호를 맡은 여성 변호사'로 한줄 요약한 <결백>은 스스로의 설정과 캐릭터에 의지한 채 놀라울 만치 빠른 호흡으로 내달린다. 유능하고, 강단이 넘치며, 자신이 떠나온 가족과 고향이 탐탁지 않은 정인은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가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태에 빠진 사건을 일으킨 살인자일 리 없다는 믿음 아래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내달린다'는 표현 그대로 <결백>은 중간 중간 정인이 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또 그 과거는 어떻게 현재의 사건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회상 장면마저도 속도감 있게 전개해 나간다. 자칫 호흡이 가파를 정도로, 정인을 제외한 인물들이 기능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 만큼 지역 공동체를 휘젓고 다니는 정인의 추리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묘한 쾌감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예상하고 객석에 들어선 관객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을 정도의 제약과 갈등이 주어지고, 깐깐하고 화가 난 여성 변호사가 이를 척척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이러한 기본 설정은 곧장 젊은 전문직 여성이 공고한 남성 지역 공동체의 오래된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 끝엔 이 공동체를 주무르는 추시장(허준호)가 자리한다. 정인은 추시장의 하수인들인(지역 경찰과 변호사, 사업가 등)과 홀로 맞선다. 옛 친구인 양순경(태항호)의 조력을 받아, 동생 정수의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며.


신혜선이 연기하는 정인은 이 공동체의 남성 구성원들을 향해 호통치고, 증거 조사와 증인 인터뷰, 미행과 녹취를 포함해 물리적 폭력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진상을 조사하고, 급기야 결정적 단서를 획득한 이후 법정에서 추시장과 맞서고 그와 한패인 증인들을 압박한다. 일정정도 현실을 담보하면서 '보는 맛'이 출중한 설정이랄까. 


단순한 듯 단단하게 확립된 여성 캐릭터가 활약하는 이러한 장면들은 표면상 '여성판 <이끼>'란 수식이 모자라지 않을 정도다. 물론, <결백>이 바탕에 깐 이런 기본 설정과 전개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감정의 분출로 이어지리란 예상도 어렵진 않다. 분명 구식일 수 있지만 관객들에게 소구력을 지니고 장르적으로도 활용이 용이한 전통적인 한국식 '엄마와 딸'의 관계 설정 말이다.


엄마와 딸, 그리고 소외된 이들의 투쟁기 

   

▲ 영화 <결백> 스틸 컷 ⓒ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주)

 

회상으로만 출현하는 아버지의 존재와 그의 과거는 아니나 다를까 '엄마와 딸'의 과거와 현재를 지배하는 중이다. 정인은 대학 입학을 반대하는 아버지의 오래된 물리적‧심리적 폭력에 시달리다 고향을 등졌고, 화자는 그런 딸을 지켜주지 못한 회한을 내내 간직하고 있었다는 다소 '올드'하지만 이야기의 흡착이 빠른 설정을 밀어 붙인다.


대부분이 회상을 통해 제시된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설정은 정인 캐릭터의 심리와 행위를 관객에게 쉽고 빠르게 이해시키는 한편 관계의 회복이란 주제에도 기능적으로 복무한다. 엄마 화자가 처한 상황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결백>은 후반부 예상가능한 신파와 공감을 오갈만한 '오열' 장면을 배치해 놓기도 했다. 애초 감춰놓은 사건의 반전과 함께.


하지만 관계의 회복을 포함해 이 모두를 정인이 주체적으로 해결하고, 회상 장면을 포함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행위의 주체 또한 모녀라는 점에서 다소 올드하게 보이는 단점이 상쇄되기도 한다.


첫 주연작에서 꺼이꺼이 울어 젖히는 오열 장면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며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신혜선과 과거와 현재, 젊은 시절과 노년 연기를 무리없게 소화한 배종옥의 호연을 바탕으로.


다른 한편으로, <결백>은 <또 하나의 약속>과 <재심>의 제작사가 일종의 3부작으로 완성한 억울한 타자 혹은 약자의 (법정) 투쟁극이기도 하다. 앞선 두 편이 각각 삼성 백혈병 피해자 아버지의 투쟁기이자 억울하게 누명을 쓴 채 재심에 나섰던 '약촌 오거리 사건'이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반면, <결백>은 실제 벌어졌던 '막걸리 농약 살인사건'이란 도입부 소재를 제외하곤 좀 더 영화적인 상상력에 기댄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잦은 회상 장면과 현재의 이음새나 사건의 진상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는 덜컹거림, 형식적으로 쉬운 선택들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영화 도입부 인상적인 롱테이크 장면과 같은 연출적인 야심이 후반부로 갈수록 설명적으로 이야기의 전달에 치인다는 인상도 없진 않다.


관건은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단단하고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와 단순한 듯 강력한 주제 전달에 성공한 <결백>의 장점에 관객들이 얼마나 호응하느냐일 터.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을 연기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선보인 <결백>이 오래오래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지, 한국영화 신작을 갈망했던 관객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손익분기점을 돌파할 수 있을지의 관건은 바로 여기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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