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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Aug 16. 2023

바다에서 자라는 나무

웰컴 투 버진아일랜드

버진아일랜드를 중심으로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버진아일랜드에 내리니 바다 한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었고 섬 주변은 수면이 매우 낮아서 바닷물이 무릎 아래정도밖에 닿지 않았다. 남편의 손을 잡고 먼저 'WELCOME TO VIRGIN ISLAND'라고 적힌 곳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우리도 인증샷을 찍으려고 기다렸다. 사진을 두세장 찍고 나서, 섬의 바깥쪽으로 나갔다. 이렇게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바다의 한가운데 이 좁은 섬에 사람들이 다 몰려있는 게 재미있었다.



남편과 손을 잡고 바다 한가운데 파릇파릇하게 솟아난 맹그로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 한가운데에 솟아난 나무가 이색적이었다. 이곳에 오지 못했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이 신기했다. 짠 바닷물을 먹고 쑥쑥 자라난 맹그로브의 연두색 이파리는 봄새싹처럼 생기가 넘쳤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날개를 펼치기 직전의 초록색 나비 같기도 하고 하트모양 같기도 했다. 평상시 보지 못했던 광경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머리가 깨지고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두 그루의 맹그로브 주변에는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버진아일랜드 표지 아래 사진 찍는 사람들보단 덜 했다. 맹그로브 주변은 수면이 낮아서 앉아있으면 '여긴 땅이었어야 했는데.' 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육지에서 살던 나와 나무를 포클레인으로 퍼서 덜렁 바다에 옮겨놓은 것 같았다. 여기에 있는 나 자신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하늘이 바다에 있고, 바다는 하늘에 있는 듯했다. 천지가 뒤바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 뒤로는 나무가 있기 때문에 육지여야 하는데 나는 바다에 있다. 내 눈앞에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였고, 내 몸도 연한 물빛에 잠겨있었다.



남편과 함께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는데 한 필리핀 학생이 다가왔다.

"제가 두 분을 사진 찍어주고 싶어요."

"정말요? 고마워요."

필리핀 여자애들이 나무 근처에서 한참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우리 부부를 보고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호의를 보였다.



그 애의 친구가 말했다.

"얘 진짜 사진 잘 찍어요."

"여기로 오세요. 더 뒤로 가세요."

그 애는 사진이 잘 나올만한 포토스팟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몇 번 사진을 찍다가, 다시 말했다.

"위에 입은 옷을 벗고, 수영복만 입어봐요. 부끄러워하지 마요. 그 편이 더 예쁠 것 같아요."

원피스처럼 입었던 남편의 농구복을 벗자 수영복이 나왔다. 수영복만 입자 "아름다워요."라면서 사진을 계속해서 찍었다. 전문가 못지않았다.



고마운 마음에 팁을 주려고 했는데 한사코 사양을 했다.

"받아요. 제 여동생 같아서 그래요. 친구들하고 같이 카페 가서 커피 마시고 그래요. 사진이 너무 맘에 들어요. 예쁘게 찍어줘서 고마워요."

"그러면 받을게요. 함께 맛있는 거 마실게요. 고마워요."



인생샷을 찍어줬던 필리핀 학생



투명하고 맑은 바다는 안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남편은 물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아주 아름다운 파란색 불가사리를 꺼냈다. 그 불가사리가 귀한 보물로 보였다. 필리핀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진주가 발견되었었다고 한다. 내가 필리핀에서 찾은 보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불가사리. 하늘에서 빛나는 별처럼 바다에서 빛나고 있던 별이었다.



옆에서 놀고 있던 필리핀 아이에게 그 불가사리를 건넸다. 그 아이는 "Thank you."라고 하면서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섬을 떠나기 전까지도 불가사리를 가지고 놀았다. 버진아일랜드에서의 자유시간이 끝나고 함께 투어 하는 사람들이 배를 탔을 때, 불가사리를 찾았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양한 불가사리를 구경했다. 나는 바닷속을 보기보다는 시야를 위로 들어서 바다 끝과, 섬과, 바다에 있는 나무 위주로 바라봤기 때문에 불가사리를 찾지는 못했다.



불가사리는 찾는 사람 눈에만 보이나 보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확실한 건, 그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취해있었다.

시간이 멈추길 바랄 정도로 투명한 바다에 잠겨서 육지와 바다사이 그 중간에 걸쳐있었다.

인간도 아니고 인어도 아닌 인어공주처럼, 육지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그 중간쯤.

그곳에서 신비로운 분위기에 흠뻑 취해서 여느 때보다도 더 밝은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집에서 버진아일랜드에서 찍은 동영상을 봤다.

"마미~!!"

꺄르르르르~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신나는 웃음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려있었다.

다시 봐도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광경이다.



우린 좁은 공간에 같이 있었지만 다들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버진아일랜드 섬에서 바닷속에서 불가사리를 최대한 많이 찾아냈다. 누군가는 버진아일랜드 섬, 곧 육지 위에서만 머무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섬 근처에서 수영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섬 근처에 앉아있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물 위에서 자라는 나무 근처에만 있기도 했다.



바닷물에 잠겨서 숨기도 하고, 수줍게 모래톱을 드러내기도 하는 미스터리한 버진아일랜드.

신비롭고, 환상적인 모험에 벅찬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다.


미국의 버진아일랜드가 아닌, 보홀의 버진아일랜드



'바다에서 노는 투어가 그렇게 재밌나?' 하는 나의 합리적 의심은 결국 확신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호핑투어 "미쳤다!" 수영도 못하는 내가 이렇게 즐겁게 물에서 놀게 될 줄은 몰랐다.

평생 살면서 가장 즐거웠던 바다였다.



호핑투어(Hopping tour)는 섬과 섬 사이를 다니면서 다양한 체험을 하는 여행을 의미한다. 'hop'이 '깡충 뛰다'는 의미가 있어서 바다를 건너서 섬을 깡충깡충 뛰면서 스노클링을 비롯한 다양한 아쿠아액티비티를 즐기는 걸 의미한다. 필리핀은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호핑투어 상품이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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