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미래.
한국에서는 디자인을 하다가, 다른 디자인 공부를 하러 유럽에 왔는데 결국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 누구보다도 돈에 목메던 나였는데 돈 생각은 없이 살아야 하는 아티스트가 되다니 가끔은 나도 내가 웃겨 헛웃음을 짓는다. 한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아트를 하던 친구는 없었던 터라 나 역시도 아티스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평생 가난할 직업. 아트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소수의 몇 퍼센트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 어렸을 적 장래희망에 '화가'라고 적은 적은 있지만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직업군. 그래서 한국국에서 아티스로 살아남기는 어떤지 알 수 없다. MMCA에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있다는 건 알지만 사실 그게 다인정도.
내가 공부한 네덜란드에는 아티스트를 위한 기회들이 꽤 있는 편인 것 같다. 펀딩, 오픈콜들, 갤러리, 작품을 사고자 하는 그룹들, 뮤지엄뿐만 아니라 갤러리까지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관람객들 등. 꾸준히 작업을 하면서 자리를 지키면 언젠가는 빛을 본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떠도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 꾸준하게 자리를 지킨다는 게 정말 어려운 거구 나를 다시 한번 느낀다. 너무도 주관적인 이 예술의 세계에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꾸준히 나의 만들어낸다는 것이 일단 너무 어렵다. 개떡같이 만든 줄 알았는데 그 작업은 너무 각광을 받고, 찰떡같이 만든 줄 알았는데 이 작업은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또 누구는 몇만 유로를 요번에 받았다더라, 누구는 큰 전시를 한다더라, 누구는 어디에 초청이 되었다더라 라는 소문들이 나를 미치게 한다. 다들 저렇게 뭔가가 일어나는데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게 미치도록 불안하고 이게 내 길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손해 덜 보는 길인가 등등. 하루에도 수백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헝클어 놓는다. 또 마지막,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다. 아무리 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해도, 모든 아티스트들이 그 돈을 받기를 원한다. 매일매일이 지원서를 쓰고 결과를 기다리는, 똥줄 타는 일상이다. 돈을 받는다 쳐도 돈 나갈 일이 뭐 이렇게 많은지. 또 졸업과 동시에 프리랜서 등록을 했는데, 그 뜻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세금 문제가 많다는 거다. 작은 일을 의뢰받거나 하면 인보이스를 써서 보내야 한다. 그리고 분기별로 내가 인보이싱 한 건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만약 내 작업을 위해 돈을 꽤 써왔다면 그 인보이싱 건에 대한 세금이 작아지거나 아예 없어질 수도 있지만.. 아니 그러면 나는 돈을 언제 모으나? 모으는 것 말고도 생활 속에서 돈 나갈 일들이 너무 많은데. 요번 3분기에는 백만 원가량 넘는 세금을 내고 현타가 왔다. 물론 번 것에 대한 세금이지만 가끔은 너무 답답한 거다 정말. 또 세금은 혼자 하기엔 너무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라 세무사도 고용을 했고, 물론 돈을 낸다.
이렇게 마이너스의 나날, 여전히 카페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 수가 없는 삶, 언제나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하는 삶에 치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직업을 구할까? 한국에서의 3년 정도의 일한 경력이 있어 어떻게 잘해보면 다시 신입으로 취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작은 희망 또는 기대가 있어 링크드인이라는 구직사이트를 매번 기웃거린다. 직업을 구하기만 하면, 남자 친구랑 같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도 있을 거고, 사고 싶은 것들을 살 수 있을 거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을 텐데. 따박 따박 월급을 받는 삶,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삶. 그 안정성이 너무 그립다. 또 여기는 한국에 비해서 근무 시간도 현저히 적고, 회사 내에서의 수평적인 분위기가 잘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일하는 게 힘들 것 같지도 않고. 회사에 목메지 않고 그냥 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퇴근 이후에 내가 하고 싶고, 배우고 싶던 것들을 하면서 사는 삶, 그런 안정적인 삶을 요즘 자주 생각한다.
유럽에서 아티스트로 사는 2년 차의 소감은: 하고 싶은걸 다 해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확실히 알게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매일매일 마음 조리고 뭐하나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