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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Aug 17. 2022

마침내, 20년


어제, 대학교 2학년 후배들과 만났다. 마침내, 20년. 그때 그 시절엔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만남.


24살 2학년 복학생은 안타까웠다. 군대 갔던 2년 간 국문과 학생회지가 내부 사정으로 휴간에 돌입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 이름도 고색창연하고 문과스러운 <연촌문향>. 선배들과의 문의를 거쳤고, 함께 할 우군들을 협박 반 읍소 반으로 꼬셨더랬다.  


"명색이 국문과인데 과 문예지, 학생회지가 없는 게 안 쪽팔리냐"고.


월드컵 개최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던 2002년 봄, 학과장이던 최 교수님 방에 무작정 쳐들어갔다. 지난 예산 안 쓰셨으니 그 돈 저 달라고, 책임지고 올해 연말까지 만들어 내겠다고. 내놓을 수 있는 모든 형식을, 인맥을 총동원했다.학생회가 아니라 독립된 조직을 고수했다.  시, 소설, 비평, 기획기사, 설문조사, 토론회, 인터뷰 등등. 선배들한텐 공치사를 좀 했고, 후배들에겐 계속 이어가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다음해 편집장으로 세웠던 후배가 도망가는 바람에 다시 한번 후다닥 만들었다. 2005년 8월, 7년 반 다닌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이후로 다시 휴간에 돌입했다.


서른, 영화기자 3년 차이던 2008년 여름, 한창 주간지 만들던 그때 05학번 후배가 만나자고 찾아왔다. "선배, 연촌문향 제가 다시 만드려고요." 힘내라고 술을 사주던 자리에서 내가 취해서 그랬었다. "미쳤구나, 뭐하러 그 고생을 하려고." 지금은 아이 엄마가 된 그 후배는 굳세고 멋지게 책을 만들었고, 그 이후로도 후배들을 소개시켜줬다.


2008년 이후 그 <연촌문향>이 2022년까지 제작되고, 연준사라는 이름으로 매해 거르지 않고 후배들이 조직되고 있단다.  학내에선 신입생들에게 국문과를 대표하는 활동으로 소개할 만큼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 후배들이 졸업생 선배 몇몇의 이야기를 담겠다고 연락이 왔고, 그 인터뷰 중 하나로 어제 후배들 셋을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 나누다 보니 2시간 후딱이더라. 20년 전 열혈 강사와 복학생으로 만나, 지금은 국문과 교수님이 되신 고명철 형도 자리를 빛내 주셨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그 시절 도와줬던 고마운 선후배들 생각도 나고. 이것저것 질문해 준 후배들도 고맙고. 직업병 못 버리고 또 그 후배들에게 질문을 하고.  


마침내, 20년. 오래 살아 남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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