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바람, 해와 달을 언제나 마주한다
Il fait beau ce matin.
날 좋은 아침이면 밝은 햇살이 수채화 물감 번지듯 사르르 창문을 타고 들어와 침대 왼쪽 벽면을 붉게 물들이며 살며시 아침 인사를 건넨다.
그 따뜻하고 뭉근한 붉은빛의 농도가 조금씩 달라지면 고요히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새로운 하루가 다시 밝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 굳이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없어도, 또 굳이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기상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자연의 흐름에 따라 대략 일정하다.
붉은빛에 간질간질 수줍게 일렁이는 나뭇잎의 그림자. 가까이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과 오감을 깨우는 신선한 아침 공기. 창문을 활짝 열어 빛과 나무와 바람 그리고 새들의 정겨운 아침 인사를 받으며 폐부 깊숙이 신선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하타가 나타나 내 곁에서 함께 창밖을 바라보는데 세상 모든 것이 흥미로운 듯 양쪽 귀와 수염을 쫑긋쫑긋 이리저리 움직이며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 모습이 꽤나 재미있어 하타 얼굴을 한참 동안 관찰하기도 하는데 가끔은 내가 아는 하타가 아닌 듯 낯설고 신기할 때가 있다.
3년 전, 길 고양이 센터에서 처음 우리 집에 온 그날처럼 오늘도 내가 하타를 새로이 만난 날이다.
낮에는 보통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창가 옆에 자리한 너른 책상에서 하루를 보낸다.
대부분의 시간은 전공서적을 보고 책을 읽거나 프랑스어 공부를 하며 보내는데 그 시간 동안 하타는 햇살 아래 늘어져라 낮잠을 잔다. 가끔은 곤히 자는 하타 옆에 누워 함께 단잠을 즐기기도 하는데 부드러운 검은 털의 보송보송한 감촉과 따스한 체온이 좋아 하타가 깰 때까지 자세를 바꾸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기도 한다.
휴식 시간에는 창문으로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곤 하는데 매일 마주하는 풍경이지만 가끔은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양이처럼 온 세상이 신기하고 새로운 것투성이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또 매 순간 흩어지고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 시선을 나긋이 옮겨보거나 계절의 변화에 색을 달리하기 시작한 나무들을 보며 어김없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새삼 감탄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분주히 하늘을 나는 여러 종류의 새들, 주차장을 어슬렁 거리는 이웃집 고양이 미셀, 옆집 지붕에 앉아 오래 머물다 가곤 하는 까마귀 그리고 누군가 정원에 널어놓은 빨래들이 따스한 햇살 아래 바람에 살랑인다.
그렇게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면 짧은 휴식 시간도 금세 지나간다. 한낮에 불어오는 바람은 계절이나 온도와 관계없이 마치 반가운 친구처럼 왠지 모르게 부드럽고 상냥하다. 그래서 추운 계절에도 늘 창문을 살짝 열어두는지도 모르겠다.
저녁이 되어 하루가 저물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사랑하는 남편과 하타와 함께 셋이 옹기종기 창가에 앉아 물들어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곤 한다.
해가 자취를 감추고 노을이 짙은 푸른색으로 변해가면 밤하늘에 달과 별이 모습을 드러내어 빛나고 그 맑고 푸른빛이 좋아 눈을 감으면 멀리서 불어오는 향긋한 밤공기가 은은한 달빛과 함께 어우러져 더욱 투명하게 느껴진다.
가끔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뜨거나 달빛이 유달리 환한 날이면 우리말로 월장석이라 부르는 문스톤을 창가에 내놓고 잔다. 그럼 밤새 맑은 달빛에 깨끗이 정화되고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찰 것이다.
이곳에서 난 이방인이고 누구도 만나지 않는 듯 대부분의 시간을 조용히 홀로 있지만 어느 누구라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는 빛과 바람, 해와 달을 언제나 이렇게 마주한다. 그래서 난 혼자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