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궁을 초음파로 보시더니 입구가 살짝 꺾여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리 안쪽에서 나오려고 해도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초음파 보는 막대가 꺾여있을 때, 아기집과 자궁입구가 직선이 되어 보였다. 내 자궁입구가 조금 꺾여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유산을 하고 나니, 처음 하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유산도 처음이고 모든 게 다 처음이다.
자궁 입구는 직선이 아닌 부드러운 곡선으로 살짝 휘어져있었고, 안쪽 자궁에 아이와 아이집이 있었다. 안쪽에 있으면 너무 아늑해서 나가기 싫을 것 같았다.
물리적인 힘을 가해서 입구 쪽을 벌린다고 했다.
해초 같은 걸 넣은다고 했던 것 같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해초스틱'이라고도 불리는 '라미나리아'라는 것이었다.
이걸 넣으면, 자궁 경관이 서서히 확장이 된다.
"라미 있어?"
"네. 있어요."
교수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대화가 들린다.
"아프실 거예요."
질경으로 벌리고 뭔가를 넣으셨다.
그래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질경을 벌릴 때 의사 선생님의 숙련도도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난임병원 원장님과 담당 교수님께서 하실 때는 안 아프고 레지던트 선생님이 할 때는 너무 아팠다.
너무 힘들면 수술하는 방법도 있다고 해서 최대한 수술은 안 하고 싶다고 했다. 내일 아침까지 경과를 보기로 했다. 자궁 입구를 물리적으로 벌려놨으니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에는 수분을 머금도록 촉촉하게 무언가로 막아놨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물에 적신 솜이라도 넣었나?'싶었다. 내가 아래를 볼 수는 없다. 피 뽑는 것도 못 보겠는데, 어떤 처치를 하고 있는지 내 눈으로 보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병원의 아침은 매우 활기차다. 눕자마자 청소하시는 분이 들어오셔서 바닥을 닦아주셨다. 그리고 좀 이따가 또 누군가가 들어오셨다. 왠지 수간호사 또는 간호부장 같았다. 병실 상태를 보고, 어떤지의 여부를 물어보시고 피 묻은 환자복 두 개를 가져가셨다. 그리고 비상 버튼을 침대 위로 끌어당겨서 놓아주셨다.
"무슨 일 있으면 복도로 나가서 간호사 부르지 말고, 이 버튼 눌러서 여기로 오게 해요."
그 말을 듣고 '이 분은 간호사들 중 가장 높은 사람인 것 같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한테 아직 아기집이 내려오지 못해서 오늘 퇴원을 못한다고 전화드렸다. 그전부터 퇴원이 확실하지 않아서 다음날에 전화해 준다고 했었다. 다행히도 오전 9시 전, 너무 늦지 않게 퇴원취소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었다.
오늘 아침은 금식이다. 아침식사를 받은 다음에 먹지 않고 있으면, 교수님 회진 후 먹을지 말지 정해진다고 했다.
식욕이 없어서 뭘 먹고 싶지가 않다.
갑자기 생각나는 건 유산했다는 걸 알게 된 날, 난임병원 지하주차장에서 남편하고 먹었던 맥그리들.
어떤 기분으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유산해도 남편과 함께 있으면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혼자 있으니 통 먹고 싶지도 않고, 나가서 사 먹기도 곤란하다. 링거를 꽂고 치마 아래에는 기저귀를 한 채로 돌아다니기는 조금 그렇다.
저녁에 남편이 오면 같이 병원밥 맛있게 먹고, 또 함께 이것저것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생각하면 기분이 많이 나아진다. 남편을 생각하다 보니 전화가 왔다.
"몸은 좀 괜찮아?"
"괜찮아요."
"괜찮은 목소리가 아닌데?"
'당신이 없어서 안 괜찮아요......'
"올 때,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하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사줘요."
남편의 웃음소리가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하게 내 마음을 비춘다.
아침 9시쯤 자궁수축 주사를 맞았다.
간호사 선생님께 여쭤봤다.
"입원이 연장되었는데, 1층에 가서 직접 수속을 해야 하나요?"
"저희가 다 해드려요."
"그럼 계속 이 방에 있는 거예요?"
"네."
정든 이 병실을 안 떠나도 된다니 좋았다.
남편이 퇴근하기가 기다려진다. 남편과 함께 있을 땐 슬픔이 달아난다. 유산도 잊을 정도로 기쁘고 행복한 마음이었는데, 혼자 덩그러니 병실에 있으니 눈물이 난다. 남편과 있을 때 한 번도 안 흘렀던 눈물은 나 혼자 있을 때만 모습을 보인다. 가만히 누워있는데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너무나도 임신이 하고 싶었고, 아이를 낳고 싶었고, 엄마가 되어보고 싶었던 나는 여기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문을 열고 나서면 많은 임산부들이 있다.
나가고 싶지가 않다.
이 문을 기점으로 나와 그들은 다른 세계에 있다.
생과 사.
그들은 산 아이를 품은 임산부이고,
나는 죽은 아이를 품었다.
남편이 어젯밤 자상하게 목에 감싸줬던 수건을 눈에 덮었다.
그리운 남편의 손길이 없어서 더 외롭다. 목덜미가 허전하고, 마음도 쓸쓸하다.
눈물도 계속 피부에 닿으면 까진 살에 뿌리는 소독약처럼 쓰라려진다.
화장실을 갔는데 아직도 소변에서 아무런 덩어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만약 심장이 멎지 않았다면, 너무나도 튼튼하게 자궁 안에 자리 잡았을 것 같다.
하지만,
죽음 앞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불 꺼진 병실이지만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에어컨을 껐지만 중앙난방으로 틀어주는 듯, 춥다.
쌀쌀하지만 아직 껴입을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덜덜 떨다 보면 자궁이 수축되어서 배출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다.
1인실 병동에 조용히 누워있다.
오전에만 다섯 번 이상 혈압을 쟀다.
"평소 혈압이 낮으신 편이세요?"
이 얘기만 해도 오전에 5번이나 들었다.
"잘 모르겠어요. 병원을 자주 다닌 게 아니어서 혈압을 자주 재보진 않았는데 지금까지 별다른 언급은 없어서 보통인줄 알고 살고 있었어요."
혈압수치는 크게 신경 안 쓰고 살았었다.
오전에는 혈압을 계속 쟀다. 마치 나의 혈압이 정상이어야 만 한다는 듯이.
"110에 70 나오셨어요. 아까는 기계가 낮게 나오는 기계였나 봐요."
"정상 수치인가요?"
"네. 정상이에요."
다양한 혈압기계로 혈압을 계속 측정하는데 정상이었다가 혈압이 낮았다가 다시 정상이 나왔다.
내가 혈압이 낮은 편인가?
잘 모르겠다.
"혈압 재드릴게요."
"100에 60 나오셨어요. 약간 낮아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다시 올게요."
혈압과의 전쟁이다.
각기 다른 혈압 재는 도구를 가지고 3명의 실습생이 번갈아가면서 혈압을 재기 시작했다.
12시에 엉덩이에 자궁수축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진통제를 뺐다.
"이제 진통제 수액이 다 떨어져서 조금이라도 아프면 바로 말씀해주셔야 해요."
'오! 노!!!! 난 진통제에 중독되어 버린 몸이라고!!!'
마약성진통제가 내 몸에 들어온다는 건 커다란 방패를 가진 것과 같다. 모든 고통을 막아주는 절대파워실드!
입원하고서 계속하고 있던 나의 방패를 빼앗겼다.
이제 공격이 들어오면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모르겠다.
갑옷과 방패 없이 전쟁터에 나간 군인 같다.
남편이 너무 보고 싶다. 지금 보고 싶다고 하면 바로 달려올까 봐 차마 연락하지 못했다. 남편은 다음 주에 휴가를 썼지만 오늘은 빠지기 힘든 회사일이 있어서 출근을 했다. 아침에 자꾸 안 가려고 해서 등을 떠밀어서 보냈다.
병원에 박혀있기보다는 밖에 있다 오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유산으로 인해서 남편의 일상생활이 파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퇴근할 때 웃으며 들어오는 남편의 미소를 좋아한다.
진통제 수액이 없다니 앞으로 닥쳐올 고통을 혼자 이겨낼 생각에 아찔하다. 어제는 남편이 옆에 있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보호자침대에 누워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