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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l 24. 2023

김은희가 숨긴 메시지... '악귀'는 공포물이 아니다


▲ SBS 드라마 <악귀> 스틸 이미지 ⓒ SBS


"머슴을 키워가 등 따습고 배부르게 만들면 와 안 되는 줄 아나? 지가 주인인 줄 안다. 정리해고 별 거 아이다. 누가 주인인지 똑똑히 알려주는 기다. 정도경영이라 캤나? 내한테는 돈이 '정도'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그룹 진양철(이성민 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얼굴을 위한 자본주의, 착한 자본주의는 없다. 정도를 지켜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때 그 정도는 곧 탐욕과 이음동의어가 된다. 머슴들을 때려잡는 '별 것' 아닌 정리해고는 기본이다. 그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에겐 돈이, 정도(正道)다. 아무리 포장해도, 부패한 자본가의 정도는 거대한 탐욕이고 그 탐욕이 과하면 과할수록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 어느 경제학자는 일반 국민들마저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그 탐욕을 부러워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동명 웹소설을 원작 삼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그 정도를 깨부수고픈 당위와 자본에 대한 동경의 위태로운 줄타기였다. 원작의 경우 '순양가'의 머슴에서 재벌가 막내로 환생·회귀한 진도준(송중기 분)의 복수에 천착했고, 드라마는 이성민과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 덕택에 흔해진 재벌가 비판과 미화 사이에서 갈등했다. 재미의 팔 할은 삼성과 삼성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을, 여타 재벌가를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설정들 덕택이었다.


그에 얽힌 현대사와 재벌가 정주행은 '팩션'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렇게 환생·회귀의 판타지로 현실에 천착했던 기존 설정이 외면될 때, 드라마는 찝찝한 타협이 수반된 불완전한 결말로 남았다. 급작스런 순양가 해체 말이다. 이는 정치, 언론, 사법위에 군림 중인 현실 속 재벌가의 정도를 깨부술 수 있는 건 판타지에서나 가능하다는 현실자각으로 이어졌다. 적잖은 시청자들이 당황스런 결말에 분노했던 이유다.


전체 12화 중 결말부로 달려가는 SBS 드라마 <악귀>를 따라잡으며 <재벌집 막내아들>을 길어 올린 것도 바로 그 자본가의 정도 때문이었다. <킹덤> 김은희 작가의 <악귀>는 자본가의 탐욕이 악귀를 창조했다는 진부한 듯 구체적인 설정을 밀어붙인다. <킹덤>이 왕실이었다면 <악귀>는 대물림되는 부를 향한 탐욕이 비극의 근원이다. 호러 장르라서 가능하고 한국이라 더 현실적인 혐오스런 설정이다. 완성도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 구체성이 신선하고 놀랍다.


자본가의 탐욕이 만든 악귀

   

▲ SBS 드라마 <악귀> 스틸 이미지 ⓒ SBS


"배부른 소리 하지 마. 그때 회사는 기로에 있었어. 우리가 아니었다면 네가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었을 거 같아?"


귀신을 보는 민속학자 염해상(오정세 분)의 친할머니이자 중현캐피털 대표 나병희(김해숙 분)가 손자를 벌레 보듯 하며 일갈한다. 나병희는 남편 염승옥(강길우 분)과 함께 1958년 무당에게 돈을 주고 여자 아이 이목단(박소이 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다. 그것도 다 자본가의 정도 때문이었다. 중현 캐피털의 전신인 중현상사를 일으키겠다는 탐욕이 '악귀' 태자귀를 탄생시켰다. 1958년 이목단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악귀' 연쇄살인의 시작이었다.


원인엔 결과가, 탐욕 어린 성공엔 대가가 따르는 법. 나병희에겐 메피스토의 유혹에 넘어간 파우스트보다 더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1979년 나병희는 악귀의 유혹에 넘어가 남편을 죽음으로 몰았다. "벌을 만큼 벌었으니 이제 즐기면서 살 거야"라는 염승욱을 향해 "고작 이 정도 가지고 만족하는 거야? 겨우 푼돈이나 만지자고 그 귀신을 만든 줄 알아"라고 코웃음을 쳤다. 형벌을 대수롭지 않게 여귀며 악귀와 손을 잡았다.


악귀는 그 대가로 남편에 이어 아들 염재우(이재원 분)에게 달라붙었다. 장자승계다. 악귀는 부를 축적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정적들을 숱하게 제거해 줬다. 대가의 결말은 참혹했다. 염승옥이, 염재우가 이젠 충분하다고 가족을 지키겠다며 악귀와의 결별을 선언하자 악귀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염승옥과 염재우의 정도를 막아선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과응보다.


악귀와 손을 잡은 나병희도 악행을 이어갔다. 남편과 자식을 악귀에게 바친 나병희는 비밀을 알아챈 손자 염해상(오정세 분)의 친구 우진을 제 손으로 죽였다. 장자승계 원칙도 깨졌다. 과거 염해상의 모친은 어떻게든 악귀가 자식을 지배하는 걸 막아내려 안간힘을 쓰다 죽음을 맞았다. 또 다른 주인공이자 악귀를 막으려다 1년 전에 죽은 전 민속학자 구강모(진선규 분)의 딸 구산영(김태리 분)이 악귀와 악연을 맺는 계기다.


<악귀>는 자식들의 이야기다. 자본가의 정도와 탐욕을, 악귀의 연쇄살인을 막아내고 끊어내려 동분서주하는 2세대, 3세대의 활약상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환생·회귀 판타지를 빌려왔고, 더 나아가 <악귀>는 호러 장르와 귀신 이야기의 외피를 가져왔다. 그래서 훨씬 직접적으로 자본가의 탐욕과 나병희의 존재 자체를 괴기스럽고 혐오스럽게 그리는 쪽도, 적극적으로 제거하려는 쪽도 <악귀>다.


김은희 작가의 과감함

   

▲ SBS 드라마 <악귀> 스틸 이미지 ⓒ SBS


귀신을 보는 염해상은 악귀 때문에 죽은 어머니의 비밀을 캐다 할머니 나병희를 비롯한 집안의 거대한 탐욕과 마주하게 된다. 구산영은 반대의 경우다. 5살 이후 얼굴 한 번 못 본 아버지의 부음 이후 악귀가 씐다. 이후 악귀와 연관된 과거가 보이고, 정신을 잃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죽어나가며, 제 안의 욕망과 정의 사이에서 번민하게 되는 복합적인 존재다. <악귀>는 대를 이어 이 자본가의 정도와 악귀와의 악연으로 얽힌 자식들의 귀신 막는 살풀이다.


과거나 현실과의 알레고리를 즐기는 김은희 작가답게 자본주의나 그에 대한 탐욕으로 결부된 귀신들이나 피해자들을 상정한 것도 흥미롭다. 자살귀들에 씐 피해자들은 불법 대출에 시달리던 청춘들이다. 구산영의 동창은 남의 것을 탐해도 탐해도 부족한 아귀에 시달린다. 시골 마을에 찾아온 객귀마저 어릴 적 돈 벌러 도시로 떠났다가 십수 년을 집에 돌아오지 못했던 딸이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악귀의 연원은 어떤가. 여자 아이 이목단은 자본가의 탐욕을 위한 제물이었다. 무속의 힘을 빌린 나병희와 염승옥이 주범이었고, 이들 자본가들이 나눠 준 콩고물을 집어삼킨 마을 주민 전체가 공범들이었다. 김은희 작가는 1958년도 벌어진 유사한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다. 언제나 그렇듯이, 귀신보다 사람이, 사람의 탐욕이 현실에선 더 무서운 법이다.

 

악귀는, 귀신들은 그렇게 인간의 가장 약한 고리를 숙주 삼아 인간을 공격하게 사회에 균열을 낸다. 공포 장르물의 귀신이나 유령, 괴물이 사회나 구조에 희생된 자들이거나 권력과는 거리가 먼 타자들로 상정됐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저 멀리 <전설의 고향> 속 가부장제에 희생된 며느리가, 조선시대 <장화홍련전> 속 장화와 홍련이 그러했듯이.

   

▲ SBS 드라마 <악귀> 스틸 이미지 ⓒ SBS


다소 유연한 공포물이면서 악귀의 연원을 쫓는 수사물의 형식을 띤다. 민속학에 대한 묘사는 다소 헐겁고, 악귀의 존재를 끝끝내 감추기 위해 흩뿌린 잦은 회상 장면은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개별 사건의 해결 과정과 이목단 사건 해결이란 전체 구조의 유기성도 감탄할 수준은 아니다. 공포물이라기엔 충격을 주는 장면도, 10화에서 정점을 찍은 김태리의 귀신 씐 연기의 횟수도 전체적으로 빈도가 현저히 낮다.


그런 약점에도 김은희 작가가 제시한 꽤나 방대한 단서들을 따라잡는 재미는 상당하다. 귀신들이 등장하는 장면의 흡인력도 상당하다. 일종의 떡밥인 악귀의 정체가 가련한 피해자인 이목단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반전이 필수인 장르물의 관습이어도 상관없다. 아마도 물도 마시지 못하고 며칠은 굶다 죽어나간 또 다른 비아동 여성 피해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악귀>는 악의 발원을 아동 살해까지 자행한 자본가의 탐욕과 동일시했다. 이 직설적이고 과감한 설정을 밀어붙인 것만으로 여타 호러 드라마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악귀>가 친절하고 집요하게 자막까지 매번 삽입하며 1958년, 1979년이라는 현대사와의 접점을 강조하는 이유일 터다. 그렇게 김은희 작가는 대한민국의 '천민자본주의'가, <재벌집 막내아들>로 말하자면 재벌가의 탐욕스런 정도가 태동하고 발전해 온 그 과거가 지금 여기의 피해자들을 양산한 주범이라고 경고하는 중이다. 공포물이란 장르의 외피를 빌려서 말이다. 이제 김은희 작가가 결말을 어떻게 내는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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