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손석희의 질문들> 출연한 최민식, 배우로서의 해법 제시
"1만 5000원이 맞나요? 요즘 (극장에) 가본 적이 없어서... (티켓값이) 비싸긴 하네요. 둘이 가면 3만 원이니까요."
최근 극장에 잘 가지 않는 관객 중 한 명이 자신이라며 손석희가 말했다. 그의 말에 객석에 앉은 여성 관객들이 공감을 표시했다. 마주 앉은 최민식이 "팝콘, 커피(를 먹고)에 (관람이) 끝나고 맥주라도 한잔하면 굉장히 부담되는 가격은 맞아요"라고 토로하자 손석희가 "그럴 바에, 스트리밍되는 OTT를 보면 되지"라고 맞장구쳤다.
이 대화는 현재 극장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 17일 방영된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배우 최민식이 토로한 극장 티켓값과 관련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손석희도, 일반 관객도 수긍한 '비싼' 티켓값을 언급한 최민식의 진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애초 손석희가 그에게 던진 질문은 객석의 '영화 산업이 죽어가는 가운데 OTT 등 새로운 플랫폼 변화에 따른 배우의 생각'이었다. 데뷔 35년 차 배우의 원인 분석은 이랬다.
"(새로운 플랫폼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세상을 탓해봤자 어떻게 하겠어요.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그리고 쇼츠처럼 짧은, 아주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콘텐츠에 (관객들이) 중독돼 가는 건 분명한 거 같아요.
근데, 지금 극장 값도 많이 올랐잖아요. 좀 내리세요(웃음).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갑자기 확 올리면 나라도 안 가요. 1만 5000원이죠, 지금? 스트리밍 서비스로 앉아서 여러 편 보지 발품 팔아서(극장에 안 가죠)… 여자 친구하고 데이트하면 10만 원 훌쩍 넘잖아요. 이런 현실적인 부분이 있다고 우리(영화인들)끼리도 얘기해요. 사실 이 (극장업계) 사람들도 코로나 때 죽다 살아난 사람들이거든요. 심정적으로 이해는 돼요."
최민식의 원론, 손석희의 공감
프로그램 방영 후 해당 발언이 화제가 됐다. 언론들은 "최민식, 극장 티켓값 좀 내리세요"등의 발언을 보도했다. 그런데 사실 최민식이 힘줘 강조한 대목은 따로 있다. '죽어가는 극장'을 살릴 영화인으로서, 배우로서의 해법이다.
"관객분을 어떻게 극장으로 끌고 들어올 것이냐. 참 어려운 일이죠. 근데 제 생각에는 콘텐츠의 문제예요. 만드는 사람들이 잘 만들어야 합니다. 관객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기획하자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자. 그게 <파묘>예요.
<파묘> 대본을 받고, 연출부와 연기자가 다 모여서 이 드라마에 대해서 의견을 얘기할 때 '이거 된다', '이거 천만 각이다' 이런 사람 한 명도 없었어요. '이런 걸 관객들이 좋아할 거야'라고 확신해서 잘 되는 거 별로 못 봤습니다. 창작하는 사람들이 나는 이런 이야기, 이런 소재, 이런 주제를 가지고 (관객) 여러분들과 대화하고 싶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시스템의 개선이나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먼저 만드는 사람들이 내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민식은 "아무리 어려워도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고, 그러려면 작가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해요, 만드는 사람들의 작가정신이요"라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힘들 때일수록 어렵지만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 그렇게 역경을 뚫고 한 걸음 나아가는 일이 그게 예술의 길이고, 한국영화가 걸어왔던 길이며, 지금도 수많은 독립영화인이 걷는 길이다.
죽어가는 영화 산업
하지만 여기서 논의를 끝낼 수는 없다. 사실 야외 콘서트, 공연 등 다른 문화업계의 매출 등은 코로나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극장은 좀 사정이 다르다. 최근 제11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에서 만난 중견 독립영화인은 현재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장편 다큐 감독으로 데뷔한 이 영화인은 "비싼 티켓값이 원인의 전부가 아니다"라며 "한국 극장들도 팬데믹 기간 할리우드처럼 극장 문을 닫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종합해 정리하면 이렇다. 팬데믹 기간, OTT 플랫폼이 빠르게 정착하고 확산됐다. 유튜브 몰아보기나 쇼츠 영상 조회수는 늘어난다. 야외활동 등과 관련한 문화 분야의 회복세는 영화에 비해 빨랐다. 그 사이 영화 티켓 값은 인상됐다. OTT, 유튜브 등 선택지가 많은 관객들은 영화를 더 까다롭게 고르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극장까지 문을 닫았던 국가와 달리 우리는 티켓값을 인상하며 극장 문을 열었지만, 결국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수가 급격히 줄었다. 결국 코로나 시기에 배급사들은 질 좋은 영화,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공개하기 꺼려했다. 올해 들어서야 <파묘>와 <범죄도시4>란 두 천만 영화의 흥행을 바탕으로 조금씩 매출액을 회복하고 있다.
위의 독립영화인은 일정 기간이라도 극장 문을 닫았다면, 극장이란 공동체성을 지향하는 극장 문화 자체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로나가 종료된 이후 영화 관람에 목마름을 느끼던 관객들이 다시 극장을 찾았을 수도 있다는 가정이다. 물론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한 영화인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든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 시기가 올지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충분히 경청할 만한 이야기였다.
영화계-극장계의 공통해법이 필요
"최소 기준으로 스크린 상한제를 정하고 이를 준수하는 극장에게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등 영화의 다양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
지난 7월 16일 열린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대안 마련 토론회'에서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사가 한 말이다. 최근 스크린 독과점을 막고 다양한 영화들이 극장에 선보일 수 있게 하는 스크린 상한제 법제화를 두고 극장업계와 영화계가 이견을 보이고 있다. 토론회에서도 배 이사가 스크린 상한제를 언급하자 극장업계는 난색을 보였다. "극장의 스크린 쏠림현상은 관객의 선택권을 반영한 것"이라며 스크린 상한제 법제화를 반대한 것이다.
사실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한 문제는 팬데믹 이전에 마무리 지었어야 할 문제다. 지난 2019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영비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좌초됐다. 해당 개정안은 "6편 이상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할 수 있는 복합 상영관에서 동일한 영화를 주 영화 관람 시간대(오후 1~11시)에 상영하는 총 영화 횟수의 100분의 50을 초과해 상영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물론 스크린 상한제가 유일무이한 해법이 아닐 수도 있다. 과거 영화계와 국회에서 논의된 예술영화 쿼터제 등 법제화가 다양성 보장 및 독립예술영화 살리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스크린 독과점을 비롯해 영화산업과 관련한 토론회가 여러 차례 열렸다. 최근 출범한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에는 국내 18개 영화 단체가 참여했다. 상당수의 단체가 힘을 모은 셈인데, 이들은 무너진 영화 생태계 복원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지금은 스크린 상한제 법제화든 객단가 정상화든, 삭감된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사업 복원이든 다양하고 활발한 주장과 토론이 필요한 때다. 미래 관객들이 극장을 찾지 않는다면 영화 생태계의 미래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화 상태라는 국내 OTT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나온 최민식의 말, 그리고 이와 관련한 여러 논의가 반가운 건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