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소비 사이의 아이러니.
아티스트로서 작업을 하는 것은 언제나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펀딩을 받던, 레지던시에 지원을 하던 작업이 있어야 그것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지원이 가능한데, 그 작업을 만들려면 돈과 시간과 정신력이 상당히 소모된다. 매년 꾸준히 뭔가 만들어 온 게 있어야 가능성도 더 높아지는데, 소득 없이 이걸 계속하기는 정말 너무 힘들다. 다행히 어떤 오픈 콜에서 선정이 되어 전시 기회를 얻는다 해도, 이 작업이 팔릴 것인가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아트 작업을 하게 되면, 들인 노력과 시간과 정성을 생각하면 가격대가 결과적으로는 꽤 높아지는데 이것을 살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갤러리에 소속된다고 해서 모든 게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보통 갤러리가 수익의 50%를 가져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격이 높게 책정이 되지 않으면 가져갈 수 있는 돈이 더 적어진다.
나 같은 경우는 아직까지 큰 작업물을 판매하지는 못했고, 책과 포스터 같은 20-50유로 사이의 작업물들 판매밖에 해보지 못했는데, 책도 내가 프린트하고 제본해서 만든 거고, 포스터도 실크스크린으로 혼자 제작한 거라 결과적으로 판매는 했지만 수입을 얻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책은 졸업 전시에서는 판매금을 모두 받았지만, 졸업 후에는 책방에 일일이 컨택해 관심이 있는 곳에 내가 택배비를 내고 그곳에 보내서 위탁 판매를 하게 되는데, 책방도 30-50% 정도 수수료를 때간다. 벨기에에 있던 책방이 30% 정도로 가장 적게 냈었던 것 같은데, 이 책방은 폐점(?) 하게 되면서 수입을 받지도 못했다. 암스테르담에 있던 책방은 수수로 50%였고... 내가 말한 판매가의 반절로 책을 팔아버려서,,,,, 돈을 받긴 했는데... 그야말로 제작비도 제대로 건지 지도 못했고.... 베를린에 있는 책방은 46%인지 55%였나 했는데... 알고 보니 여기는 돈 떼먹기로 유명한 책방이었다. 책은 다 팔았지만 돈은 받지 못하는 상황. 하... 인생... 이런 식으로 책을 위탁 판매하면 판매가 되었다고 책방에서 분기별로, 달별로 수익금을 정산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일일이 컨택 해서, 안녕? 책은 좀 팔렸니? 그렇다면 인보이스 보낼게 하고 일일이 잊지 않고 물어봐야 한다.
개인 출판이 아닌 출판사를 끼고 책 제작을 하면 더 편할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주변에서 듣기로는 본인이 제작비를 마련해야 하고, 제작이 완료되면 출판사로부터 책을 100-200권 정도 받는다고 들었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들은 일화는 이렇다.
하... 인생...
그렇다면 내가 사이드로 도전하는 일러스트 쪽은 또 어떨까?
여기도 만만치 않다. 나는 처음에 Giclee 프린트라고 하는 고급 프린트를 팔려고 해봤는데, 이 프린트하는 자체가 정말 비싸고, 단가가 비싸니 가격 책정도 높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또, 판매가 이뤄지면 배송을 보내야 할 테니 패키지 용품들도 사야 하는데, 비싸다... 정말 비싸다. 조금 더 싸게 사려면 대용량으로 사야 하는데, 대용량으로 사면 개당 가격은 낮아질 테지만 결과적으로 한 번에 나가는 돈은 또 많아진다.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이런 고급 프린트는 본인의 팔로워/팬이 확실히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있을 때가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비싼 교훈을 얻고 그럼 귀여운 엽서나 카드를 만드는 건 어떨까? 하고 보니 이거도 결과적으로는 팔로워나 팬층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 같다. 보통 인쇄소에서 프린트할 경우에도 장수를 많이 해야 가격이 싸지는데, 뭐가 얼마나 팔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50장 100장 프린트를 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나는 잉크젯 프린트기를 사서 집에서 프린트하기로 했는데, 프린터가 꽤 비쌌고, 종이 용지도 이것저것 사서 테스트하다 보니 이래저래 돈이 꽤 들었다. 그렇다고 이게 끝이 아니다. 엽서를 팔려면 우편봉투도 사야 하고, 그걸 감싸는 비닐 패키지도 사야 하고.. 결과적으로 이게 팔리냐? 안 팔리더이다. 엣시 같은 판매 플랫폼에서 검색으로 유입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아니더이다... 여기서 또 팔로워나 팬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면 일이 되지를 않는구나 하고 느꼈다.
엣시에서 팔아도 문제가 있다. 엣시는 수수료를 때가기 때문. 처음 여기서 팔려고 알아볼때는 뭐 2%, 3% 얼마나 되겠어~ 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니 가슴 아픈 출혈이었다. 개인 웹사이트를 해보는건 어떻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팔로워나 서포터가 없는 상황에서 그건 정말 무모한 일이고, 도메인이나 웹사이트 운영비도 싸지 않기 때문에 수입 없이 막 투자를 할 수 있지가 않다.
이것저것 보고 배운 건 많아서, 예쁘게 멋지게 뭔가를 만들고 싶은데, 그렇게 하려면 자꾸 사야 할 물건들은 많아지고, 그걸 사 놓고 보면 결국 쓸 일은 생기지가 않고. 처음엔 투자를 해야 작업물도 좋아지고, 그래야 사람들도 알아봐 주지 않겠어? 하고 이것저것 많이 샀는데 지금은 투자라는 명목으로 소비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암담해진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는 그만하고 싶은데, 내 독을 채우고 싶은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