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검체라고 불렸다

천국처럼 밝고 눈부신 빛이었다

by 로에필라

저녁 6시에서 9시 사이에 질정을 넣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가 내 몸 밖으로 나오면서 상황은 긴박하게 바뀌었다.


"분만실로 가주세요."

병실에 들어오자마자 분만실로 가라는 말에 울면서 분만실까지 걸어갔다.

양다리를 올릴 수 있는 분만실 베드에 누웠다.

의자라고 하기엔 베드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내 아이는 그곳에서 검체라고 불렸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말했다.

"검체는 아니에요. 아침에 자궁입구 벌리려고 넣었던 거예요."


레지던트 선생님께 내 아이는 죽은 태아가 아닌 검체이다.


초음파를 보기 시작했다.

"검체통 가져와."

"병리과에 낼 검체통이요?"

"응."


나는 분만실에 누워서 두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질경으로 질 입구를 벌린 데에 모자라서 뭘 더 많이 집어넣고 있는 느낌이 났다. 너무 아팠다. 아마도 해초스틱인 '라미나리아'가 나와서 추가로 집어넣는 것 같았다.


이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지. 그리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생각났다.


시험관을 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난자채취를 위해서 했던 모든 주사기와 과정 하나하나......

이식할 때 배아를 바라보면서 간절히 간절히 착상되기를 바랐던 심정......

이식 후 베드에 누워서 기다렸던 일.

난자채취할 때 기다려줬던 남편......

임테기의 두 줄을 보면서 환하게 날 바라봤던 남편......

너무나도 좋아했던 남편......

처음 아기집을 본 날, 남편의 함박웃음......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어렵게 임신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아이가 사라진다는 게 더 힘이 들었다.

겨우겨우 임신을 했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었다.

나 자신을 탓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으나 바로 생각을 돌렸다.

다른 건 몰라도 나 자신에게는 벌주지 말기로 다짐했었다.



수술실의 환한 불빛이 눈부셔서 눈을 감았다.


큰 설명은 없다. 그냥 레지던트 선생님은 내 속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내 배 위에서 초음파 보는 기구를 대고 있다.

초음파 화면을 보면서 시술을 한다.


-아악

진통제 용량을 높게 올렸는데도 아팠다.

"얽혀있어서 그래요."

커다란 게 얽혀있어서 빼낼 때 아픈가 보다.

얽혀있다니.... 도대체 뭐가?!

탯줄과 태아가 얽혀있는 건가? 뭐지?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아팠다.


레지던트 의사 선생님께서 물어본다.

"교수님께서 염색체 검사 이야기 하셨어요? 염색체 검사 하실 건가요?"


통증과 고통에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숨소리 같은 작은 소리지만 알아들으신 것 같다.


아이의 염색체가 정상이어도, 또는 아니어도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염색체 결과를 받아 드는 순간 또 이 순간을 기억할 테고, 또 아이를 생각할 텐데......



"자궁경부에 걸려있어서 빼냈어요."


아기집이 내려오긴 했나 보다.


"교수님께서 오셔서 피고임 남은 거 흡입기로 하실 거예요."


"많이 아플 텐데 엉덩이 주사로 진통제 맞으실래요?"


"네."


지금도 아팠는데 얼마나 더 아프려고 아프다고 경고해 주는 건지......


링거에 연결된 진통제가 더 많이 들어가게 용량을 올리고, 엉덩이 주사도 맞았다.

진통제 주사는 자궁수축주사에 비하면 훨씬 안 아팠다.


배 속의 아이가 사라졌다.

믿기지도 않지만 슬퍼서 눈물이 났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와서 휴지를 준다.

휴지를 눈 위에 올려놓고 눈을 꾹 눌렀다.


"창문 좀 보세요. 경치가 너무 좋아요. 저 하늘을 봐요."

왼쪽으로 몸을 돌려서 창문을 봤다.

눈부시게 하얀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천국처럼 밝고 눈부신 빛이었다.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눈을 감고 있었다.

옆에서 말 걸고, 토닥이며 날 위로해 주려는 간호사 선생님의 마음이 고마웠다.


먼 곳에 있었다던 교수님께서 오셨다.

작은 관을 보여주시면서 "이걸로 흡입할 거예요. 긁어내는 건 안 하고 자극이 안 되게 할 거예요."라고 하신다.


"감사합니다."

숨소리 비슷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이거 왜 온 앤 오프가 안 돼? 컨티뉴어슨데?"


흡입기가 껐다 켜졌다 해야 하는데 계속해서 흡입이 된다는 무서운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교수님께서 잘해주실 거라고 믿었다.


"아파요?"


"네."


"이게 아파?"


"각도를 꺾을 때 아파요."


"그럼 더 작은 걸로 바꿔줄게요." 새끼손가락만 했던 관은 내가 보기에도 작았었지만 그래도 아팠었다.


흡입기는 오래 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부분을 다 제거를 했기 때문에 지금은 태반만 조금 남았다고 했다. 태반은 긁어내지 않을 거라고 했다. 생리처럼 일주일정도에 걸쳐서 조금씩 다 나올 거라고 하셨다.


이렇게 끝났다.

다 끝나니 또 눈물이 났다.

교수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날 안아주셨다.


"잘 됐네요. 고생 많이 했는데......"

"시험관으로 힘들게 임신을 해서... 훌쩍훌쩍."


진상환자처럼 너무 많이 울었었기 때문에... 내 심정을 조금 이야기했다.


"그랬구나......"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이야기를 듣고 호응을 해주셨다.


나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 유산 판정을 받고, 그날 진료가 가능한 교수님께 진료를 봤을 뿐이었는데 실력과 인성을 둘 다 갖추신 훌륭한 분을 만났다. 그리고 무사히 약물배출로 유산을 끝낼 수 있었다. 나중에 또 임신을 해서 출산을 하게 된다면 이 분한테 하고 싶었다.



"이제 퇴원하셔도 돼요."

"너무 고통스러울까 봐 걱정이 돼요.

병원에서 진통제 맞으면서 내일 퇴원해도 될까요?"

"그래요. 원래 내일 퇴원이었잖아요. 내일 아침까지 확실히 보고 퇴원하면 좋죠."

"감사합니다."


교수님은 태아(태아 또는 배아 둘 중 하나였는데 확실히는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연결된 중요 태반이 나왔기 때문에 이제 첫날처럼 고통스러울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분은 레지던트 선생님과는 다르게 죽은 태아를 '검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나도 바라왔던 소중한 아이.

우리 아이가 검체라고 불릴 때마다 실험재료 취급당하는 거 같아서 마음이 아팠었다.


태명까지 지어줬던......

우리 아이.


분만실에 누워있을 때 들렸다.

어떤 액체에 넣고 분리를 할 거라고 했다.

(나중에 외래진료 때, 조직검사를 했으며 이상이 없다고 들었다.)


약물배출로 병원에 입원해서 힘들었던 일 중 하나.

오래 기다려서 기쁘게 품었던 나의 소중한 아이가

차가운 병원에서...... 그렇게 끄집어내 졌다.


그때는 후회가 되었다. 차라리 집에서 나 혼자 조용히 보내줄 걸 그랬나 보다.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이미 죽은 태아는 나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수많은 케이스들을 본 어떤 의료진에게는 숨 쉬지 않는, 그저 검체일 수도 있다.


이제 정말 마음으로도 아이를 보내줘야 한다.

이제 더 강해져야 한다.

그만 그리워하고, 그만 잊자.

너무 행복했었다.



더 심한 상황......

소파술 또는 항암제까지 가지 않고 여기에서 끝내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슬픔도 조금 차올랐다. 임신의 종결과 배출이 다행이지만 기쁜 일은 아니었다.


"병동에 돌아가면 꼭 환자복 다시 달라고 해서 갈아입어요."

물이 흐르는 느낌이 많이 든 걸 보면 피가 많이 묻었나 보다.


오후 6시 좀 넘어서 모든 게 다 끝났다.

임신도.

유산도.

아이도.

다.


환자복을 받아서 병실에 돌아가니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남편은 같이 있어주지 못했던 걸 너무 미안해했다.

남편이 왔다.

"눈이 다 부어있어."


눈의 흰자가 빨개지고 얼굴이 다 빨개졌다.

6시간 정도를 내리 울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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