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무대, 한가운데 커다란 식탁이 놓여있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식탁 위에
걸터앉아있다. 불이 켜지면 왼쪽 무대에서 한 여인 등장. 하늘하늘 춤을 추며 들어
와 식탁에 살포시 기댄다. 먼저 앉아있던 사람들 한둘이 힐끗 쳐다보고는 그대로
앉아있다.
여인: 나보다 먼저 와 계셨네.
사내1: .......
여인: 흠흠... 당신한테서 고비사막의 낙타 냄새가 나네요.
사내1: ?...... (흠칫 놀란다)
여인: 타는 태양아래 목마름으로 터덜터덜 댔을 당신이 보여요. 그래서 당신 발
목이 풀려있군요.
사내 1: (자기 발을 쳐다보더니 여인을 다시 한번 힐끔 쳐다본다)
여인, 그 옆의 사내에게 다가간다.
여인: 여기 까만 표정의 당신은 누구실까.
사내2: (흠칫하며 놀란다)........
여인: 가만.... 당신에게선 고사리 냄새가 나. 당신의 이 까만 살결은 공룡에게 밟
힌 고사리가 빙하 속에 잠들다가 광부의 땀과 주름으로 퍼 올려진 숯의 피부겠지.
사내2: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잠자코 있다).......
여인: 기울어진 당신 눈동자에서 빛이 나고 있어요.
여인 그 옆에 수그리고 앉아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손끝으로 툭 친다.
여인: 당신은 옛날 그 여인이 들먹이던 어깨가 허공에 뱉은 한숨이구나. 쑥대머
리로 님을 찾던 춘향이의 설움이던가, 님을 잃고 잠 못 이루는 여인네의 한이던가.
여자2: (그냥 머리를 떨구고 있다.).......
여인: 왜 노랫말에도 있잖아. (민요, 노랫가락을 부른다) 사랑도 거짓말이요, 님
이 날 위함도 또 거짓말, 꿈에 와서 보인다 하니 그것도 역시 못 믿겠구려. 나같이
잠 못 이루면 꿈인들 어이 꿀 수 있나.
여자2: (고개를 들어 여인을 한번 쳐다본다. 그리고 다신 고개를 떨군다)
여인은 하늘하늘한 몸짓으로 식탁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가면서 어깨
나 등을 살짝 건드린다.
여인: 당신은 어느 모텔 침대보가 털어낸 흔들리던 속삭임, 당신은 어느 노숙자
의 눈이 뿜어낸 허기, 당신은 젊은이의 뒤꿈치에서 터져 나온 꿈......
그때 하늘에서 한 친구가 내려앉는다.
여인: 어, 당신은 수억의 기억과 꿈을 안은 어제란 놈이구먼. (여인 무대를 한 바
퀴 크게 돌며) 아. 내일이면 동지가 될 하루가 저녁처럼 시들어가네.
이때 우측 무대에서 건장한 사내가 들어와 식탁 의자에 앉는다. 밥을 먹는 사내
를 여인 한참 쳐다본다.
여인: (독백) 우주를 품은 그가 밥을 먹는다. 우리를 비벼 먹는다. 또 하나의 먼
지가 자란다. 언젠가 내 옆에 와 앉을 먼지. 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