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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Aug 31. 2023

필리핀에선 맥도날드보다는 졸리비

필리핀 보홀 식도락 2

졸리비




밤늦게 필리핀에 도착한 첫날, 가이드는 같은 여행사에서 같은 시간에 보홀공항에 도착한 전원을 버스에 태우고 숙소에 내려주었다. 첫 번째 숙소인 해난리조트로 가는 길에는 맥도날드와 졸리비가 있었다. "여기가 바로 졸리비예요." 가이드의 설명에 얼핏 '졸리비? 숙소 이름인가?'라고 생각하며 넘겼었다. 다양한 숙소에 사람들을 내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숙소 말고 다른 생각은 안 들었었다. 다음날, 남편이 졸리비가 맛있어서 가고 싶다는 말에 두 눈이 커져서 되물었다.


"졸리비가 식당 이름이었어요? 나는 숙소 이름인 줄 알았어요." 

남편은 내 말에 엄청 웃었다.


"졸리비를 어떻게 알고 있어요? 그렇게 유명한 식당이에요?"

"필리핀에 해외선교로 와본 적 있었어."




세상에나! 나는 남편이 필리핀에 두 번째로 왔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야 남편에 대해서 점점 더 알게 된다. 남편은 대학 때부터 10개가 넘는 동아리 활동에 단과대학 회장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 이 모든 것을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 남편을 만난 날, 우리는 둘 다 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특히나 '삼국지'이야기에 저녁까지 대화를 이어갔었다. 나는 남편이 운동도 잘하고 대외활동을 잘한다는 것을 몰랐었다. 첫인상은 조금 나처럼 내성적인 면도 많을 것 같았다. 결혼하고 나서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다가 남편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들을 발견해 내는 게 신기했다.





"오빠가 맛있게 먹었었다면, 나도 꼭 먹어보고 싶어요."

남편이 나를 알지 못했던 더 어리고 당찼던 시절, 맛있게 먹었다는 그 음식을 꼭 함께 먹어보고 싶었다. 남편의 과거에 더 파고들고 싶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과거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싶었다. '남편투어'를 하기로 했다. 남편을 너무 좋아해서 남편의 팬이 된 나는, 팬심으로 그의 과거 행적을 따라가는 게 기꺼웠다.



졸리비에 들어섰더니 키오스크 두 개 다 대기줄이 길다. 바로 옆에 있는 맥도날드가 한산한 거에 비해서 확실히 현지인들이 졸리비에 훨씬 더 많다는 게 느껴졌다. 키오스크 화면에서 음식사진을 보면서 메뉴를 골랐다. 나는 '스파게티'사진을 보는 순간 무조건 스파게티였다. 햄버거 가게에서 밥하고 스파게티를 파는 게 신기해서 먹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흔하면서도 맛있는 파인애플주스도 시켰다. 키오스크로 주문을 누르고, 주문표를 받아가서 결재는 직원에게 직접 현금으로 했다.





스파게티에는 미트볼이 잘게 들어있었고 토마토소스가 부족한 듯 살살 발라져었다. 중간중간 씹히는 미트볼과 소스와 조합이 꽤나 괜찮았다. 마치 집에서 미트볼스파게티를 너무 많이 해서 한 입 먹고 놔뒀는데 바깥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저녁에 집에 와서 "뭐 먹을 것 없나?"하고 찾다가 '유레카!' 하면서 발견한 그 스파게티 맛이었다.


처음 했을 때보다 시간 좀 지나고 배고파져서 먹으니까 더 맛있는 그런 맛! 

알 덴테로 조금 단단하게 덜 익혀서 면을 삶고 다음날 도시락으로 싸갔을 때의 조금 불은 듯 하지만 소스와 섞여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으면 기가 막히게 면에 소스가 착 달라붙어서 두 번째 전성기를 내뿜는 미트볼스파게티.

양이 많지 않아서 질릴틈도 없이 후루룹 다 먹었다.



이 전체가 282 페소였다



필리핀에서 머무는 마지막날, 따로 잡은 숙소로 가는 길에 졸리비에서 스파게티와 치킨을 테이크아웃했다.

"졸리비 파티예요."

라탄 테이블 위에 졸리비에서 산 음식을 세팅했다.

남편은 수영을 하다가 바로 의자에 앉았다.

서로 마주 보고, 졸리비를 먹는 시간.





이게 마지막 졸리비다. 이제 한국에 가면 졸리비를 먹지 못한다. 여기에서만 먹을 수 있기에 더 맛있게 느껴졌다. 졸리비 파티를 여는 동안, 숙소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결혼하고 쭉 아파트에 살던 우리가 수영장 딸린 단독주택에 이사 온 기분이었다. 수영하던 남편과 함께 해가 질 때까지 치킨과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시원한 산미구엘 맥주와 코카콜라의 캔을 깐다.



똑- 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탄산이 더위를 가시게 한다. 더운 여름에 파란 수영장을 바라보고, 파란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도 바라보면서 함께 저녁을 한다. 어느덧 사위는 어두워지고 숙소에는 밝은 조명이 탁탁탁-켜진다.





어린 당신이 졸리비를 먹는 것도 귀여웠을 거야.

어떻게 아냐고?

지금도 스파게티를 포크에 돌돌 말아서 입 안에 쏙 집어넣는 모습이 깜찍해.



당신이 없었더라면...

만약, 내가 여기에 혼자 있었더라면...

나는 스파게티를 먹다가 외로워서 왈칵 울어버릴 수도 있어.

당신을 만나기 전, 여행지에서 혼자 밥을 먹다가 문득 혼자인게 서러워진 적이 있었어.



나는 안다.

평범한 스파게티와 치킨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 건, 당신과 함께 있기 때문이라는 걸.

당신이 먹었기에, 당신과 함께 먹기에, 당신과 함께하기에 졸리비는 그 존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걸.





당신의 과거도 이젠 나와의 현재가 된다.

우리가 만나기 전, 서로의 기둥을 쌓아오다가 그게 토대가 되어서 이젠 함께 한 건물을 만들어간다. 날 만나기 전의 남편의 모습을 알아가는 게 재미있다. 남편이 필리핀에서 먹었던 졸리비를 함께 먹는 시간이 마치 과거에 되돌아갔다가 온 것처럼 꿈결 같다. 영화 장면처럼 어린 남편과 내가 빨리 감기 한 것처럼 급속도로 자라서 지금의 나이가 되었다.



서로 몰랐던 걸 알아가고,

혼자 했던 경험을 함께 하면서

이렇게 우리 둘은 서로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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