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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Aug 24. 2023

쉿! 안경원숭이는 자고 있어요

세계 10대 불가사의 초콜릿힐- 거인의 눈물

맨메이드포레스트를 뒤로 하고 미니버스는 계속 달리다가 작은 공터에서 멈췄다.

안경원숭이 보호구역이다. 안경원숭이는 안경을 쓴 것처럼 땡그랗고 커다란 눈이 귀엽다. 안경원숭이가 친숙하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영화 '그렘린'을 봐서일 수도 있다. 안경원숭이는 그렘린 캐릭터를 만드는 데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안경원숭이 보호구역은 전체 보홀 여행 중에서 가장 아쉬움을 준 코스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패키지투어를 왔기 때문에 원숭이도 있는 동물원에 가는 건 줄 알고, 넓은 곳을 빨리빨리 돌아서 모든 곳을 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예전에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한 동물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넓고 광활한 자연 한복판에서 나무 뒤나 물속에 숨어있는 동물들을 찾아냈었다. 덥고 힘들고 지쳐서 다 돌지도 못하고 나왔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최대한 많은 땅을 밟고, 많은 곳을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입구 뒤로 큰 산이 있었기 때문에 산 전체를 뒤지면서 동물을 찾아 헤매는 야생의 동물원으로 단단히 착각을 했던 것이다.



가이드가 표를 나눠주면, " I ❤ BOHOL"이라고 써진 글씨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하트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서라고 포즈까지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한번 기념사진을 찍고 안경원숭이를 찾으러 떠났다. 산등성이에 자연을 최대한 헤치지 않는 구조로 만들어진 타르시어 보호구역은 타르시어가 살고 있는 곳을 살포시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 같았다. 사실 안경원숭이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낮에 사람들이 지켜보는 게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아서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카메라의 플래시는 꼭 꺼달라고 했다.





좁은 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어디에 안경원숭이가 있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한 줄로 가다가 양 갈래로 나눠진 길이 나와서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데 왼쪽에 사람들이 몰려있길래 나도 줄을 서 있었더니 안경원숭이를 볼 수 있었다.



주먹만 한 작은 사이즈의 안경원숭이는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애처롭게 자고 있었다. 자는 시간조차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지만, 이런 소란에는 깨지 않고 좋은 꿈을 꾸며 잘 쉬길 바랐다. 안경원숭이가 스트레스받으면 벽에 머리를 박으며 자살할 수도 있다고 해서 최대한 가까이에 다가가지 않고 멀리에서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 대부분은 안경원숭이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노란 티셔츠를 입은 직원이 안경원숭이 아래에 포즈를 취하면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다.



나는 안경원숭이와 함께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이 산속에서 나뭇잎 사이를 헤치며 오솔길을 걷는 느낌이 좋았다. 남편의 넓고 든든한 등짝 뒤에서 들풀과 나무들과 함께 즐겁게 걸었다.



짧은 거리를 한 바퀴 돌자마자 출구가 나왔다. 나는 매우 당황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걸 보고 싶고, 더 많이 걷고 싶었다.

"진짜 이게 끝이에요?" 너무 놀라서 남편한테 물어봤다.

"응. 끝이야."



그렇게 허무하게 나가는 길에는 기념품샵이 있었다. 안경원숭이와 관련된 기념품들이 즐비해서 한참을 구경했다. 우리는 거의 첫 번째로 나왔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꽤나 길었다. 더 천천히, 더 자세히 둘러보지 못하고 나온 게 아쉬웠다.



귀여운 안경원숭이 잘 자고 있으렴.

안경원숭이는 육식성이고 포악한 성정을 지녔다고 한다. 이렇게 얌전히 코-자던 안경원숭이들이 밤이 되면 깨어나서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처럼 밤이면 캬아악-거리면서 뛰고 소리 지르면서 난장판을 만들 것 같았다. 그 동네 사는 작은 동물들을 괴롭히고, 다 잡아먹으면서 군림하는 상상을 마지막으로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달리다 커다란 공터에서 멈췄다.

"다들 내리지 마세요."

창문 밖으로 내다보니 매우 커다란 공터에 많은 버스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다양하게 초콜릿힐과 가격이 그려진 피켓을 들고 홍보하는 관광가이드들이 보였다. 아마도 여기에서 계산을 하고 나서 초콜릿힐은 어느 정도 차로 올라가나 보다.



담당 가이드가 다시 버스에 타고, 버스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나는 우리나라 산처럼 중간 지점까지 올라가서 그곳에 주차를 하고 초콜릿힐을 등산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창문 밖으로 많은 초콜릿힐들이 보였다. 이집트의 기자피라미드촌에 온 것처럼 키세스초콜릿 모양의 언덕들이 즐비했다.



'이게 다 초콜릿힐인가?'

이 중에서 하나 키세스 초콜릿을 가장 닮은 게 초콜릿힐인가?

미리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 알쏭달쏭함을 안고 여행하는 게 무척 재미있었다.

호기심을 안고 버스는 도착했다.



"자유시간 드릴게요."

버스는 초콜릿힐 중턱에서 내린 게 아니었다. 초콜릿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온 것이었다.

담당 한국인 가이드와 현지인 가이드들은 이미 초콜릿힐을 많이 봐서 아무런 감흥이 없나 보다. 우리를 내려주고 다시 버스에 탔다. 우리는 전망대를 올랐다. 214개로 이루어진 계단 중간중간에 쉬는 곳도 있었고, 딱 봐도 그리 많이 걷지는 않아도 됐다. 등산할 준비를 했던 나는 매우 허무해졌지만, 더 손쉽게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정도는 껌이지.'라는 생각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은 두세 명 정도 가로로 서면 차는 정도의 너비를 지니고 있었다. 오를 때는 오른쪽으로 줄지어서 올라갔다. 전망대를 두르고 펼쳐진 초콜릿힐은 장관이었다.



초반에는 손쉽게 올라갔는데, 중간부터 너무 높다는 생각에 무서워졌다. 바람도 너무 많이 불어서 머리도 미친 듯이 날렸다. 뒤에서 따라오던 남편이 내가 무서워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아래만 봐."라고 말하면서 날 앞질러서 내 앞으로 갔다. 난간을 오른손으로 잡은 채 남편의 발만 보고 올라갔더니 덜 무서웠다. 정상까지 올라간 전망대는 태양과 가까워서 눈이 부시게 뜨겁고 바람은 더 세차게 불었다.





자연의 신비였다. 200만 년 전 형성된 이 신기한 언덕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가슴 벅찼다. 초콜릿힐은 바닷속에 있는 땅이 올라오면서 산호층이 부식되어 형성된 언덕이다. 초콜릿 같은 갈색을 띠어서 키세스초콜릿의 커다란 버전이었다. 심지어 하나도 아닌 천 개가 넘는 초콜릿 힐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초콜릿 힐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아고로라는 거인은 아름다운 알루이아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알루이아가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할 거라는 소문을 듣고 납치를 하게 된다. 알루이아는 놀라서 식음을 전폐하다가 죽고 말았다. 아고로는 슬퍼서 계속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이 굳어져서 초콜릿 힐이 되었다고 한다.



세계 10대 불가사의에 꼽힌 초콜릿힐. 피라미드는 못 봤지만 그 비슷한 느낌을 주는 신기한 높은 동산, 초콜릿힐을 보게 되다니. 거인의 눈물은 방울방울 떨어져서 내 마음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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