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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Aug 18. 2023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

불가사리. 파도. 용기

-툭툭



정신없이 바닷속을 바라보고 있는데 현지인 가이드가 내 팔을 툭툭치고 있었다. 바닷속에서 꺼낸 불가사리를 건네주었다. 그때까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서 멍 때리며 바다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오른팔로 구명조끼를 잡고 있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바닷속에서 보는 불가사리는 참 아름다웠다.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그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한 손으로 불가사리를 잡고 한참 바라보다가 내가 구명조끼를 잡던 손을 뗐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구명조끼를 잡았다. 구명조끼 없이도 물속에서 편안하게 떠 있었는데, 구명조끼를 안 잡고 있다고 인지한 순간 불안해졌었다. '난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 난 안전해.' 안전한데도 불안해했던 내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왼손으로는 불가사리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현지인 가이드가 잡고 있는 구명조끼를 잡은 채로 스노클링을 이어갔다.





고개를 들자 현지인 가이드가 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배 안에는 3분의 1 정도 되는 사람들이 스노클링을 끝내고 쉬고 있었다. 배에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대답했다. 분명, 스노클링을 하는 동안에는 편안하고 즐거웠었다. 내 몸 전체를 뒤흔드는 이 파도와, 배 안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이만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배를 탈 수 있는 파란색 사다리 쪽으로 현지인 가이드가 날 이끌었다. 사다리 근처에서 배의 탑승을 도와주는 다른 가이드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다시 파도가 심하게 치기 시작했다. 손을 내밀었지만 사다리와의 거리가 멀어져서 사다리를 타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나중에 호핑투어가 끝나고 다리에 멍이 많이 들어있었는데, 아마 사다리에 부딪쳐서 생긴 멍 같다.





배 위에 올라서자 다리에 힘이 풀리며 거의 넘어질뻔했다. 모든 힘을 다해서 파도에 저항했던 처음과 사다리를 타려고 노력했던 마지막에 많은 힘을 쓴 것 같았다. 배에 타니 파도가 심했던 듯 배 안은 바닷물이 많이 들어와 있었고, 가방 전체가 젖어있었다. 배에 오르니 멀미를 하는 것 같아서 남은 멀미약 하나를 생수와 함께 삼켰다. 나보다 먼저 배에 오른 사람들도 힘들어 보였다. 한 명은 바다에 갔다가 체온이 많이 떨어져서 비치타월을 겹겹이 두르고 있었고, 또 한 명은 빨리 육지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내 옆에 앉으셨던 분은 아침에 멀미약을 두 알이나 먹었는데도 멀미가 너무 심하다고 했다. 마침 나한테 멀미약 하나가 남아서 하나 드리려고 했는데 그분이 복용한 멀미약은 하루에 2개까지만 먹어야 돼서 추가복용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토할 것 같다고 해서 가방에서 젖은 옷을 보관하기 위해서 챙긴 비닐봉지를 드렸다. 함께 호핑투어를 온 사람들 중 3분의 1은 아직도 바다에 있었다.



"구명조끼를 벗으니까, 더 좋았어요."

다이빙 자격증이 있다는 분이 배에 타면서 말했다. 구명조끼를 벗고 나서야, 잠수를 해서 바다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나도 언젠가, 수영도 하고 잠수도 하고 다이빙도 할 수 있을까? 스노클링을 시작으로 조금씩 욕심을 내 본다. '더 가까이에서 물고기를 보고 싶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을 때,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말했다.

"아까 남편분 죽을 뻔했어요. 들어가자마자 물 먹어서 두 명이 붙어서 봐줬었어요."

"정말요? 남편은 수영할 수 있어서 잘할 줄 알았어요."

"남편분이 아주 용기 있어요. 지금 계속하는 걸 봐요. 처음에 물에 겁먹으면 못 들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수영을 아예 못하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바다에 들어가서 구명조끼에 의지해서 둥둥 떠다니며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서 스노클링을 했다. 수영을 할 수 있는 남편은 수영하듯이 스노클링을 하려다가 큰코다친 것 같았다. 남편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 우리 둘 다 삐그덕 대면서 시작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겁쟁이인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배에 있기보단 바다로 나간 것. 그것 자체로 스스로를 칭찬한다. 남편은 늦게까지 스노클링을 하다가 상기된 표정으로 배에 올라탔다. 몸은 지쳤지만 다들 무언가를 얻어간 듯 얼굴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호핑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에서 가슴 벅차오르는 감사함이 계속해서 치솟았다. 태풍이 지나간 후 오게 되어서 적당히 흐리다가 더울만하면 시원한 비가 가볍게 쏟아져서 열기를 낮춰주었다. 태풍이 오고 있어서 호핑투어를 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배테랑 선장님을 만나서 잔잔한 바다에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을 볼 수가 있었다. 할 수 없는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조금씩 장애물들이 치워지면서 더 값진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두 눈으로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담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감사한 마음은 저 넓은 바다처럼 자꾸 확장이 되었다. "왜 내가 유산을 해야 해." 원망할 대상도 없었지만, 원망스러웠던 모난 생각이 사라졌다. 임신이 유지되지 않아서 아쉽지만, 덕분에 해외여행을 왔다. 아이가 없어서 스노클링도 맘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날 끌고 여기까지 와준 남편한테도 고마웠다. '당신은 나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었구나.' 남편의 사랑이 가슴깊이 와닿아서 뭉클한 행복감이 차올랐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니 스노클링을 즐기게 되었다.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면 더 잘할 수 있다.  

내게 필요했던 건 스킬이 아닌, 한 발짝 내딛는 용기였다.

한 발자국 내디디니, 다음 스텝부터는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

심해가 보이는 바다에도 뛰어들었던 용기를 낸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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