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자궁수축주사는 3시간 간격으로 맞는다. 어제는 4시간 간격이었으니 더 자주 맞게 된 거다. 처음 자궁수축주사를 맞았을 때는 바로 몸에서 반응했었다. 그런데 내성이라도 생긴 듯 오늘의 시작인 자정부터는 맞아도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배도 별로 안 아프고, 소변을 봐도 핏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여러 후기들을 읽어보면, 배출될 때는 피오줌 먼저 나오고 점점 또는 갑자기 덩어리가 나온다.어제는 희망을 놓지 않고 금식 시작시간인 자정까지 텀블러 가득 물을 채워서 많이 마셨었다. 하지만 조금씩 희망이 없어진다. 희망이라는 항아리에 물을 채워보려고 하지만 두 손 가득 아무리 물을 모아도 벌려진 손가락 사이로 물이 다 빠져나가서 독을 채울 수가 없다.
"물을 많이 마시면 배출에 도움이 될까요?"
"글쎄요. 상관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간호사 선생님의 대답을 들으니 더 의욕이 빠진다.
어제는 거의 먹은 게 없다. 오늘 아침은 금식했고, 점심은 죽 몇 숟갈 뜬 게 다다.
병원의 점심시간이었다.
조금 이르게 병상에 있는 베드테이블을 세팅했다.
병원 밥은 꽤 맛있는 편이다. 조금은 기대가 됐던 것 같다. 아침도 안 먹었으니 더 맛있을 것 같았다.
힘들 땐, 밥을 먹어서 힘을 내야 한다.
언제나 우리 오빠가 그랬었다.
"힘들어도 꼭 밥을 잘 챙겨 먹어."
가까이서 날 지켜본 가족이기에 나를 잘 안다.
밥을 잘 안 챙겨 먹고, 몸을 잘 안 아끼는 나를.
기다려도 점심밥이 안 나와서 복도에 나가봤더니 식판을 가지고 오신 병원직원이 사라졌다.
배식이 끝났나 보다.
간호사실에 가서 물어봤다.
"저 오늘 점심식사 신청 안 되어있나요?"
"오늘 아침하고 점심이 금식으로 되어있네요.오후에 수술할지도 몰라서...... 점심은 이미 시간이 지났으니 저녁밥을 예약해 드릴까요?"
"네. 저녁 예약해 주세요."
바보같이... 내 밥그릇도 못 챙겼다.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 한다.
변명을 하자면, 아침진료 때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약물과 수술. 힘들면 오후에 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난 오후에 수술 안 하고 싶다고 말했었기 때문에 나의 환자 일정에 그런 게 반영이 되는 줄 알았다. 입원은 처음이라서 잘 몰랐다.
내가 느낀 건, 산부인과 분만실의 의료진과 병동의 간호사들은 별개라는 것이다. 병동의 간호사 선생님들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케어해 주는 사람은 없다. 다들 친절하다. 하지만 그저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링거가 다 떨어져 가도 병실엔 아무도 오지 않을 때가 많다. 많은 항생제, 진통제 팩을 갈았지만 내가 직접 요청한 적이 많다.
내가 의사 선생님과 어떤 얘기를 나눴고, 수술을 하는지 안 하는지 진행에 대한 대한 업데이트는 없다. 그저 병동 컴퓨터에는 처음 입원할 때의 정보 그대로 저장되어있나 보다.
밥을 원하거나, 뭘 원하면 가서 말해야 한다.
병실로 돌아와서 가방 속에서 지갑을 꺼낸다. 링거를 꽂은 폴대를 들고 산부인과 병동을 나선다. 병동 바로 오른쪽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1층으로 가서 편의점에서 뭐라도 먹어야겠다.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는데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리는 없으니 올 거라도 생각하고 기다렸다. 기다려도 안 오길래 의아하던 찰나 산부인과 병동 입구 자동문이 열리고 간호학과 실습생이 나왔다.
"이 엘리베이터는 수술할 때 쓰고요, 다른 층을 가시려면 뒤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쓰셔야 해요."
나를 끌고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좁은 복도로 나갔다. 그 복도 끝에는 계단이 있기 때문에 폴대를 미는 나는 계단으로 갈 수가 없다. 하지만 작은 복도 오른쪽으로 엘리베이터 여러 대가 있었다. 이럴 수가! 분명 이 길로 와서 입원했을 텐데 기억이 안 났었다니! 비밀의 화원이라도 본 양 신기했다.
이 학생은 나를 정말 병자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안내하듯이 나를 끌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이걸 타시면 돼요." 하면서 내려가는 버튼도 눌러줬다. 버튼에 불이 들어온다.
학생은 내가 바보가 된 줄 아나보다.
나도 엘리베이터 버튼은 누를 줄 아는데......
몇 번 혈압을 재러 병동에 왔기 때문에 서로 얼굴은 알고 있었다. 아무튼 매우 고마웠다.
1층으로 내려갔다. 다행히도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을 찾아서 폴대를 밀면서 사람들 많은 곳을 헤치며 다니고 싶지 않았기에 너무 다행이었다.
컵라면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병실에 냄새나는 것도 싫었거니와 폴대를 밀고 다녀야 해서 한 손만 쓸 수 있기에 뜨거운 물을 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나중에 층마다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휴게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팽이는 작은 자신의 집 안에 있는 게 편하듯, 나 역시 혼자 있을 수 있는 안전한 병실로 돌아가서 편안하게 밥을 먹고 싶었다.
의외로 도시락이 안 보였다. 내가 못 찾은 거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점심시간이라 이미 동났을지도......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보기로 했다. 죽 코너에 죽이 매우 많이 있었다. 2 플러스 1 중에서 맛있는 죽 3개를 골랐다.
"1회용 숟가락 있나요?"
"제품 아래에 포함되어 있어요."
"감사합니다."
편리하게도 숟가락이 붙어있다고 한다.
더블비안코처럼 아래를 열면 접힌 숟가락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다시 병실에 돌아가야 하는데 병실 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정말 바보가 되었나? 나는 그냥 유산했을 뿐인데......'
층별 안내도를 보니 1층에 산부인과가 있었다.
'오잉? 나는 위에서 내려왔는데?'
산부인과 진료실은 1층이고, 병동은 더 위에 있다. 1층에 있는 산부인과 진료실에 갔었는데 갑자기 바보가 된 듯 일차원적 사고를 했다. 아무튼 병동 층수를 누르고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