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망가뜨린 미국, 이 다큐가 말하는 진실
▲ <토탈리 언더 컨트롤>의 한 장면 ⓒ 왓챠
"미국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60% 가량 과소 집계됐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Covid cases in US may have been undercounted by 60%, study shows')
영국 <가디언>의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꽤나 충격적이다. <가디언>은 미 '국립과학아카데미'(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된 워싱턴 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의 최신 연구결과를 인용, 전체 미국 인 인구 중 '5명 중 1명' 꼴인 6500만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최근 'corona board' 사이트의 코로나19 실시간 상황판이 지난달 29일 집계한 미국 내 누적 확진자가 3558만 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수치다. 해당 연구진은 확진자 사망률, 일일 검사 횟수, 검사자 중 확진자 비율 및 인디애나 주와 오하이오 주 시민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표본을 무작위로 추출한 연구 데이터를 활용해 이 같은 수치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백신 접종율이 미 북동부보다 낮은 아칸소, 미주리, 루이지애나 주 등 미 남부와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델타 변이 감염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마다 코로나19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정도가 다르고 검사 건수도 다르기 때문에 과소집계 된 주일수록 델타 변이 감염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미 델타 변이는 미국 내 우세종으로 자리 잡았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한 달 간 미국 내 확진자 중 51% 이상이 델타 변이 감염자로 나타나면서 델타변이가 우세종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만약 60%나 과소집계됐다는 연구결과가 사실이라면 "미국 내 집단면역도 늦어질 수 있다"는 연구진의 주장 또한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해당 조사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 접종률 및 확진자의 미국 내 지역 간 격차가 뚜렷했다는 사실이다. 누가 이 같은 차이를 불러왔을까. 앞서 언급된 주들이 지난 두 차례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세 지역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미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 1월 취임사에서 '과학의 귀환'을 선포한 것과 달리 코로나19 팬더믹을 둘러싼 '트럼프의 망령'이 아직도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이후 OTT 플랫폼 '왓챠' 공개됐던 다큐멘터리 <토탈리 언더 컨트롤>을 보면,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62만 명의 코로나19 사망자를 발생시킨 주범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란 합리적 의심이 확신으로 변모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팬데믹 방역에 있어 정치와 리더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트럼프라는 주범과 공범들
▲ <토탈리 언더 컨트롤>의 한 장면 ⓒ 왓챠
"(코로나19 환자는) 단지 중국에서 입국한 한 명뿐입니다. 곧 사라질 거예요. 진정하세요. 며칠 내로 확진자가 '제로'(0명)로 떨어집니다. (바이러스는) 우리의 완전한 통제 하(Totally Under Control)에 있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지난해 2월 미국에서 코로나19 최초 확진자가 나왔을 무렵부터 트럼프는 줄기차게 이런 주장을 펼쳐왔다. 예상했다시피, 거짓말이었다. <토탈리 언더 컨트롤>은 트럼프가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그로 인해 왜 미국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명쾌하게 분석한다.
그 증거는 여러 내부 고발자와 전문가들, 의료진들의 증언이다. 그 증언들은 지난해 트럼프 정부가 어떻게 코로나19 방역을 정치에 이용했는지, 또 그 반대로 실제 방역엔 얼마나 무능했는지, 아니 방역 자체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가감 없이 까발리는 역사의 기록이다. 그 증언을 따라잡다보면 실로 공포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트럼프의 관심사는 오로지 재선, 또 재선이었다.
"CDC(미 질병통제예방센터,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의 수많은 과학자들과 연구자들은 과학이 경제나 정치적 이유로 타협해야 한다는 논리를 별로 안 좋아해요. 그들은 순수주의자이고 싶으니까요.
도널드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과학을 엄청나게 경멸해 온 대통령이에요. 트럼프 백악관은 CDC를 '딥 스테이트'(일종의 '권력 내 사조직' 혹은 그림자 정부)라 불렀어요." (마이클 시어, 뉴욕 타임즈 백안관 출입기자)
일찌감치 트럼프는 과거 에이즈 위기 당시 종교적인 방법론을 설파했던 바이러스 학자를 CDC 수장으로 앉혔다. 제작진이 개발한 일종의 비대면 "코로나 카메라"를 마주한 전문가들은 이미 중국발 위기가 감지됐던 지난해 1월, 트럼프와 이 로버트 레드필드 CDC 센터장이 실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말 그대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자세로 코로나19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바이러스"라며 경고를 보냈지만, 트럼프는 들은 채 만 채였다. 오로지 경제 재건이란 재선 전략만이 트럼프의 관심사였다. 트럼프가 임명한 보건 당국 고위 관계자들 역시 전문가들의 재난 관련 회의 소집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이유를 못느낀다"며 일축했다.
백악관 내 CDC와 FDA(미 식품의약국)를 담당하는 알렉스 애저 보건복지 비서관 또한 거대의약업체 출신으로 인슐린 가격의 3배 인상을 주도해 악명을 떨쳤던 '친기업' 인사였다. 그가 사태 초기 트럼프에게 "해결 할 수 있다"라는 언질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바로 그 대목이 '독약'이었다.
훗날 백악관의 책임론에 대해 내부고발에 나선던 릭 브라이트 미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 전 국장에 따르면, 애저 비서관은 약품 및 백신, 진단 키트 제작 등 사태 초기 신속한 대응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초기 개발 비용이 100억 달러에 달한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공포
▲ <토탈리 언더 컨트롤>의 한 장면 ⓒ 왓챠
바이러스를 우습게 알고 비용의 측면만 따진 트럼프 백악관이 불러 온 결과는, 우리가 보는 미국의 재난 상황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트럼프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방역 책임자로 앉혔지만 그가 이미 악화일로였던 확산세를 막을 리 만무했다.
어디 그 뿐인가. 더 큰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과거 오마바 행정부가 쌓아온 팬데믹 대비 매뉴얼을 모두 폐기했을 뿐 아니라 소중한 자산인 '맨파워'(인력)들까지 퇴출시켜버렸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대신해 태스크포스에 기용된 이들은 대부분 트럼프의 정치적, 종교적 기호에 맞는 기업인이나 법조인들이었다. 정치가 과학과 방역을 집어 삼키는 생생한 현장 그 자체였던 셈이다.
그 결과, 이처럼 망가진 CDC는 사태 초기 문제점이 드러난 검사 키트를 걸러내지도 못한 채 소위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다. 콘트롤 타워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끌자 각 주의 공공보건 연구소 및 공공병원들은 패닉에 빠져 버렸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개발도상국을 위해 WHO가 개발한 검사 키트를 도입해야 했다. 방역 정책의 치욕적인 '실패'였다.
과학을 불신하는 트럼프가 등용한 관료들이 장악한 CDC와 FDA 모두 쓸모없고 비효율적인 관료주의에 집착했고, 그러는 동안 검사 키트를 개발할 프로토콜 자체가 망가졌다. 그 사이 바이러스가 무섭게 퍼져 버렸다.
하나 같이 자괴감을 호소한 이들 미국 내 전문가들은 트럼프 인사들이 허비한 그 골든타임을 '잃어버린 1달'이 칭했다. 이들은 개별적으론 에둘러 표현했지만, 모두 다 그 '잃어버린 1달'만 제대로 대응했다면 아마도 세계인을 놀라게 한 미국의 확진세도, 사재기와 폭력을 부른 국민들의 패닉도 없었을 것이요, 안타까운 사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코로나19 백악관 태스크포스 실무자로 일했던 내부고발자의 증언에 따르면, 일개 인턴들이 코로나19 대응의 전반적인 실무를 '알아서' 처리해야 했다고 한다. 참담하다. 그 태스크포스의 책임자는 트럼프의 사위이자 이방카 트럼프의 남편인 재러드 쿠시너 백악관 수석고문이었다.
더 나아가, 트럼프는 본인이 가짜뉴스의 생산자를 자처했다. 트럼프가 어느 시골의 가정의학 박사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제안한 '하이드록시 클로로퀸' 약품의 초기 치료법을 마치 '기적의 치료제'처럼 실제 선전하고 다닌 것이다.
일론 머스크와 폭스뉴스가 가짜뉴스 배포에 동참한 '하이드록시 클로로퀸' 치료법은 당연히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었다. 그 치료법을 트럼프에게 제안한 블라디미르 젤리코 박사가 '코로나 카메라' 앞에서 증언하는 실제 상황 하나하나는 흡사 블랙 코미디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어이없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직접 확인하시길. '이것이 초강대국 미국의 진면목이었다니'라는 허탈감이, 아니 공포가 엄습해 올 것이다.
K-방역이란 좋은 예
우리 입장에서, <토탈리 언더 컨트롤>의 흥미로운 지점은 또 있다. 제작진이 코로나19 대응의 좋은 예로 바로 K-방역을 공을 들여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제작진까지 따로 꾸린 알렉스 기브니 등 연출진은 한국 정부의 사태 초기 대응 및 코로나 키트 개발, 신천지 사태 등 대구 1차 대유행에 대한 대응 등을 상세히 소개한다.
이를 위해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김진용 과장과 빅토리아 김 <로스앤젤레스(LA) 타임즈> 서울 특파원이 '코로나 카메라' 앞에 앉았다. 이들이 설명하는 사태 초기 우리 정부의 신속한 코로나 검사 키트 및 IT 기술을 접목한 추적 시스템 개발, 이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을 듣고 있노라면 앞서 체험(?)한 공포와는 확실히 다른 안도감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김진용 과장이 "의학 지식의 90%를 미국 전문서적에서 배웠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선 사태 초기 "왜 비슷한 시기 확진자가 나온 한국처럼 대응하지 못하느냐"고 토로했다던 미국인들의 원성이 들리는 착각마저 들 것이다.
'K-방역'에 대한 '자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위 '국뽕' 얘기도 아니다. <토탈리 언더 컨트롤>도 딱히 '문재인 정부'를 강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다큐가 가리키는 것은 명확하다. 그때 트럼프가 하지 않은 것과 문재인 정부가 한 것, 그 차이 말이다.
그리하여 강조 또 강조되는 것이 결국 '정치'요, 콘트롤 타워다. 과학을 불신한 채 오만함에 빠진 정치가 그 과학을 장악했을 때 벌어지는 재앙 말이다. 이를 지난해 트럼프 정부가 확인시켜줬다. <토탈리 언더 컨트롤>은 그 망가진 정치와 시스템으로 인해 누가 피해를 입었는지, 왜 수많은 이들이 안타까운 목숨을 희생당해야 했는지를 처절하게 되짚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큐 전반에 자괴감이, 슬픔이 흐른다. 사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현실이다. 앞서 소개한 워싱턴 대학 연구지의 조사결과야말로, 델타 변이를 동반한 코로나19의 재유행이 지난해 미국인들의 괴롭혀온 트럼프의 유산임을, 그 유산이 계속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알리바이인 것이다.
코로나19와의 우울한 공존이 예상되는 이 팬더믹 시대의 미국을 조명했던 <토탈리 언더 컨트롤>의 주제는 그래서 만국공통의 진리로 귀결된다. '투표 잘 하자!'. 그리고, 미국은 이제 '바이든의 시간'으로 접어 들었다. 우리는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다. 그런 이유로 더더욱, 4차 대유행에 신음하는 우리 국민들에게 <토탈리 언더 컨트롤>을 추천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