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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Oct 17. 2022

부산영화제 최고 문제작, 아이를 죽인 어른들

BIFF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 진출작 <다음 소희>


15년이 넘도록 리뷰와 칼럼을 쓰고 있어도 어렵습니다. 문학소년, 영화청년으로 성장했어도, 이제는 몇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엎어지기를 반복해도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늘 이야기를 고민하고 콘텐츠에 서사가 없으면 허전할 지경입니다. 어쩌면 세상 또한 개개인의 서사와 이야기로 구성될런지도요. 영화와 드라마를 그 서사와 이야기를 중심으로 탐구해 보겠습니다.[편집자말]


2022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 진출작인 <다음 소희>를 마주하기 전까지, 영화에 대해 접한 정보는 단 두가지였다. 인상적인 데뷔작이자 2014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공식 초청작인 <도희야>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도희야>를 함께 한 배두나가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것.


<도희야>는 8년 전 도착한 문제작이었다. 외딴 지방 소도시의 파출소장으로 부임한 여성 영남(배두나)이 중학생 소녀 도희(김새론)를 만난다. 영남은 소녀 도희가 당한 학대와 폭력의 진상을 하나 둘 알아챈다. 그때부터 단순할 것 같던 이 관계는 지방 마을의 협소한 공간성과 도희 양아버지(송새벽)의 자연스러운 방해, 영남의 성소수자로서의 전력으로 인해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며 예기치 않은 피해자를 낳는다.


영화 속 지방 소도시 공동체는 공권력의 상징인 영남조차 보호받기 힘든 폭력적인 공간이다. 영남이 보호하려던 도희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한 폭력의 발아지인 것은 물론이고. <도희야>는 이 공동체를 지속시켜야만 하는 사람들의 가정폭력 및 왕따 피해자와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한 엇나간 편견이 한국사회의 무시무시한 폭력성과 닮아 있다고 폭로한다.


한국사회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이 겪는 갖가지 폭력에 얼마나 둔감한가.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가해지는 2차 가해는 또 얼마나 잔인한가. 여성인 영남과 도희가 서로를 보듬으려고 할 때마다 가정과 지방 소도시라는 미시와 거시적인 폭력은 둘의 몸부림을 가로 막는다. <도희야>는 이러한 폭력성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영화적인 고발에 가까웠다.


그리고 8년 만에 <다음 소희>가 당도했다. 전작과 비교해 몇가지 공통점이 눈에 띈다. <다음 소희>도 올해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됐고, 배두나가 출연하며, 제목으로 주인공인 피해 여성의 이름을 내세웠다. 하지만 '소희 다음'이 아니라 '다음 소희'라는 작법에서 훨씬 더 냉철하고 집요한 사유의 기운이 감지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제작이자 화제작답다.


<도희야> 이후 8년, 더 깊고 단단해진 시선

   

▲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 크랭크업필름외


한 여성이 댄스 삼매경에 빠져 있다. 이제는 세상에 흔한 아이돌 연습생일까. 휴대폰 영상으로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는 소희(김시은)의 사력을 다한 춤 연습이 길게 보여진다. 성실함이 엿보인다. 곧이어 BJ인 절친과 곱창을 먹다 시비를 거는 남자와 대거리를 하는 소희. 어른에게도 할 말은 하는 결기를 지녔다.


<다음 소희>는 이처럼 통신사 콜센터로 실습을 나가게 된 고등학생 소희의 일상에 카메라를 밀착시킨다. 그 직장이 기존 하청과는 다른 대기업 사무직인 줄로만 알았다. 학교가 소개했고 담임 선생님이 추천했다. 비록 실습생이지만 어엿한 직장인이요, 차별없이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실상은 달랐다. 진상 고객들의 무시와 욕지거리, 인격 모독은 차라리 참을 만 했다. 하청 회사는 현장실습생들을 대량으로 고용, 실적 기계로 활용한다. 그 와중에 소희는 일상이 된 노동 착취와 갖가지 정신적·인격적 모독을 감수한다. 그게 학교와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고 어른이 되는 길일 거라 믿었으리라.


일종의 내부고발자였던 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사 앞에 세워둔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유일하게 장례식장을 찾은 것도, 끝끝내 사건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사인을 미뤘던 것도 소희였다. 그때부터 소희의 회의가 시작된다. 새로 온 여성 팀장에게 인정도 받아보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인센티브를 볼모로 실습생들을 착취하고 경쟁시키는 구조는 그런 소희를 말 그대로 벼랑으로 몰아간다.


정주리 감독은 2017년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도 소개된 바로 그 사건이다. 현실은 비정했다. 특성화고 실습생들의 안타까운 사건이 줄을 이었고, 빠르게 이목을 끌었고, 또 금새 잊혀졌다.


'다음 소희'는 '이전의 소희'들을 기억하고 '다음 소희'를 발생시키지 않고자 하는 영화적인 몸부림의 산물인 것처럼 보인다. 형사 유진이 등장하는 후반부야말로 더한 지옥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의 비정한 세계

   

▲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 크랭크업필름 외


아이가 죽었다. 아무도 책임지는 어른이 없다. 부모조차 아이가 겪은 현실을 까맣게 몰랐다. 학교는 취업률에 목을 맸고, 교육청은 아이들을 숫자로만 취급했다. 경찰은 내부고발을 덮었고, 회사는 도리어 자신들이 피해자라 우긴다. 일말의 죄책감은 느낄지언정 그 누구도 책임감을 발휘하는 어른이 없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죽였다. 이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의 세계다.


<도희야>에서 가정 폭력의 피해 소녀를 보듬었던 파출소장이 <다음 소희>에서 사무직에서 현장으로 배정 받은 여성 형사 팀장이 됐다. 배두나가 연기한 유진이다. 같은 연습실에서 댄스 연습을 했으나 소희를 몰라봤던 유진은 사건의 진상을 부던히도 파헤친다. 소희의 주변을 조사하면 할수록 울분과 자괴감, 무력감이 더해진다. 어른들의 세계가 아이를 죽였으나 그 아이는 '문제 학생'으로 찍혀 있을 뿐이었다.


정주리 감독은 전반부 '소희의 세계'를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포착했다. 너무나도 거대하게 부조리한 현실을 겪는 19살의 버거움에 한 뼘이라도 더 가고자하는 형식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 카메라가 담임 교사 앞에서 눈물을 뚝뚝 떨구는 소희의 얼굴을 정면으로 잡아낼 때, <다음 소희>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좌시하지 않고 제대로 응시하겠다는 결기를 보여준다.


유진이 쫓는 '어른들의 세계'는 비정하고 냉정하다. 흔들리는 카메라 대신 고정된 화면이 지배한다. 그 비정하고 냉정한 세계에 대응하고 재처하기 위해선 유진도, 관객도 냉철함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할 일이 많지 않다. 견고한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건 일개 형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 시스템은 이미 위법과 탈법, 불법이 일상화되고 그 일상이 법망 위에 선 세계다. 유진에게 "수사 다음은 뭐냐"라고 되묻는 뻔뻔한 세계다.


<다음 소희>는 소희 옆에 또다른 소희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공장으로, 택배회사로 현장실습을 나간 소희의 친구들이다. 또 소희를 잃은 충격에 급성 알코올 중독에 걸린 BJ 친구가 그들이다.


형사가 아닌 어른으로서 유진이 할 수 있는 그리 많지 않다. 그 BJ 친구를 병원에 데려다주며 과일을 손에 건네주는 일도 그 중 하나다. 소희와 마지막으로 통화했으나 일 때문에 달려오지 못했던 친구에게 따뜻한 밥 한끼 사주는 일이다. <다음 소희>는 언제라도 연락하라는 유진에게 그 소희의 친구가 "고맙다"며 흐느끼는 얼굴 역시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어떤 어른입니까. 어떤 어른이 되시겠습니까. 그 예쁘게 밝고 쾌활하게 춤추던 소희를 잃은 지금, '다음 소희들' 만들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고. <도희야> 이후 8년, <다음 소희>는 더 현실적인 서사와 더 강력한 질문을 탑재한 채 2022년의 세계에 당도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최대 문제작 중 하나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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