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나온 맛있는 저녁밥을 먹고 나서 아침에 받았던 알약을 복용했다.자궁수축제는 이렇게 육각형 모양이다.
태아를 꺼낸 후, 저녁까지 통증이 계속됐다. 진통제 수액을 안 맞으니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다. 엉덩이 주사로 맞은 진통제와 수액으로 때려 부은 진통효과가 바닥이 났나 보다.
너무 많이 진통제를 맞은 것 같아서 '버텨야 하나? 그냥 진통제 수액 하나 더 부탁할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진통제를 알약으로 주셨다.
"이제 진통제는 수액으로 안 맞을 거예요."
위를 보호해 주는 약과 진통제라고 하셨다.
다행이다.
병원에 있으니 더 안심이 되었다.
이제 안 아플 거라지만 극강의 고통을 계속 경험하다 보니 힘들어서 고통이 싫어졌다.
그리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어서 더 마음이 편했다.
저녁에 피검사한다고 피를 뽑아갔다.
병원에 뱀파이어가 사나 보다. 피를 참 많이도 뽑아간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양치질을 하려고 일어나서 침대를 벗어난 순간이었다. 갑자기 다리에 시원한 감각이 들었다. 차가운 무언가가 다리를 타고 줄줄 흐르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서 그대로 멈췄다.
커다란 팬티형 성인기저귀를 하고 속에도 긴 성인기저귀 패드를 넣어놨었다.
만약 피라면, 이렇게 쉽게 샐 수는 없는 거였다.
다급히 남편을 불렀다.
무서워서 아래를 못 보겠다.
나는 환자복인 치마 아래 두꺼운 수면바지와 수면양말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차마 아래를 못 보겠다.
남편이 와서 괜찮다고 내가 다 하겠다고 말하면서 바지와 양말을 벗겨주었다.
그대로 천천히 걸어서 화장실에 갔다.
피가 줄줄줄 흐르는 거 같아서 변기에 잠시 앉았다.
다리를 타고 적갈색으로 된 피가 마치 비 오는 날 민둥산에서 흙탕물이 흐르듯 붉은 물길을 만들어 놓았다.
피가 너무 많이 묻어있어서 무서웠다.
샤워기를 들어서 다리를 씻었다.
남편이 캐리어에서 기저귀를 꺼내서 화장실까지 가져왔다.
또 피가 샐까 봐 팬티형 기저귀를 꽉 채워서 단단히 고정시켰다.
깨끗이 씻었는데도 수건으로 다리를 닦을 때 보니 수건에 피가 묻어있었다.
여분의 바지를 꺼내서 입었다. 이대로 환자복만 입으면 침대에 피가 낭자할 것 같아서 바지를 입었다.
아침에 아침밥이 배달되었다.
식판이 하나밖에 없다.
"보호자 식사는 없나요?"
어제 남편이 온다고 해서 저녁과 아침 보호자 식사를 신청한다고 간호사 선생님에게 말해뒀었다.
"신청이 안 되어있나 봐요. 없네요."
"네. 알겠습니다."
식사가 신청이 안 되어있다는 게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또 담당 간호사는 바뀌었다.
어제 점심으로 사놨던 죽 3 개중 남은 두 개를 데웠다.
오늘은 흰쌀밥보다 죽이 더 맛있게 느껴져서 거의 죽을 먹고, 식판에 있는 병원밥은 거의 남편이 먹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또 약을 먹었다.
그리고 처치실에 가서 소독을 했다.
소독솜 같은걸 안에 집어넣어서 너무 아팠다.
아침에 진통제 수액을 안 맞고 있었기에 더 아프게 느껴졌다.
레지던트선생님께 말했다.
"어젯밤에 피가 엄청 많이 나왔어요. 줄줄 흐르는 정도였어요."
병원에서 나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해 줄 수 있도록 나의 증상을 다 보고하는 편이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어요. 피나 덩어리는 모을 필요 없어요."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은 조금 차갑고 공감을 안 해주는 느낌이다. "많이 놀랐겠네요." 까지는 바라지 않긴 했다. 하지만 그분이 일을 할 때에는 프로페셔널하고 꼼꼼하게 하시는 것 같다. 다만 소독이나 질정을 넣을 때, 너무너무 아프다. 자궁경부암 정기검진 때 몇 번 질경을 이용해서 깊숙이 뭘 넣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이사를 다니고 장거리 출퇴근으로 회사를 다니며 난임진료를 받느라 다양한 산부인과를 가봤지만, 이 분만큼 아프게 질경을 사용하는 의사 선생님은 처음이었다.
나중에 그분도 더 경험이 많아지면 난임병원 의사 선생님이나 지금 날 담당해 주시는 교수님처럼 부드럽고 안 아프게 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원은 아침 10시에서 10시 30분 정도에 할 수 있다고 했다.
포도당 수액에 항생제 수액이 추가되었다.
항생제, 피검사, 소독 등등 병원에 하루 더 머물러서 회복하면서 후처치도 확실하게 받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