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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TBBB Mar 13. 2024

나의 파트타임 잡이 풀타임이 될 때.

어라 이게 아닌데.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까? 물론 좋은 펀딩을 계속해서 받거나 내가 만든 아트를 판매한 수익으로 생활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이는 모든 아티스트가 소망하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 저 멀리 보이는 것 같은데 잡히질 않는다. 분명 누군가는 거기에 도달해 집도 짓고 행복하게 산다던데, 걸어도 걸어도 보이질 않는다.

그리하여 대부분은 파트타임 잡을 하며 생활비를 번다. 본인이 졸업한 학교에서 일을 하는 게 가장 베스트이지만(컨시어지나 교수님 어시스트, 학과 코디네이터, 워크샵 어시스턴트 등) 인맥이 있는 소수만 가질 수 있는 일이고, 다른 아티스트들의 보조, 촬영보조, 작업물 에디팅, 작업물 빌딩, 디자인 관련 업무 등의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 페이가 작거나, 고정적인 일이 아니며, 이 또한 인맥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다른 방법이 있기야 하지만 결국엔 꽤 많은 사람들이 Horeca라고 하는 쪽의 직업을 갖게 되는 것 같다. (Horeca는 Hotel/Restaurant/Café의 합성어이다.) 가장 쉽게 가질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고, 시간 조절도 꽤 용이하다는 게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이유인 것 같다. 나는 2016년 네덜란드에 온 이후 일을 거의 쉬지 않고 계속했는데, Non-EU 신분으로 처음 구할 수 있는 알바는 한식당, 아시안 식당이었다. 대부분의 업체에서 컨트랙트와 함께 합법적으로 누구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워크 퍼밋을 내줘야 하는데 대부분의 일반 Horeca 장소에서는 워크퍼밋을 주지 않고 고용할 수 있는 사람들(EU 출신)을 선호하기에 가능성이 꽤 낮았지만 신기하게도 아시안 레스토랑들은 워크퍼밋을 해결하고 아시안들을 고용한다. 그리하여 학교 다닐 때는 거의 레스토랑에서 일했었고, 졸업 후에는 남편 덕에 워크퍼밋 퍼밋 문제가 해결되면서 카페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프리랜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아, 아티스트 어시스턴트 일도 종종 하고, 영상 촬영, 영상 에디팅 등의 알바도 했었다.

직업 난이도는 레스토랑이 가장 높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하던 일이라 '파트타임잡'이 라는게 너무도 확실해서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적인 괴로움은 덜했던 것 같다. 졸업 후 풀타임 아티스트가 되고 카페 일을 할 때도, 첫 1,2 년은 괜찮았다. 영원히 계속할 일은 아니라고 언제나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펀딩이나 오픈 콜에서 큰 소득 없이, 3년 차가 되면서 많이 우울해졌던 것 같다. 지금은 일반 회사 내부에 위치한 카페에서 일하는 그런 바리스타 일을 하고 있는데, 가끔은 이렇게 멍청하고 영어도 유창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 회사에서 대단한 월급을 받고 일하는데 나는 여기서 뭘 하나 싶고,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 하나 서비스 직종에 일하면서 갖게 되는 'serving'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위치,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얻는 스트레스로 인해 일을 한 후에는 어떠한 창작 에너지도 짜 낼 수 없는 피로감, 파트타임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내가 생활하는 수익은 모두 이 직업에서 오게 되는 주객전도의 상황, 그로 인해 결국 내가 이 직업에 의지하는 바가 커지게 되는 현상, 나이는 점점 드는데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막막함.

언젠가 누군가가, 최소 5년은 버텨야 뭐가 보인다더라 하고 내게 말해줬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와, 5년을 어떻게 버텨 했는데 올해가 내게 벌써 4년 차이다. 누군가가 아티스트는 자신을 태우면서 작업을 하고, 스스로가 재가 되어도 그 재로 다시 불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라고 했던 글을 본 것 같다. 그리고 그걸 할 수 없다면 아티스트가 아닌 다른 직업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예전 같다면 넘치는 열정으로 까짓것 뭔가 이뤄 낼 수 있다면 나를 열 번 아니 백 번도 태울 수 있어라고 생각했겠지만, 몸에 불을 몇 번 지펴 보니...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렇게 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드는 것 같다. 또 그렇게 생각하니 역시 나는 범재구나 하는 현실적인 본인 평가와 함께 천재가 되고 싶었던 내가 불쌍하고, 슬퍼지고. 아 인생...

그래서 취직이 하고 싶은가보다. 나를 태우지 않아도, 적당히 해도 월급이라는 보상이 따르는 생활. 꾸준히 일만 하면 정년퇴직 후 연금이 보장되는 삶. 대단한 기대와 주목은 받지 못해도, 조금씩 천천히 올라가는 직급과 연봉, 그로 원하는 휴가와 인생을 계획할 수 있는 안정된 삶. 나는 노력을 조금 덜 하고 싶은가보다.

본격 구직 3개월 차, 어제는 카페 일을 다녀왔고, 한 회사에 지원하고, 아트 오픈 콜에 지원을 했고, 그림 의뢰 들어온 것에 첫 번째 수정을 해서 보냈다. 오늘은 udemy 강의를 좀 듣고, 요번에 만든 아트 작업물을 친구가 만든 출판 회사에 전달할 계획이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하루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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