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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태의 시네마틱 Aug 23. 2023

한국영화 위기 다룬 KBS, 관람료 인상에 집중했다면

"한국영화가 지금 전 세계인에게 이렇게 사랑받고 모두의 관심 한복판에 있다는 걸 정말 절감할 수 있었어요. 불과 1년 전에 정말 한국영화 위상이 정점에 다다랐다고 느낄 정도로. 한국영화계의 일원으로서 너무나 큰 자긍심을 느낀 그런 때였는데 불과 1년이 지나서 지금 모두가 한국영화의 위기를 말하고 있거든요."


KBS <시사기획 창>과 인터뷰한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의 소회다. <다음, 소희>는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부문 폐막적으로 선정됐다.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되며 호평을 받았다. 이어 지난 2월 8일 극장에서 정식 개봉했다. 500여개 스크린 수를 확보했다. 개봉 첫 주 일일 최고 관객은 1만1천 명 수준. 그 다음 주 스크린 수가 1/3 수준으로 급감했다.


2017년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건'을 소재로 한 <다음, 소희>는 관객들과 대다수 언론의 호평을 받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자발적 대관 등 관객들의 상영 후원이 이어졌지만 흥행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다음, 소희>의 누적 관객 수는 11만6천 명. 영화의 제작비는 순제작비 10억,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손익 분기점은 30만 명이었다.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는 일이 현저하게 어려워졌다는 생각이 들고요. 영화를 보신 분들이 또 소개를 해주시고 하면서 2~3주차에 관객이 영화를 보러 더 많이 오셨어요. 근데 상영관은 늘지 않더라고요. 좌석 점유율이 오르고 심지어 1위를 찍고 해도 상영관이 늘지 않았습니다." (정주리 감독)


<시사기획 창>이 위기의 한국영화를 진단했다. 지난 22일 '당신은 영화를 보나요?'편을 통해서였다. <다음, 소희>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스크린 독과점' 현상은 심화 편중될 것이다. 한국영화를 살려야 한다는 명목하에 이제는 누구도 대기업 배급사와 멀티플렉스 극장이 결탁한 수직 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을 비판하거나 제동을 걸 시도조차 못하는 상황이 됐다.


KBS도 이를 지적하긴 했다. <범죄도시3> 같은 영화가 전체 좌석의 80%를 차지하는 현 상황 말이다. 그럼에도 위기를 맞은 영화계의 산적한 현안들을 두루 언급한 <시사기획 창>은 그러면서 여러 자료들을 제시한 것과 달리 진짜 문제를 파헤치기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훑는 데 그친 인상이 역력했다. 먼저 티켓값 인상 문제를 보자.


<다음, 소희>의 예견된 부진, 그리고 관람료 인상

   

▲ KBS <시사기획 창> 관련 이미지. ⓒ KBS


"팬데믹을 거치면서 100편 이상의 영화가 개봉시기를 놓쳤습니다. 이 많은 영화에 제작비로 투여된 예산이 5천억 원이 넘습니다. 그 큰 금액이 회수되지 않으니까 신작 제작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현재 30억 원 이상 되는 대중영화가 8편 정도밖에 제작이 안 되고 있습니다."


박기용 영화진흥위원장의 우려다. 일각에선 한국 상업영화 재고 물량을 예산으로 따지면 1조원 가량 될 것이란 분석마저 나왔다. 실제 그랬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영화 제작사 대표나 투자배급사 팀장 모두 상반기 투자배급이 결정된 상업영화가 10편 미만이라 우려를 표했다. 한국영화 모태펀드 규모마저 현저히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반 투자 또한 영화보다 OTT 드라마로 몰리는 형국이다.


멀티플렉스 3사가 관람료를 마지막 3차로 인상한 것이 지난해 여름이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매출 하락을 관람료 인상분으로 만회하겠다는 생존 전략이었다. 이게 관객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관람료가 비싸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거리 조사를 실시한 <시사기획 창>의 물음에 응답한 관객들이 밝힌 정적 관람료는 1만원 전후였다.


이런 관객들의 인식은 물론 영화계 일각에서도 티켓 값 인하를 통해 관객들을 먼저 극장으로 다시 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022년 18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영진위 설문조사에서도 60% 이상이 1만원 미만을 적정 영화 관람료라 답했다.


당기 실적을 근거로 관람료 인상이란 섣부른 고육지책을 써버린 멀티플렉스들이 일반 관객들의 발걸음을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전국 극장의 95%를 차지하는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상황은 <다음, 소희>와 같은 영화들이 주로 상영되는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이나 일반 극장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 비멀티플렉스 극장들의 관람료는 여전히 1만원 수준을 유지 중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위기에 대한 상이한 인식


   

▲ KBS <시사기획 창> 관련 이미지. ⓒ KBS


여기에 <시사기획 창>은 아이맥스 전용관을 비롯해 특수관 등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멀티플렉스 3사의 극장 환경 개선 노력들을 곁들였다. 그에 앞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 중인 미국 극장 수익을 소개하며 볼거리 위주의 블록버스터 영화들로 극장 관람 문화가 변화될 것이란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의 전망을 전제했다. CJ의 7천 억 유상증자 발표 등 대기업 3사의 위기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런 돌출적인 인터뷰를 소개했다.


"심야시간대 상영 편들이 다 매진됐다는 부분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거든요.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3> 같은 경우에도 심야 시간에는 딱 3번만 전석 매진됐는데 그보다 훨씬 관객 수가 적은 영화가, 그것도 다큐멘터리 영화가 무려 199회가 전석 매진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의 말이다. 제작진이 주어를 빠뜨렸지만, 김 의원이 설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대가 조국>이 분명해 보인다. 올해 들어 현실화된 경찰의 영화계 대상 수사(관련 기사: "좌파딱지 붙일 것"... 경찰의 '관객 수 조작' 수사, 도 넘었다)를 거론하며 '화불단행'('화, 즉 어려움이나 불행은는 혼자 오지 않는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는 고사를 썼다.


두루뭉술한 편집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이 제기한 혐의가 적절하다는 것인지, 이 또한 수사를 받고 있는 멀티플렉스와 배급사 관계자 60여 명이 영화계 위기를 자처한 한 축이라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여기에 김승수 의원의 멘트를 삽입하면서 영화계의 관행과도 같은 마케팅 전략의 일환들이 "이해하기 힘든" 범법으로 규정됐다. 제작진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영화계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어 버린 OTT 시대의 현황도 주요하게 다뤘다. 넷플릭스 초창기 유행했던 '넷플릭스 당하다'(Netflixed)란 신조어를 소개하며 넷플릭스 전성기의 명암도 소개했는데,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이라 할 수 있었다.


<오징어 게임>의 추가 수익 배분이나 미국작가조합의 파업 등 암을 언급하기에 앞서 이미 국내 OTT 사용자들이 드러내고 있는 일종의 피로감이나 OTT 시장 성장의 한계점 등을 지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터다. 또 OTT를 다루면서 유튜브로 대표되는 숏폼 문화의 대두와 극장의 위기가 갖는 상관성을 간과한 것도 의아한 대목이었다.


영화에서 OTT 드라마로 옮겨가고 있는 영화 유튜버들이 가져가는 수익은 누구의 것인가. 일부 OTT나 영화사들에서 지불하는 마케팅 비용 외에 과거 영화들을 편집한 영상으로 수익을 올리는 유튜버들의 저작권 침해는 어떻게 볼 것인가. 무엇보다 영상문화라는 측면에서 그러한 숏 폼 영상에 길들여지고 있는 미래 관객들이 받는 영향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무수한 질문이 이어지는 이슈를 KBS는 단순히 300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영화 유튜버를 소개하는 데 그쳤다.


의아한 의도, 시청자들의 문제 의식 


"저희가 제작 자본의 위기를 하나의 보릿고개라고 판단하면 이제는 소비자들의 행돈 패턴이 바뀌고 소비 습관이 바뀌고 콘텐츠 유통의 변화가 왔죠. 이것은 역병이죠. 2개가 동시에 온 겁니다." (앤솔로지스튜디오 최재원 대표)


영화계의 인식이 이 정도다. 하지만 그 영화계의 위기를 정면으로 다룬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이 그런 위기를 제대로 인식했는지 의문이다. <시사기획 창>은 후반부 사라져가는 단관극장 중 하나인 광주극장을,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취재했다. 그에 앞서 2000년대 이후 천만 관객이 양산됐던 그때 그 시절을 비추기도 했다.


반면 이러한 영화계의 위기에도 손을 놓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대책은 세재 혜택 등을 소개하는 데 그쳤고, 또 다른 디테일한 위기의 국면들도 깊게 다루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일반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기획이었다면 '한국영화는 향후에도 폐업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기획이었다.


방송 후 유튜브에 공개된 해당 영상에 달린 댓글의 팔 할은 극장의 관람료 인상을 질타하는 목소리였다. 시청자들 의견만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KBS 역시 시청자들의 주된 관심사인 관람료 인상을 둘러싼 문제점들만 파고 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시청자들의 문제의식이 훨씬 더 높고 현실적이었다는 얘기다. 일단 극장의 위기와 한국영화의 위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문제인지를 명확히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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