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기만을 바랐다.
임신만 하면... 임신만 하게 되길 바랐다.
온 힘을 다해서 임신을 원했다.
임신이 끝이 아님을,
끝까지...... 임신 기간을 잘 버티는 것도 중요한 것을
몰랐다.
임신 후에 아이가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임신하기만을 바랬고
임신 과정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그렇게 어리석게도 두줄만 보기를,
임신만 하기를 바랐다.
임신을 해서, 유산하는 게
차라리 처음부터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몰랐다.
유산이라는 더 큰 아픔을 알게 되어버렸다.
'줬다 뺏는 게 더 치사하다' 했던가
아이를 애초에 갖지 못했을 때보다
잠시나마 아이를 품었다 잃은 지금의 이 고통이
더 아프다.
슬프고 고통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네가 살아있었더라면...
내가 더 노력해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더라면...
어쩌면 우리가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가 죽었다.
배가 아프고 피가 계속 나온다.
생리대를 차고 있다.
처방받은 약 중에서 소염진통제가 있다.
아침저녁으로 먹긴 하지만 생리통 같은 통증이 있어서 타이레놀을 추가로 복용하고 있다. 그리고 윗배가 가끔 찌릿찌릿 아프다.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짧고 강하게 번개가 내리치듯 아픈 건 처음 겪는 통증이다.
저녁을 먹고 약을 먹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약을 먹어야 해서 끼니를 잘 챙겨 먹게 된다.
남편이 계속해서 식사를 준비해 준다.
미역국을 따뜻하게 끓여서 고봉밥으로 차려준다.
나는 밥을 그렇게 많이 먹는 편이 아닌데 밥을 너무 많이 덜어준다.
'많다'라고 해도 '다 먹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남편이 갑자기 우리 엄마처럼 자꾸 밥을 많이 먹이려고 한다.
내가 빨리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예뻐서 힘들어도 밥을 다 먹는다.
임신준비로 찐 살을 조금 빼볼까 했는데 이러다가 살이 더 찔 것 같다.
남편은 수박과 멜론을 잘라서 통에 담아놓고 포크로 찍어먹게 한다. 평상시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다.
남편이 과일을 자르다가 손을 다쳤다.
과일을 잘 못 자르는 것도 너무 귀엽다.
최대한 차가운 과일을 직접 만지지는 않으려고 한다. 병원에 입원할 때부터 쭉 남편의 병시중을 받고 있다. 냉 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만질 일 없게 남편이 하나하나 음식을 준비한다.
원래 자상한 남편이지만, 유산을 겪고 나니 더더욱 잘해준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이지만 나한테 선풍기 바람이나 에어컨 바람이 안 가게 조심한다.
나는 혹시 몰라서 일주일 정도는 긴팔, 긴바지에 양말까지 신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유산한 내가 몸조리를 할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서 흠칫 놀랐다.
부정적인 생각은 빨리 없애버린다. 나쁜 생각은 노력으로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다.
사랑스럽고 긍정적인 남편을 보면 나쁜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답답하긴 하다.
약물배출 5일 후,
"점심 먹어야지."
남편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난다.
식탁에는 남편이 정성껏 차린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이게 뭐예요?"
"계란말이"
남편이 처음 한 계란말이가 너무 귀여웠다.
전혀 말아지지 않아서 계란프라이가 실패한 것처럼 생겼다
멜론은 씨가 제거되지 않은 채로 주먹만 한 크기로 잘라져 있어서 더더욱 귀여웠다.
오늘 오후부터 통증이 심해지고 있다. 생리통보다 훨씬 더 심한 통증이어서 약국에서 강하게 빠르게 듣는 진통제를 달라고 해서 그 자리에서 복용했다. 식은땀이 났다.
계속 배가 심하게 아프다가 저녁에 보니 생리대에 커다란 덩어리가 있었다. 검붉은 피에 둘러싸인 하얀색의 긴 덩어리. 아마도 태반인가 보다. 이게 나오려고 그렇게나 아팠나 보다. 아이도 안 낳은 사람이 태반을 볼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런 건 인생에 있어서 못 보고 지나가면 좋을 광경이다. 그냥 피를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충격이 컸다.
차라리 못 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 생리대에 묻어서 보고야 말았다.
태반찌꺼기들은 아마도 더 뱃속에 있을 것 같다.
약물배출은 내가 선택했기에 태반의 일부를 봤다고 해서 난리를 치면서 오버할 생각은 없다. 다 예상했던 일이다. 남편이 뭐가 나와도 절대로 보지 말라고 했던 이유를 알겠다. 태반은 미처 다 자라기도 전에 이렇게 배출이 되고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혼자 있으면 우울해할까 봐 남편은 계속해서 내 곁에 있어주려 한다. 오늘은 남편이 휴가를 내서 하루종일 함께 있어서 우울할 틈이 없었다.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해서 안절부절못한다. 남편이 회사를 가면 내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상상이 된다고 말했다.
"나도 상상이 돼. 내일 일어나서 당신이 없다면 난 그냥 계속 누워있을 거고, 밥도 먹기 싫을 것 같아."
밥을 먹고 싶지가 않다. 남편이 없으면 정말 한 수저 뜨기도 힘들 것 같다.
혼자 있으면, 자책하게 된다.
"내가 노산이어서 염색체 이상이 된 건가?"
"내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조심하지 그랬냐고 말했다. 마음 한편에는 '내 잘못으로 아이가 그렇게 된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싹트고 있어서 계속해서 발로 밟아 죽인다.
강하게 뛴 심장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이별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강제이별이 되었다.
피가 나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이를 가진 적이 없었다는 듯이
생리처럼 피가 나온다.
조금 뭉쳐진 혈액이 있을 뿐, 달라진 건 없다.
그동안 마치 꿈을 꾼 것 같다.
누구의 불행이 더 크고 누구의 슬픔이 더 작다고 재단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말하지 않아도 가슴에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말하지 않을 뿐.
누구나 다 그런 경험이 있다.
어떻게든 극복해서 나아가는 건 스스로의 몫이다.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버리기로 했다.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모른다.
임신되기만을 바래놓고서...
임신이 됐더니
이럴 거면 차라리 아이를 주지 말지 그랬냐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