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와 소파술 중에서 고르래

미친 여자처럼 울기만 했다

by 로에필라

입원 둘째 날, 점심 이후 누워있는데 레지던트 선생님이 들어왔다.


"교수님이 더 강한 약을 써보자고 하시네요. '메토트렉세이트'란 약물이에요."


"그거 항암제죠?"


"네. 태아도 어떻게 보면 암세포와 같아요."


태아가 암세포라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이 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같이 느껴졌다.


'내 아이는 그런 취급을 당하면 안 돼.'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


내 마음도 모르고 MTX의 기전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한다.

신장에도 쓴다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아이를 위해서 단 한마디의 변호도 해주지 못한 게 지금도 미안하다.


"그 약이 항암제여서 다음 임신하기까지 너무 기간이 길어질 것 같아요. 6개월 이상 피임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건 약을 길게 쓸 경우예요. 우리는 한 알만 쓸 거예요."


"한 알을 쓰면 다음 임신은 언제부터 준비할 수 있죠?"


레지던트 선생님이 대답을 하지 못한다. 헷갈린다고 했나 모르니까 알아본다고 했나 아무튼 그랬다.


항암제를 쓰자니...... 눈물만 나왔다.


"다음 임신을 빨리 준비하고 싶은데 너무 늦어지는 거 같아요. 그리고 항암제를 쓰면 다음 임신 때 아이가 기형이 될까 봐 무섭기도 해요."

어떻게든 항암제를 쓰기 싫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메토트렉세이트를 쓸 거면 평일에 해야 해요. 주말에는 못 써요. 평일에 해야지 지켜볼 수가 있어요."


대화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약을 갑자기 오늘 써보자니...... 그리고 그 약을 오늘 써야 하는 이유가 납득이 안 되었다. '항암제'라는 말 자체가 무섭게 들렸다.


"제가 약물배출을 선택한 이유는 소파술보다 다음 임신에 지장이 덜 갈 거 같아서 그랬어요." 울면서 말했다.


"약물을 쓰지 않으려면 '긁어냄술'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아무래도 다음 임신 때 착상할 위치에 안 좋을 수 있어요. 하지만 빠르죠."



소파술을 '긁어냄술'이라고 말하나 보다......



메토트렉세이트, MTX는 '자궁외임신' 때 나팔관에 착상된 수정란이 커지면서 나팔관이 파열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처방한다고 들었다. MTX가 항암제이기 때문에 맞고 나서 6주~1년간 피임을 하는 편이라고 봤었다.



숨이 멎을 정도로 울었다. 과호흡증처럼 너무 울어서 숨이 막혔다. 눈물은 계속 흐르고 콧물도 흘러서 코가 막혀서 숨도 안 쉬어지고 울음소리를 내느라 그런지 목으로도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나가자 더 크게 울었다.

통곡과 오열이 계속되었다.

미친 여자처럼 울기만 했다.


심장소리를 들으러 간 병원에서 갑자기 아이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병원에 가서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다른 병원에서 가서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유산부터 입원하기까지 파도에 떠밀려가는 스티로폼처럼 여기까지 왔다. 이제야 자의로 감정이 표출된다.


'항암제'는 그저 하나의 버튼이었다.

내 안에 꾹꾹 눌러 담은 엄청난 강도의 감정이 막을 수 없는 수압으로 둑을 터트렸다.

폭풍우 치는 바닷가의 파도처럼 모든 것을 없앨 듯 소리 지르며 울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나는 이불 위로 몸을 엎드린 채 이불을 쥐어뜯으며 울었다. 너무 비참하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를 잃은 것도 견디기 힘든데 더 견디기 힘든 일들이 자꾸만 벌어진다.


혼자 있어서 마음껏 울 수 있었다.

병실 문 밖으로 울음소리가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은 그런 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도저히 울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내리 6 시간을 울었다.


남편은 중요한 발표 중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조용한 소리로 전화를 받던 남편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항암제를 맞거나...... 소파술을 해야 한데. 약물이 안 듣는데......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 해?"


남편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울지 마......"


남편의 목소리에 울음을 숨기지 않았다.

울지 않을 수가 없다.


"기다려보자. 약물배출 하기로 했잖아. 오늘 꼭 배출될 거야. 지금 옆에 없어서 미안해. 내가 괜히 갔어. 내가 있어줬어야 했는데...... 너무 힘들었겠다. 지금 빨리 갈게."


그 무엇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남편이 간절히 필요했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체감상 10분 밖에 안 흐른 거 같은데 병실 문이 열리고 다시 그 레지던트 선생님이 태블릿 피시를 들고 얼굴을 내밀었다.


"결정하셨어요?"

그 약을 쓰면 한 달 후에 임신하면 된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신뢰가 가지 않았다.


태블릿 피시를 들고서 결정했다면 사인하라고 하는 그분한테...... 울면서 말했다.


"오늘 처음 듣는 약물을 어떻게 바로 결정하죠? 남편도 지금 일하고 있어서 얘기는 했는데 바로 결정은 못 하겠어요."


"교수님한테 다음 임신을 위해서 그 약물이 나을지, 아니면 소파술이 나을지 여쭤봐주면 안 될까요?"


"그건 본인의 결정이죠."


친절한 교수님을 뵙고 싶었다.

중간에서 소통이 안 되는 기분이 들어서 너무 답답했다.


문에서 얘기하던 레지던트 선생님이 나가셨다.


미칠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기계와도 같은 그분을 보고 싶지 않았다.


곧이어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준 후, 자궁수축제 한알을 주고 가셨다. 점심을 먹고 나서 복용해야 하는 약이라고 했다. 누가 들어오는 순간만큼은 울음을 참아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저는 저 의사 선생님을 보고 싶지 않아요! 제발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을 바꿔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참았다. 그분은 그분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레지던트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덜컥 무서워졌다.

또 항암제 쓰는 거에 사인하라고 할까 봐......


레지던트 선생님은 보호자 침대에 앉더니 내 결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항암제를 쓰는 거에 대해서 걱정이 된다면 안 쓰는 게 맞다면서 약물배출을 내일까지 하면서 기다려보자고 했다. 내일 퇴원하고 다시 입원해서 같은 과정을 반복해 보자고 말했다.


그때서야 조금씩 안심이 되었다.

혹시 내일 아침까지 나올 수도 있는 건데 성급하게 결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당시는 항암제를 쓰는 것보다는 소파술이 더 낫다고 느껴졌다. 약물배출을 하다 보면 아기집이 아래로 내려와서 소파술을 해도 손상이 덜 간다고 들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공간에 계속해서 있는 건 계속되는 고통이었다.

더 이상 입원해서 약물치료는 못할 것 같았다.

너무 힘들고 지쳤다.



'어차피 약물배출이 안된다고 하면 소파술 하려고 했었잖아.'


내 의견을 들어주고 반영해 줘서 고맙게 느껴졌다.

나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기 때문에 수건을 눈 위에 대고 있었다.

눈물이 너무 나서 눈이 따가워서 눈을 못 마주쳤지만 고개는 계속해서 끄덕였다.


혈압이 낮아서 체크를 주기적으로 하고 있다.

오후 3시 자궁수축 주사를 맞았다.

4시부터 일어나서 움직였다.


4시 30분. 화장실에서 배변판에 소변을 보는데 '툭-'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묵직한 게 떨어졌다는 게 느껴졌다. 놀라서 아래를 보니 손바닥만 한 길이의 두꺼운 뭔가가 나왔다.

온몸이 덜덜덜 떨렸다.

'혹시 아기가 나온 건가?'

천천히 간호사실로 걸어갔다.


"뭐가 나온 거 같아요. 좀 봐주세요."


간호사 선생님은 나보다도 더 빠른 걸음으로 병실에 가서 배변판을 가지고 오셨다.


한번 터진 둑은 바로 복구할 수가 없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병실에 걸어갔다.








keyword
이전 10화내 밥그릇은 내가 챙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