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이 정상이라고 한 후, 엉덩이에 자궁수축주사를 놔주셨다. 바늘이 매우 길어서 늦게 끝이 나는 듯 긴 아픔이 느껴졌다. 이 주사는 어찌나 아픈지 주사를 다 맞고도 주삿바늘이 계속해서 엉덩이에 꽂혀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 됐어요?"
이렇게 자꾸 물어보게 된다.
자궁수축주사를 맞고 나서 혹시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아파질까 봐 화장실에서 소변을 봤다. 맑은 오줌에 피가 한 방울 떨어진 정도였다.
주사 맞은 후 복통이 점점 심해진다.울렁거리는 어지러움은 계속 있지만 증상이 너무 약해서 배 아픈 거에 비하면 신경이 안 쓰일 정도이다.
오줌에 섞이는 피 양이 늘어간다. 처음에는 한 방울 정도로 보였는데 이젠 빨간 물감으로 짜낸 듯 양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덩어리는 없고 묽은 피이다.
새벽 한 시가 넘어간다. 링거를 맞고 있는 오른손이 저려온다.
새벽 네 시에 항생제를 놔줬다. 혈압이 낮아서 십분 뒤 다시 잰다고 했다.
혈압이 낮다면서 자주 와서 혈압을 쟀다.
"10분 후에 올게요."
"15분 후에 올게요."
남편은 보호자의자를 침대로 만들어서 잠이 들었다.
이불도, 베개도 없는데 어디에서나 잘 잔다.
간호사 선생님이 남편침대와 내 병상 사이에 오셔서 혈압을 체크하시는데 남편은 한 번도 안 깨고 곤히 자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평화스러웠다.
예민하지 않고, 잠을 잘 자고 스트레스 안 받는 남편이 너무 좋다.
"염려하지 마." 잠꼬대로 이렇게 귀여운 말도 했다. 꿈속에서도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는 건 힐링 포인트였다.
오른손이 계속 저리고, 혈압이 낮다면서 계속 혈압을 재길래 도저히 잘 수 없었다.
자정에 자궁수축주사를 맞고 한 시간 좀 안 돼서 잠든 게 오늘 수면의 전부인 것 같다.
계속 혈압을 재다가 혈압이 낮아서 5시에 진통제를 다 빼고, 생리식염수를 투여한 후 다시 오겠다고 했다.
생리식염수가 들어가자 차가운 기운이 팔을 타고 번진다.
창문 밖으로 새벽이 밝아온다.
생리식염수가 다 들어가고, 다시 혈압을 쟀다.
"조금 높아지긴 했는데......"
다시 진통제를 맞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니 아무런 피도, 덩어리도 나오지 않았다.
몸 상태는 너무 좋아서 배가 아프지도 않고, 울렁거리지도 않는다.
새벽 6시에 자궁수축주사를 맞았다.
"이제 3시간 간격으로 주사를 맞을 거예요."
주사는 매우 아팠다.
남편은 내가 자궁수축주사를 맞자 안절부절못했다. 오늘은 중요한 발표가 있어서 출장을 가야 하는데 내가 아플까 봐 걱정되어서 못 가겠다고 했다. 나는 남편을 내보냈다. "퇴원할 때 엄마가 와서 집에 데려다준다고 했으니까 걱정 마요." 오늘 아침 11시에 퇴원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아직 나는 아기집은커녕 덩어리도 배출하지 못하였다.
오전 7시 30분쯤 병실에 휠체어가 들어왔다. 간호학과 실습생이 휠체어를 타고 처치실에 가야 한다고 했다.
"제가 걸어갈까요?"
"안 돼요. 낙상 위험이 있어서 휠체어를 타야 해요."
실습생을 실습시키기 위해서 실험대상이 된 것 같다. 지금까지 다 걸어서 다녔기 때문이다. 나는 다리를 다친 게 아니어서 폴대를 밀고 다니면 걷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어쨌든 휠체어를 타고 나갔다.
처치실 앞으로 휠체어가 다가가자 한 간호사가 말했다.
"잠시만요. 처치실에 가야 할지 초음파실에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기에 잠시만 기다리세요."
처치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 어떤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내 휠체어를 밀어준 간호학과 실습생에게 말했다. "저분 먼저 해야 되니까 저기 가 있으세요."
나는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산부인과 병동 입구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제 갓 아기를 낳은 산모들이 처치실에 가서 소독을 받으면서 신생아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휠체어에 앉아서 울음을 참았다.
배가 나온 여자분들이 오가고 있었다.
나는 같은 환자복을 입었지만, 아이를 잃은 불쌍한 여자였다.
1인실에 혼자 고립되어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비참함이 몰려왔다.
휠체어를 밀어준 실습생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병동에서 핸드폰도 가져다줬다.
20분쯤 지났을까... 처치실에서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의자에 앉았다.역시 실습생 때문에 의미 없이 휠체어를 탄 게 확실했다. 왜냐하면 처치실에는 링거를 고정할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간호사 선생님은 링거를 손으로 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실습생은 다시 내가 있었던 병동에 가서 폴대를 가져왔다.
재미있는 희극이다.
나는 참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산부인과 병동에 너무 환자가 부족해서 부득이하게도 자주 참여하게 되었다.
다리를 벌리고, 질경으로 질 입구를 벌렸다. 깊게 들어가는 고통에 숨을 참았다. 질경을 벌리는 것부터가 너무 아파서 난임병원에서 난임시술 때마다 원장님께서 얼마나 안 아프게 해 주셨는지 느껴졌다. 질 입구가 벌어지고 환한 불빛이 내 아래를 비춘다.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약을 넣으려고 하시다가 멈칫하셨다.
"이거 두 개로 다 나눠야 돼요."
간호사가 대답한다.
"그럼 총 8개요?"
"작게 해야지 골고루 들어가죠."
레지던트 선생님이 대답한 후, 내 질에 넣었던 질경을 다시 꺼낸다.
4개의 알약은 그 자리에서 두 동강이 나서 총 8개의 조각이 되었다.
질정을 나눠서 작게 만든 작업이 끝나자 다시 질경으로 질 입구를 벌리기 시작한다.
"힘 빼세요. 그래야지 안 아파요."
이미 처치실 앞에서 기다리면서 멘탈이 털렸던 나는, 아픈 질경으로 벌리는 작업을 두 번이나 하게 되었어도 화도 안 났다. 최대한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잘 들어가서 빨리 배출되고, 퇴원하고 싶었다.
다 끝나자 피가 흥건했다. 바닥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그 상태로 휠체어를 탔다. 휠체어로 병실까지 돌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복도 왼편에는 아침 식사를 위한 카트가 있고, 겹쳐서 오른쪽에는 베드가 나와있었다.
"그냥 제가 걸어서 갈까요? 너무 좁아서 못 빠져나갈 것 같아요."
"안 돼요. 낙상 위험 때문에 휠체어 타셔야 해요."
실습생은 뒤에서 휠체어를 밀었다.
-탕탕
-탕
휠체어는 카트에도 부딪치고 베드에도 부딪혔다.
"죄송해요."
"괜찮아요."
차라리 걸어가고 싶었지만, 실습생의 입장을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가까운 거리지만 휠체어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