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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Aug 17. 2023

보홀에서 인생 첫 스노클링

몸에 힘 빼기

버진아일랜드에서의 자유시간이 끝이 나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은 낮은 무게의 모래주머니를 찬 듯 무거워졌다. 버진아일랜드에서 이 바다를 조금이라도 오래 느끼고 싶어서 천천히 배로 향했다. 어쩌면 바다에서 걷는 수압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배를 타고 스노클링을 하러 떠났다. 태풍 때문에 그나마 파도가 잔잔하고 스노클링 하기 좋은 곳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가이드가 스노클링 마스크를 나눠주면서 사용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줬다.


"앞 머리를 다 올려서 마스크에 머리카락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세요. 그리고 마스크를 써요. 숨을 쉬다가 물이 들어간 경우에는 툭툭-하고 숨을 밖으로 내뱉으세요. 아니면 밖으로 나오시면 돼요."


배에 탄 인원 중 반절은 개인장비를 가져왔었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장비는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였고, 개인용이기 때문에 위생적일 것 같았다. 반면에 가이드가 나눠주는 장비는 얼굴의 반절만 가리는 마스크였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보다는 이게 더 좋아요."

가이드 말로는 눈과 코만 가리는 마스크가 더 사용하기 좋다고 했다.


"자 이제 침을 마스크에 발라주세요. 그러고 나서 바닷물로 씻어내면 코팅작업이 완료돼요."


다들 마스크에 본인의 침을 뱉은 다음에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꼼꼼히 문질러서 코팅이 잘 되게 했다. 그러고 나서 마스크를 배의 맨 앞으로 전달해서 현지인 가이드가 바닷물에 한 번씩 담가서 헹궈서 돌려줬다. 머리를 올백으로 묶은 후 마스크를 썼다.

'진짜로 바닷물이 안 들어갈까?'

숨을 쉬다가 코나 입으로 물이 들어갈까 봐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미리 실습해 본 것도 아니어서 처음 하는 스노클링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진하게 보이는 곳은 심해예요. 그곳은 위험하니까 가지 마세요."


저 멀리 바다를 보니 정말로 정박된 배 주변은 맑은 하늘색인데 저 멀리 있는 바다는 진남색의 어두운 색을 띠고 있었다. 심해인지 모르고 들어가 버릴까 봐 무서웠다. 나중에 난 어차피 심해는커녕 배 주변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얀색으로 페인트칠된 배는 사다리 부분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최대한 늦게 내려갔다. 내려가기 전에 가이드가 내 구명조끼를 보고서 "더 세게 묶어야 해요."라고 해서 조끼를 최대한으로 몸에 딱 맞게 입고 나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사다리 근처에서 사다리를 한 손으로 잡고 주저하고 있었다. 도저히 이 깊은 바닷속으로 몸을 던질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서 사다리를 잡은 손을 놓자마자 다시 배 위로 올라가고 싶어졌다. 파도가 너무 심해서 얼굴 위로 넘실대며 철썩철썩-내 뺨을 때리고 있었다. 수영을 아예 못하는 나는 바닥이 안 짚어진다는 게 무서웠다. 배 근처에서 한참을 파도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어푸어푸-하고 있었다. 사다리에서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는 현지인 가이드가 나를 보며 계속해서 외쳤다.  "Relax!" 다섯 번쯤 릴랙스를 듣다 보니 조금씩 정말로 내 몸이 이 파도에 적응을 했다. 그리고 현지인 가이드가 와서 내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너무 안심이 되었다.



처음에는 손을 잡아주고, 그다음에는 구명조끼를 잡으라고 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그분은 구명조끼도 없이 그 파도 속에서도 헤엄을 매우 잘 쳤다. 나와 그분을 연결해 주는 구명조끼를 생명조끼인 양 꽉 잡은 채 머리를 바닷물 속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완벽히 바깥세상과 차단되었다.



그야말로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바깥은 그렇게 파도가 요동치는데 물속은 꽤나 잔잔했다. 물의 흐름과 부드럽게 수영하는 물고기들이 보였다. 노란색과 검은색의 줄무늬를 지닌 물고기들이 많이 보였다. 바닥은 산호초가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다. 바닷속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단언컨대, 이렇게 바다와 가까워진 경험은 처음이었다.





-하아. 하아

조용한 바닷속에서는 내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내가 꽤나 숨을 거칠게 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땅 위에서 숨 쉬는 것처럼 천천히 호흡을 조절했다. 비로소 내 숨소리도 거슬리지 않고 편안하게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물고기처럼 놀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발을 움직여도 수영을 못하는 나는 옆에서 나를 이끌어주는 현지인가이드가 가는 데로 움직이고 있긴 했다. 하지만 오로지 물속에 나 혼자 있고, 또 그게 마음이 편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 고개를 들어서 수면 위로 올라가면 파도가 너무 심해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밖은 이렇게 요동치는데 물속은 잔잔한 게 신기했다. 물론 잔잔하긴 하지만 파도가 심한 상태라는 건 몸에서 느껴졌다.



마음의 문제였다. 두려움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물속으로 들어갔더니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눈 속에 담을 수 있었다. 살아서 움직이는 물고기들을 바라보고, 또 내 몸이 바닷속의 작은 입자가 된 것처럼 3인칭 관찰자 시점, 또는 그들의 이웃이 된 것처럼 가까이에서 바닷속 생물들을 볼 수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바닷속을 볼 수 있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매분, 매초가 시간이 아까워서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바닷속을 바라봤다.





거친 파도에 이리저리 휘둘릴 때,

힘을 빼야겠다.

너무 무리하지도 않고, 너무 겁내지도 않아야겠다.

몸에 힘을 빼고 바라보면, 긴장할 때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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