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계속해서 집 안에서, 침대 위에서 힘없이 축 늘어져있었다. 여름의 열기 때문인지, 내 마음의 슬픔 때문인지 아무런 힘이 나지 않아서 깊고 어두운 블랙홀로 빠져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옆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보던 남편은 해외여행을 가자고 했다.
여행사에서 동남아 항공편이 거의 매진이어서 남편의 휴가기간에 맞춰서 갈 수 있는 동남아 여행지는 보홀과 방콕 두 곳이라고 했다. 그중에서 이름도 처음 들어본 보홀을 가게 되었다.
보홀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의 느낌은?
홀(hole)이라는 말이 구멍처럼 어둡게 느껴졌다.
보홀로 여행을 간다고 뭐가 딱히 달라질까?
간다고 결정했지만 여행지에 대해서 알아보거나 준비를 딱히 많이 하지도 않았다.
내 마음은 유산의 슬픔에서 벗어나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가게 된 보홀여행.
3박 5일간 육지와 바다에서 보냈다.
여행 내내 즐거워서 입이 찢어지게 웃어대면서 저절로 몸과 마음이 나아지는 힐링의 시간이 되었다.
한국의 문자, 전화를 다 차단한 채 패키지로 정신없이 일정에 쫓아다니면서 처음 가는 곳에서 지칠 때까지 놀으니 우울한 생각이 들 틈이 없었다. 내가 난임이라는 것도, 최근에 유산을 했다는 것도, 내 나이를 비롯해서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한국인들과 모르는 곳에서 온통 새로운 것에 둘러싸였다.
마음이 힘들 때는, 패키지여행을 가서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새로운 자극을 느끼는 게 나에게는 꽤나 통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키세스 초콜릿을 닮은 모양의 초콜릿힐, 가장 작은 원숭이인 안경원숭이, 뭍이 드러날 때 갔던 신비의 섬 버진아일랜드, 밤새 기타 소리와 노래가 가득한 낭만의 알로나비치...
극단적인 환경의 변화는 나에게 큰 심경의 변화를 주었다.
반쯤 걱정되는 마음으로 떠났던 보홀에서 메마른 내 마음에 환희와 설렘의 물이 퐁퐁 솟아났다.
우리가 보홀에 도착한 날은, 이미 한차례 태풍이 휩쓸고 간 직후였다. 적당히 흐리다가 더울만하면 시원한 비가 가볍게 쏟아져서 열기를 낮춰주었다.
도착한 지 이틀째부터 바람이 세게 부는 듯싶더니 또 다른 태풍이 오고 있다고 했다. 거친 파도 때문에 호핑투어를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배를 타지 못하나 싶었는데 배테랑 선장님이 파도가 덜 미치는 위치로 데려갔다. 잔잔한 바다에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을 볼 수가 있었다.
할 수 없는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조금씩 틈을 비집고 들어가니, 작은 틈으로 길이 보였다. 장애물이 조금 치워지니, 그 뒤에 더 값진 것들이 있었다. 두 눈으로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담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날씨를 포함한 내 주변의 모든 게 다 나를 사랑하고, 나의 여정을 응원한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