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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Oct 03. 2022

더 영리해진 '정직한 후보2'... 과감함이 미덕


▲ 영화 <정직한 후보 2> 스틸컷 ⓒ (주)NEW

 

2년 전 <정직한 후보>를 봤을 당시 세 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째, 라미란이란 배우를 원톱인 여성 정치인 캐릭터로 내세운 점. 과감했다. 기록적 시청률을 기록한 <응답하라 1988>로 경력의 정점을 찍은 이 연기 잘하는 여성 배우를 원톱으로 캐스팅하는 파격은 관객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둘째, 할머니의 저주 혹은 축복으로 인해 '진실의 주둥이'로 거듭나는 판타지 설정. 한국영화에서 가장 약한 고리 혹은 우리 관객들이 꽤나 거북스러워하는 것이 바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와 같은 설정이다. 거짓말을 일삼던 주상숙(라미란)이 진실의 주둥이로 거듭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각인시키는 이러한 설정이야말로 <정직한 후보>의 가장 큰 미덕이자 이를 관객들이 용인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놀라움을 안겨 준다.


셋째, 근사한 정치 코미디 프랜차이즈의 출발. 한국은 분명 '정치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영화, 정치코미디는 환영받지 못했다. 영화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다이나믹 코리아의 일면이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존재했다.


<정직한 후보>는 '진실의 주둥이'라는 블랙 코미디와 같은 단단한 설정 하나만으로 한국 정치코미디의 약점들을 간단히 뛰어 넘어버린다. 일종의 '안티 히어로'인 주상숙이 당하고 조롱받고 당혹스러워하는 장면들의 연쇄가 현실 정치를 조소하게 만드는 강력한 재미를 유도하는 것이다.


단 2년 만이다. '부패 정치인, 거짓말을 금지 당하고 진실만 말하게 변모하다'라는 이 강력한 한줄 요약이야말로 <정직한 후보>가 비교적 단시간 안에 속편을 제작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을 터다. 코로나19 팬데믹 시작 즈음 개봉, 150만이란 출중한 성적을 올렸던 이 정치 코미디의 성공은 유독 부진을 면치 못했던 한국 코미디 장르의 부활의 신호탄으로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코로나19의 힘이 약해지고 일상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있는 2022년 9월 28일, <정직한 후보2>가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전편으로 쳥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라미란을 위시해 김무열, 윤경호 등 전편의 용사들이 무사 귀환했고, 장유정 감독 역시 재차 메가폰을 잡았다. 놀랍게도, <정직한 후보2>는 스스로가 속편이라는 포지션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영리한 전개를 선보이는 작품이었다.


영화 속 미덕들


적잖게 놀랐다. <정직한 후보2> 초반부가 사건을 전개시키는 속도감과 호흡에. 고향 강원도에서 생선 손질하며 말 그대로 '초야'에 묻혀있던 주상숙이 다시 정계에 복귀하기까지를 그리는 도입부 호흡은 그 경쾌함과 간결함의 속도가 최근 여느 한국영화와 비교해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속도감이 다가 아니다. 주상숙을 중심으로 여성 캐릭터가 강조되는 한국 상업영화 주변에 항상 등장하기 마련인 무능한 남편 봉만식이나 언어의 연금술사라 부를 만한 얄미운 시누이 봉만숙(박진주)의 소개 이후, 갖가지 영화적 효과로 사건을 전개시키는 연출력이 코미디 영화로서의 출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게 본 게임이 아니라는 듯, 강원도지사 당선과 임기 1년 후까지도 한달음에 내달린다. 도대체 본론은 언제인가라는 물음이 나올 때쯤, '진실의 주둥이'가 귀환하는 바로 그 각성이 일어난다. 동시에 의도한 바 대로 희미해져가던 비서실장 박희철(김무열)의 존재감을 되살리는 바다 속에서의 그 각성 말이다.


<정직한 후보2>가 영리한 건 그래서다. 전편은 선거전에 돌입하기 전까지 주상숙의 부패상이나 정치적 역학관계를 충분히 보여준 뒤 '진실의 주둥이'를 소환했다. 이 속편은 전편의 소동으로 인해 개과천선의 기운을 피력하던 주상숙이 도지사직에 적응하며 부정과 오만의 늪으로 재차 빠져들고 나서야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쳐낸다. 역시는 역시다. 주상숙이 망가져야 설정의 재미가 산다는 기본적인 전제를 영리하게 요리하는 것이다.


이후 주상숙의 망가짐은 몇차례 결정적인 코미디 시퀀스로 완벽히 부활한다. 주상숙이 유준상이 특별출연한 대통령 앞에서 '진실의 주둥이'를 주체하지 못한다거나 부하직원들 결혼식에 주례로 나서 보도 듣도 못한 진실된 주례사를 이어가는 장면은 분량도 분량이지만 라미란의 세심하고 포복절도할 연기와 나름 설득력 있는 상황을 통해 영화가 마련한 절정의 유머 감각을 선사한다.


전편이나 속편 전반부까지 모두 다소 밋밋한 캐릭터로 여겨졌던 박희철의 활약이야말로 속편의 감춰둔 무기다. 주상숙을 말리면서 관객의 심정을 대변했던 박희철마저 '진실의 주둥이'를 장착할 때, <정직한 후보2>는 호평을 받았던 정치 코미디 시리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와 견줄 만한 정치인 직장 드라마로서의 무게를 잠시 갖기도 한다.


일상을 을로 살 수 밖에 없는 비서실장 박희철이 "누나"거리면서 도지사 주상숙과 대거리를 할 때 <정직한 후보2>는 스스로가 어디 서 있는지를 분명히하며 정치 코미디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리운다.


꼰대이자 부정과 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상숙의 약점을 박희철이 폭로하고 질타할 때, 캐릭터와 드라마 양 측면 모두 활기를 띄는 것이다. 아마도 이 영리한 속편의 야심은 그런 풍자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선거전과 정치 일반을 넘어 지역 정치와 지자체장에 특화된 소재를 가져온 것도 그래서일 터다.


시사 프로도 못했던 도전

   

▲ 영화 <정직한 후보2> 관련 이미지. ⓒ NEW

 

"전작과의 차별화를 위해 이번에는 정치인이 아닌 행정가로 설정했다. 행정가로서 보여줄 수 있는 디테일한 부분들 모두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했다." (장유정 감독)


자, 이 행정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광역단체장은 지자체 행정에 있어 무한한 권능을 발휘할 수 있고 또 실제 발휘하는 위치다. 계속해서 영리하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편이 서울시장 선거전을 통해 다소 식상한 여의도 정치 일반과 정치가들의 이면을 들여다 봤다면 속편은 강원도라는 지역을 무대로 졸속 전시 행정을 비롯해 왕처럼 군림하는 광역단체장의 파워와 그 작동방식에 천착한다.


장유정 감독이 2년 간 예리하게 칼을 간 것 같은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대표적인 소재는 두 가지다. 강원도 내 랜드마크가 될 주상복합 단지 건설을 위해 주상숙에게 호의적으로 접촉하는 '영앤리치' CEO 강연준(윤두준)은 지금 이 시대의 욕망을 여전히 대변하는 토목 건설 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과 부패한 정치가 결부되는 지점을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상징하는 캐릭터다.


그 '빌런'이 지긋하게 나이를 먹은 '꼰대'가 아니라 스타트업 대표를 연상시키는 '영'하고 '나이스'한 외향의 남성이란 설정도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여기에 이 건설사 CEO 빌런이 소위 '쓰레기 시멘트'를 통해 사익 추구의 도구로 활용하며 파괴하는 대상이 지역의 환경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물론 코미디는 코미디다. 소재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도, 또 소재에 과몰입하지 않고서도 <정직한 후보2>는 그 현실적인 소재가 가리키는 방향타를 정확히 인지하는 장점을 발휘한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지점은 영화적인 기법으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스킵'을 한다. 대신 정치와 코미디의 결합이 여전한 가운데 쉴새없이 주둥이를 놀리는 '정치인' 주상숙의 '셀프 비판'도 계속해서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건축비리를 포함해 앞서 소개한 '늘공'들의 자본가 및 투기세력과의 결탁 또한 주요 인물의 반전을 통해 적절하게 녹여냈다. 이를 두고 '쓰레기 시멘트' 사건 고발에 앞장섰으며 영화 제작에 도움을 줬다는 최병성 목사는 "그동안 수많은 시사 프로들이 입질만 하다 포기했는데 대중 영화가 그것도 코미디 영화가 내용이 정말 어렵고 민감한 시멘트 문제를 쉽고 재미나게 담아냈다"고 칭찬한 바 있다.


무엇보다 배우 라미란과 김무열 '짝패'의 코믹 연기는 1편에 비해 배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미디 영화로서는 드물게 청룡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라미란은 '날아 다닌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주상숙을 말리고 난처하는데 그치며 살짝 갑갑함과 단조로움을 안겨줬던 김무열 역시 '진실의 주둥이'를 부여 받은 이후 특유의 속사포 연기를 마음껏 발산한다. 한국영화계에 새롭계 출현한 신선한 '짝패'가 아닐 수 없다.


사실 150만을 동원한 전편의 흥행 성적은 기억하는 것 보다 높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0 팬데믹을 거치고 OTT 시대를 맞이하면서 근래들어 개봉한 코미디에 대한 관객들의 수요를 거침없이 흡수했다고 볼 수 있다. 예능등을 통해 '호감' 이미지를 쌓아 올린 라미란 덕택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안타까운 건 10월 첫주 연휴를 맞아서도 확대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체 관객 수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정직한 후보2>가 1일까지 모은 누적 관객 수는 29만에 그쳤다. 여기에 같은 코미디 장르인 <공조2>가 장기 흥행을 이어가며 경쟁 중이다. 남부럽지 않은 정치 코미디 <정직한 후보2>가 어디까지 뒷심을 발휘할지 지켜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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