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슈 Aug 02. 2020

스무살에 한달동안 벌 돈을 하루만에 번 비결, 첫번째.


나는 스무살 때 캐리커쳐를 시작했다. 키즈 카페에서 시급으로 알바비를 받아가며 캐리커쳐를 그려준 적도 있었고, 모 행사장에서 캐리커쳐를 해서 7:3의 비율로 벌어도 봤다 (내가 3이었다). 그리고 이 구조가 나한테 불합리한 구조라고 생각이 들 때쯤, 홍대로 나갔다.



주말에만 홍대 놀이터에서 열리는 홍대 프리마켓이라는 곳이 있단다. 사람도 꽤 많이 오는 모양이었다. 열심히 찾아보니 작가 등록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간이 테이블과 간이 의자, 그리고 그림도구를 가지고 무작정 프리마켓으로 향했다.




프리마켓 초창기 사진을 못 찾아서 그 후의 사진을 찾아왔다.


그 때 홍대 프리마켓에는 캐리커쳐 존이 따로 있었다. 캐리커쳐 작가만 열댓명이 쭈루룩 앉아, 자기 테이블을 펼치고 그 위에 그림을 전시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그림 스타일의 작가 앞에 앉아서 그림을 받아가는 형식이었다.


나는 그 많은 캐리커쳐 작가들 중에서도 손님이 꽤 많은 축에 속했다. 남들이 하루종일 10-15명 그릴 때 나는 30여명을 그렸으니, 매출 차이도 두어배가 났다. 피크타임인 3-4시쯤에는 사람들이 1시간씩 줄서서 기다려서 내 그림을 받아가기도 했다. 그 때는 내가 왜 그렇게 잘 됐는지 몰랐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잘 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첫 프리마켓, 내가 준비한 캐리커쳐는 위와 같았다. 나무판 캐리커쳐, 1인 6,000원. 처음으로 현장에서 내 그림에 대한 가치를 매겨 돈을 받고 팔아본 날이었다. 여태 시급, 혹은 1/N로 나눠서 돈을 받았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격에 대한 제한이 없으니, 내 마음대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는데 그게 참 어려웠다. 내 그림은 얼마에 팔아야 할까. 이 돈을 받고 팔아도 되는 걸까. (나중엔 이게 싼 값이라는 걸 알고 가격을 더 올렸다.)


그 때 당시 풀컬러로 채워주는 캐리커쳐가 1인 만원 정도 할 때였다. 다른 작가들도 보통 그 정도의 가격을 받고 그림을 그려줬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갑자기 6천원이라니, 당연히 끌릴 수 밖에 없는 가격이지 않는가. 게다가 종이도 아니고 나무판에 그려준단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제격이다. 심지어 예쁘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안 살 이유를 찾기 더 힘들었다. 나의 첫 프리마켓은 대박을 쳤다. 미술학원 알바를 할 때의 월급을 그 날 하루만에 벌었다. 내 힘으로, 내 그림을 팔아 번 돈은 값졌다.


그 날 이후로 프리마켓에 꾸준히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받아보고 기뻐하는 표정이 좋았다. 꼭 홍대가 아니더라도, 몇 년 동안 여기저기 프리마켓이란 프리마켓은 정말 열심히 다녀본 것 같다.






스무살의 나는 말솜씨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심지어 낯가림이 심하기까지 했다. 초특급 A형인 나에겐,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호객행위를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내가 테이블에 어떻게 디스플레이를 해놓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알았다.


이를테면 이런 거였다. "예쁘게 그려드립니다" 보다는, "미화전문 캐리커쳐" 라는 문구가 더 효과적이었다. 당연히 예쁘게 그려주지만,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할까, 말까를 망설이면서 하는 말을 들었다.


"나 예전에 놀이공원에서 캐리커쳐를 받은 적이 있는데, 너무 못생기게 그려줬어."

"난 광대가 콤플렉스인데 광대를 강조해서 그려준 거 있지. 짜증났어;"



그 때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깨달았다.

아, 사람들은 '못생겨지게 그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구나.


사람들에게 캐리커쳐란 '못생기게 희화화해서 그린 그림' 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사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다. 사전에 '캐리커쳐' 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사물ㆍ사건ㆍ사람 등의 특징을 잡아 희극적으로 풍자한 글이나 그림 또는 그런 표현' 이렇게 뜬다. 맞다. 실제로 캐리커쳐를 가르쳐주는 곳을 가면 개성있는 특정 부위들을 강조해서 그릴 수 있도록 가르치기도 한다.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밋밋한 얼굴을 강조해서, 아, 그 사람이구나 싶게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려짐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또 다른 것이다. 사진 한 장조차도 예쁘게 나오고 싶어하는 게 사람 심리인데, 기껏 기분 좋은 날 특별한 추억을 쌓고 싶어서 돈 내고 캐리커쳐를 받았는데 못생기게 나오면, 나라도 속상할 것 같은 거다. 캐리커쳐를 하며 나만의 철학이 생겼다.



"단점은 가리고, 장점은 강조해서 예쁘게 그리자."



그리고 그걸 내 디스플레이에도 녹여냈다. "미화전문 캐리커쳐" 라는 문구를 썼더니, 사람들이 반응했다.


"미화전문이래 ㅋㅋㅋㅋ" 하면서 웃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진짜 이쁘게 그려주나?" 하며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B급 감성 느낌으로 "졸라 예쁘게 그려드립니다" 라고도 써봤다. (실제로 난 졸라 예쁘게 그릴 자신이 있었다)


"졸라 예쁘게 그려준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ㅋ 진짜? 그려볼까?"



그 때마다 나는 크게 외쳤다.


"진짜 예쁘게 그려드립니다! 미화전문 캐리커쳐! 닮았는데 예쁘다?! 포토샵 해드려요 ^^!"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객의 두려움을 알아챘고, 그 두려움을 안심시킬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았던 것이다. 안심을 시키니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 예쁘게 그려지면, 다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림을 가져갔다. 사람 한명쯤 내 테이블 앞에 앉아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경을 했고, 그러다가 줄이 생겨서 꾸준히 그리기도 했다.


때때로 손님이 없는 날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날도 있었다. 주변 캐리커쳐 작가들을 보면 그냥 쉬고 있는 게 전부였다. 나는 일이 없는 시간에도 다른 일을 만들어 했다. 디스플레이를 바꿔본다거나, 샘플을 바꿔본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하니까 반응이 없네? 그럼 저렇게 바꿔볼까. 디피를 바꾸다가도 사람이 없어 심심할 때는 샘플을 더 그렸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야 그림을 그리는 게 더 재밌었고, 예전에 그려둔 내 샘플 캐리커쳐가 맘에 안 드는 것도 한 몫 했다.





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심심해서 여는 캐리커쳐 이벤트! 댓글로 사진을 달면 맘에 드는 사진을 골라 그려드립니다."


댓글에 사진이 잔뜩 달렸다. 그 중에서 그리고 싶은 것들을 골라 그렸는데, 이 때도 나만의 비법이 있었다. 한가지 유형의 사람만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대 프리마켓을 다닐 때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을 그렸고, 20대 커플을 그렸다. 홍대에 20대 초반 학생들이 많이 보였고, 그 사람들은 내 그림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자기랑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이 샘플로 그려져있으면, 한번쯤 더 보지 않을까.


아,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 이유 없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오늘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림으로 남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 때, 같이 있는 사람이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예를 들자면 커플이 그랬다. 혼자 놀러왔을 땐 캐리커쳐를 구경만 하고 가지만, 커플은 추억 하나 쌓는다고 생각하고 캐리커쳐를 받아가곤 했다. 심지어 커플을 그릴 경우엔 2명이라, 가격도 2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플은 추억쌓기에 돈을 쓴다. 그걸 알고서부터는 2명이서 같이 그리면 1,000원을 할인해줬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은 타겟팅이었다. 내가 팔고자하는 제품에 관심있어하는 집단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사람들이 관심가질만한 것들을 내놓는 것.



오프라인 마켓은 사람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볼 수 있다. 지나가면서 예쁘다고 하는 사람도, 별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관객들의 반응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을 내가 노력함으로서 더 나아질 수 있는 거라면, 수정해야 한다.


이 때 몸으로 체득한 것들을 온라인 마켓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었다. 눈에 띄게 상품명이나 대표이미지를 바꾼다거나, 내 타깃층이 반응할만한 키워드를 찾는다거나, 상세 설명에 사람들의 두려움을 해소시킬만한 것들을 써둔다거나, 사람들의 후기에 맞춰 수정하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렇게 내 물건을 팔 준비가 되었다면, 홍보를 해야 했다.





* 2편에서 계속

* 2편은 내일 연재됩니다!



2020.08.02

매거진의 이전글 한달동안 매일 글을 써보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