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죽었을까?

어떻게든 시간은 간다

by 로에필라

"우리 해외여행 갈래?"

"산책 갈래?"

"뮤지컬 볼래?"


유산 이후,

남편은 내가 우울해할까 봐 날 끌고 밖으로 나간다.


남편이 날 데리고 나가서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을 보여줬다.

뮤지컬에서 중간중간 조용하고 어두워지면 눈물이 왈칵 나온다.

짧고, 조용하고 어두운 순간은 아이의 죽음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공연 자체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현실과 다른 내용, 대화, 분위기에 몰입하다 보면 기분전환이 많이 된다.


넓은 수목원에서 열대식물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호수를 중심으로 펼쳐진 긴 산책로 양쪽으로 꽃들과 식물들이 가득했다.

걷기만 해도 향기로운 꽃향기가 감미롭게 퍼진다.


"많이 속상했지?"

남편이 나를 꼭 안아준다.

이렇게 노력하는 남편을 보면 나도 더 이상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눈물 나게 고맙다.

유산 후,

남편이 내내 밥을 차려줬다.

그 서툰 손으로 오랜 시간에 걸려서 한 반찬들......

남편의 염려만큼 높게 높게 담은 고봉밥


그 사랑이 고마워서

지금도 생각하면 감동의 눈물이 나온다.

언제나 고맙다.

이 사람이 아픈 날이 온다면, 나 역시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밥상을 차려줄 것 같다.


밥상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아프지 마."

"잘 먹자."

"괜찮아."


힘을 준 남편을 보면 힘을 낼 수밖에 없다.

누가 봐도 계란프라이로 보이는 서툰 계란말이 속에 담긴 따뜻한 사랑에 감사하다.


이 사람이 내 곁에 있음에 감사하다.

내게 없는 것을 찾기보다는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 사람만은 제발 내게서 빼앗아가지 마세요.

난 정말 사랑하는 남편이 없이는 세상을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남편이 나가며 말한다.


"나 없어도 슬퍼하지 마."


"싫어요. 슬퍼요."


"안 슬퍼해도 돼. 반드시 임신할 거야. 반드시 아이는 생겨."


"그건 그래요."


혼자 있으면 자꾸 슬픔이 물밀듯 들어온다.

슬픔, 죄책감, 후회......

무엇에 대한 후회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막을 수 있는 일이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의 운명이었던 건지 내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는 건, 이런 생각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

나를 망치는 어두운 생각.


"다시 임신하면, 누워만 있을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자꾸 후회가 돼요. "

가끔은 내가 아이를 죽인 것만 같다.

계류유산 이야기를 듣자마자 병원에 입원해서 약물배출을 하고 집에 오니 조금씩 생각할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남편에게 미안하다.


초기유산의 가장 큰 원인은 염색체 이상이라고 한다.

염색체 이상 또는 약한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더 건강한 아이가 찾아올 거야.


아기집 배출 후, 자궁이 부은 것 같다.

배도 더 나온 것 같고, 자궁 내부가 빵빵해진 기분이 든다.

뱃속이 가득 찬 기분에 괜스레 화장실에 자주 가서 소변을 본다. 소변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비 오는 날

카페에 가서 점심 식후 30분에 자궁수축제인 '싸이토텍정'을 복용한다.

바닐라라떼를 시켜서 따뜻하게 마시며 창 밖을 본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비 오는 풍경이 아름답다.

내 자궁에 남은 태반들도 다 씻겨 내려갔으면 좋겠다.


붙잡고만 있을 수는 없다.

보내줘야 한다.



퇴원 1주일이 되는 날이다.

산부인과 진료가 예약되어 있다.


그제와 어제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복수 또는 가스 찬 기분이 들어서 빨리 교수님께 현재 건강상태를 진단받고 싶었다.


아침 8시 30분에 채혈을 하고 나서, 2시간 뒤인 10시 30분에 피검사 결과와 함께 진료를 본다고 했다.


8시 30분 정각, 피를 뽑았다. 융모성 생식선 자극 호르몬인 hCG 수치로 임신수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입원해서 너무 많은 피를 뽑아서 그런지 채혈실에서 뽑는 피는 가볍게 느껴졌다.


반팔원피스에 카디건과 양말을 신었다.

손목, 발목에 산후풍이 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손목과 발목을 따뜻하게 하려고 한다. 더운데 껴입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오늘이 일주일 째니까 오늘까지만이라도 양말은 꼭 신어야겠다.


피를 뽑고 나서 산부인과 진료실 앞에 있는 '도착확인'버튼을 누르고 대기를 했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면 조금 더 빨리 진료를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임산부들도 함께 대기했다.

나도...... 저렇게 배가 나오고, 아이를 당연히 낳을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엊그제 같다.

벌써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이 흘렀다.


"넌 왜 죽었을까?"


어떻게든 시간은 간다.

일주일간 잊으려고, 생각 안 하려고 했지만 병원에 오는 순간 모든 건 다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조용한 대기실 안에는 에어컨 소리만 가득하다. 남편한테 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하며 오늘 신고 간 신발의 밑창이 떨어졌다면서 카톡으로 신발과 발 사진을 보냈다. 남편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오늘 진료결과가 좋아서 이제 다시는 '계류유산' 병명으로 이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방문할 때는 살아있는 아이를 품은 임산부였으면 좋겠다. 잠시 또 우울해질 뻔했던 마음을 남편이 다잡아줬다. 실시간으로 출근하면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고 있는 사진부터 해서 일상사진을 잔뜩 보내줬다.


혼자 대기하고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겐 함께 살아갈 일상이 있기 때문에 주저앉아 울기는 시간이 아까웠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어서 감사하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자 내 이름을 불렀다.

"초음파 봐야 하니까 화장실에 다녀오세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초음파실에 들어갔다.

초음파를 보니 내 자궁에 커다란 물방울 모양이 보인다.


"안 빠졌네."


피도 많이 나고 배도 아팠는데 아직도 한참이나 빠질 게 남아있었다.


다른 종류의 자궁수축제 '알소벤정'과 강한 진통제를 처방받고 다음 주에 또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일주일 뒤에 방문해서 초음파를 봤지만, 잔류태반 작은 덩어리가 여전히 남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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