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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Jul 26. 2023

유족들이 기자들에게 묻다, '인간이길 포기했나'

'누가 죄인인가'... 끊이지 않는 왜곡 보도 논란


▲  서울 S초등학교 A교사의 사촌 B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 블로그 갈무리


"당신을 고소하겠습니다. 모든 법적 처벌을 받게 하겠습니다. 선처하지 않겠습니다(...). 똑바로 대답해주세요. 누가 죄인입니까?"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서울 S초등학교 A교사의 사촌 B씨가 강경한 톤으로 기자에게 물었다. 25일 <누가 죄인인가?>란 본인 블로그 글을 통해서였다. 지난 24일 유족들은 A씨의 일기장 내용 중 일부를 공개했다. A교사의 유족이 법적 조치를 예고한 기자는 지난 20일 <서초구 초등교사 일기장 내용 입수...2월에도 극단 선택 시도 정황> 기사를 단독 보도한 <뉴데일리 경제> 기자였다.

<뉴데일리 경제>는 해당 기사에서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교사 A씨가 지난 2월에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정황이 드러났다"며 "업무 스트레스와 연인 관계 등으로 우울증을 앓아 왔고 병원 치료까지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A교사가 사망한지 이틀 밖에 되지 않은 A교사의 사망소식은 19일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뉴데일리 경제>는 "20일 본보가 입수한 A씨의 일기장 내용에는 A씨가 평소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남자친구와의 관계 등으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A씨는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일기장에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듯한 글을 수차례 적었고 지인들에게도 지난 6월 초 남자친구와 결별한 이후 심리적 고통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덧붙였다.


▲  20일 보도된 <서초구 초등교사 일기장 내용 입수... 2월에도 극단 선택 시도 정황> 기사 ⓒ 뉴데일리 갈무리 


<뉴데일리 경제>는 해당 보도를 통해 A교사의 사생활과 병원기록 등을 무차별적으로 공개했고, A교사의 사망 원인을 사적 관계와 개인적인 일로 추측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일기장 입수 경위나 유족의 동의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일부 언론도 해당 <뉴데일리 경제> 기사를 받아썼다. 이후 해당 기사 속 일기장 내용의 진위나 보도 경위를 따지는 비난 여론이 적지 않게 일었다.


기사가 보도된 20일 오후, 교사노조연맹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 A교사의 외삼촌이 유족 대표로 참석했다. 그는 "흔히 말하는 학부모의 갑질이 됐든 악성 민원이 됐든,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됐든 그것이 이번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본다"며 "우려스러운 것은 개인적인 일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적인 공간인 학교에서 이뤄진 것인데 다른 문제로 치부하면 학교 현장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뉴데일리 경제> 해당 기사가 한국기자협회 등이 마련한 "자살보도 윤리강령’이나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속 자살보도 시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삼지 말거나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기준을 위배했다는 비판이 나올 만 했다.


이처럼 안타까운 죽음을 둘라싸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진상을 왜곡한 또 다른 보도가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지난 5월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본부 3지대장이었던 고 양회동씨 "분신 방조'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 기사였다. 최근 해당 보도와 관련된 새로운 정황이 확인됐다. 유족이 법적 조치를 예고한 <뉴데일리 경제>와 달리 <조선일보>는 유족의 고소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유족들 분노케한 <뉴데일리>, <조선일보> 기사



▲  조선일보가 16일 오전 10시 54분에 발행한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해당 기사에 대해 같은날 밤 성명을 내고 "고의적으로 사건을 왜곡해 여론을 선동하기 위한 악의적 보도행태"라고 비판했다.  ⓒ 포털뉴스갈무리

 

"당시 상황을 본 다수의 목격자에 따르면, A씨는 양씨의 분신 준비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단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고, 어떠한 제지의 몸짓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극단 선택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다가갔을 때 오히려 자극해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을 A씨가 우려했을 가능성은 있다."

 
지난 5월 16일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란 자극적인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다. 당시 <조선일보>는 같은 달 1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건설노조 탄압 중단’을 주장하며 분신한 양씨 사망과 관련해 "자기 몸에 시너를 뿌리는 양씨의 약 2m 앞에서, 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부지부장이자 양씨의 상급자인 A씨가 가만히 선채로 양씨를 지켜봤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른바 "분신 방조'의혹 보도였다.
 
건설노조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건설노조는 성명을 내고 "조선일보가 인간이길 포기했다"며 "조선일보가 사건을 조작하고 악의적 보도로 유가족과 목격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건설노조는 "최대한의 법적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해당 기사에서 의혹을 제기한 주요 근거는 양씨의 분신 과정이 담긴 강릉지원 민원실의 CCTV 영상이었다. <조선일보>는 영상 캡처 분과 초 단위로 분석하며 분신 목격자가 분신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제기 했다. 그런 가운데 CCTV 영상의 출처가 논란이 됐다.
 
<조선일보>가 밝힌 영상 출처는 "독자제공’이었다. 법원이 민감한 정보가 담긴 영상을 <조선일보>에 단독으로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 속 영상 출처 표기를 "독자제공’으로 고수 중이다. 이와 관련, 유족과 건설노조는 지난 5월 22일 해당 기사를 작성한 최훈민 조선일보 기자와 최재혁 편집국 사회부장, 이를 소셜미디어에 인용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 6명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유족과 건설노조는 강릉지원 민원실 CCTV 영상에 대해 증거보존을 신청을 했다. 이어 원본 영상을 확보했고, 지난 6월 20일 법무법인을 통해 <조선일보> 기사의 근거가 된 영상 원본이 강릉지원 민원실 영상임을 명확히 하고자 디지털과학수사연수고에 감정분석을 의뢰했다. 결과적으로 <조선일보>가 법원 영상을 제공받은 것이 유력해졌다.
 
지난 24일 건설노조는 성명을 내고 "기사의 바탕이 된 자료가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민원실 CCTV 녹화영상임이 확인됐다"며 "지난 7월 18일 동일 자료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기사 사진은 원본인 감정동영상에서 캡처한 이미지에 인물 구분 표시, 모자이크 효과, 부분적인 색감 변경 등을 적용시킨 것으로 판단된다"며 감정서 내용을 공개했다.
 

"결과적으로 조선일보 측은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의 CCTV를 "누군가’에게 전달받은 것이 확실해졌다. 해당 CCTV 자료는 당시 양회동 열사와 관련된 수사자료로 수사기관 내부의 비밀이며 당사자의 동의 없이 공개돼서는 안 되는 자료임에도 누군가가 조선일보에 자료를 제공한 "공무상비밀누설’이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된다."

 

건설노조가 공개한 CCTV 감정 결과 @건설노조

극에 달한 비윤리성


영원한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노동시민사회장이 21일 엄수됐다.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행진으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노제를 거행한 뒤 세종대로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오후 4시경 양회동 열사는 가족과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 노동과 세계 송승현 기자


 A교사의 유족인 B씨는 블로그 글에서 <뉴데일리 경제> 기자에게 또 이렇게 물었다.


첫 번째, 일기장 내용은 어떻게 확보하신 겁니까? 누가 준 겁니까?
두 번째, 어떻게 당신이 일기장 이외에 의료기록도 알고 있는 겁니까?
세 번째, 왜 극히 일부 내용만을 이야기하여 일기장 내용 전체를 호도하십니까?
네 번째, 왜 팩트 체크를 안 하시고 기사를 내보내십니까?
다섯 번째, 정신의학과를 가서 상담 받으면 죄인입니까?
마지막 여섯 번째, 왜 당신은 유가족의 동의를 받지 않고 사실 확인이 안 된 내용을 기사화 한 겁니까?

 
A교사의 유족은 이처럼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요목조목 항목별로 <뉴데일리 경제>  기사 내용에 반박하며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뉴데일리 경제>와 해당 기자는 이러한 유족의 의문에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러한 왜곡된 취재와 보도 내용에 대한 A교사 유족의 의문은 <조선일보>의 "분신 방조'의혹 기사에 적용해도 그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뉴데일리 경제>는 사망한 교사 A씨의 일기장 입수 경위를 밝히지 않았고,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자극적인 보도로 유족 측의 분노를 샀다. <조선일보>는 춘천지법 민원실이 제공하지 않았으면 확보하기 어려운 CCTV 영상을 "독자제공’으로 둔갑시켰다. 노동자의 분신 사건을 "분신 방조'의혹 프레임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임용 2년 차 젊은 여성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선정적인 클릭 장사의 소재로 활용한다. 건설노동자의 분신마저 정파적으로 이용코자 법원을 독자로 둔갑시키며 출처의 왜곡마저 서슴지 않는다. 2023년 현재 한국 언론의 "비윤리’성을 상징하는 두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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