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후 잔류태반 때문에 한동안 계속 임신수치가 나왔다.
피검사를 해서 본 hCG 수치는 아이를 배출하고 난 뒤, 500으로 떨어졌지만 2주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아이가 없는데도 몸은 임신이 된 걸로 인식을 하고 있다.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다.
"다음 생리할 때 생리혈과 함께 잔류태반이 빠질 수도 있지 않나요?"
"이 상태라면 생리를 안 할 거예요."
아이가 없어진 날 쏟아낸 피를 첫 생리라고 생각했었다. 그 이후에도 부정출혈이 계속돼서 피가 계속 나왔는데도 작은 잔류태반은 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석션으로 잔류태반을 뽑아내고 나서야 내 몸은 더 이상 임신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괴로우면서도 후련했던 석션과정에 대해서 되새겨 본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간단한 수술이지만 너무 아플 것이기 때문에 마취를 하고 나서 석션을 할 거라고 하셨다.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이용해서 팔뚝의 반절만 한 두께의 원을 그리시며 말했다.
"자궁이 이미 수축이 된 상태예요. 이 정도 되는 관을 이용할 거여서 아플 거예요."
잔류태반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내 자궁아. 왜 수축이 된 거니? 너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내 몸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다음 주 월요일에 해요. 오늘 해도 되는데... 잠깐만요. 제가 지금 고민하는 건, 분만실에서 할지 수술실에서 할지 하는 거예요. 어디 보자. 스케줄 좀 볼게요."
의사 선생님께서 스케줄을 확인하는 동안 나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조금 뒤에 부를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조금 뒤에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오늘 말고, 월요일에 오세요. 간단하기는 해도 코로나 검사가 필요해요. 오늘 코로나 검사하고 가세요."
코로나 검사를 한 후, 집에 돌아가서 생각해 보니 마취하는 수술이면 금식을 하고 가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계류유산으로 입원했을 때에도, 소파술 할지도 모르니 자정부터 아침까지 금식하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오전에 진료받았던 OOO에요. 제가 다음 주 월요일에 석션이 예정되어 있는데 금식을 해야 하나요? 의사 선생님께서 마취하신다고 했었어요."
간호사 선생님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간단한 거여서 금식 안 해도 돼요."
금식 안 해도 돼요......
알아보지도 않고 바로 대답한 게 분명한 그 말.
그 말 때문에 일은 아주 커졌다.
월요일이 되었다.
약속된 시간보다 30분 일찍 분만실에 도착했다. 분만실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들은 날 보고 당황하면서 "일찍 오셨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늦는 것보다는 미리 가 있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는데 점심시간을 뺏은 것 같은 기분에 미안해졌다.
"지금 전화해서 오시라고 할게요."
분만실에 누워서 기다리니 레지던트 선생님이 오셨다. 레지던트 선생님은 노란색 종이를 주면서 약물을 먼저 결재하고 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수납처에 가서 뭔지도 모르는 내역을 결재한 후 다시 분만실에 들어와서 누웠다.
링거바늘을 팔뚝에 꽂았다.
레지던트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은 '라인을 잡는 것'을 하시고 교수님께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이 오시고 곧 시술이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여서 여쭤봤다.
"마취는 안 하나요?"
"아. 마취를 하려고 했는데 금식을 하라는 이야기가 안 전해졌다고 해서 수술방 예약을 못 했어요."
헉. 마취 없이 생으로 한다고?!!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무서운 마음과는 별개로, 교수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셔서 '마취 안 해도 될만한 간단한 시술이겠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설마 죽을 것 같은 고통인데 마취를 안 할까.
사실 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금식을 한 상태였지만, 수술방 예약이 안 되었다니까 굳이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두꺼운 관이 내 아래로 들어왔다.
그리고 석션이 시작되었다.
관이 들어오는 느낌과 자궁내벽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통증은 그대로 느껴졌다.
"아아악"
흡입하는 관이 내 내벽을 빨아들일 땐, 몸의 내장이 다 빨리는 것 같았다.
아파서 계속 소리를 질렀다.
관이 들어가는 이질감까지는 참겠는데, 썩션 할 때는 눈물이 찔끔 나오면서 빨리 멈추기만을 바랐다.
한차례 석션을 하고 나서 초음파로 잔류태반이 남았는지 확인했다.
"아직 다 안 빠졌네."
나는 사색이 되었다.
"한 번만 더 할게요."
"아악."
아프다고 티를 안 내면 몸이 망가질 정도로 빨아들일 것 같았다. 그래서 아프다고 계속 표현을 했다.
"마지막이에요. 확실히 할게요."
두 번 하는 것보다는 마지막 한방으로 끝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았다.
두 번째 석션은 첫 번째보다 더 길고 강력했다.
석션이 끝나고 초음파로 확인했더니 더 이상 잔류태반이 남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손이 저리기 시작하더니 곧 발까지 저려왔다. 온몸이 저려왔다.
"손 하고 발이 너무 저려요."
"몸에 너무 힘을 많이 줬나 봐요. 그럴 수 있어요."
교수님은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주물러줬다.
"어서 주물러. 환자가 저리다고 하잖아."
내 발 위에도 일회용천 같은 것을 씌운 후 누군가가 주물러줬다.
곧 산호호흡기를 입과 코에 씌웠다.
산소호흡기로 숨을 쉬니 저린 게 곧 괜찮아졌다.
수술시간은 5분도 안 걸린 것 같았다.
내 체감시간은 30분 정도 되었지만......
나는 회복실에 누워서 링거를 맞으면서 기다렸다.
중간중간 내가 잘 회복했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받았다.
"지금은 괜찮아요."
그렇게 링거를 다 맞고 나서 아래를 소독하고 병원을 나갔다.
병원에서 나가는 길에 여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언니 수술 잘 됐어?"
"나 마취 없이 수술했어."
동생한테 마취 없이 잔류태반을 제거했다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거 의료사고 아니야? 너무 고통스러울 것 아니야."
"그래도 장점이 있어. 진료비가 엄청 조금 나왔어."
"진료비가 뭐가 중요해. 언니가 아프잖아."
동생이 화내는 목소리를 전화로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괜찮아. 다 끝났어. 마취 안 해서 더 빨리 끝난 거 같아."
석션과정은 후유증을 남겼다.
마취 없이 생으로 석션을 견디는 과정에서 트라우마가 온 것 같다.
앉아있으면 아래에서부터 위로 관통하는듯한 찌릿한 통증이 온다. 아래에서 꿰뚫는듯한 그 느낌이 자주 들어서 불편했다.
석션할 때 겪었던 그 통증.
환상통인건지 진짜 아픈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럴 때 누우면 통증이 조금 나아졌다.
잔류태반을 제거했으니까 이제 배란이 잘 이루어지고, 생리도 하겠지?
잘 된 거야.
이제 내 자궁에 아이의 흔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