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구름이 되었다
- 나를 찾아서/ 소설 같은
수요일 오후, 그는 카페 앞에 섰다.
보통 때보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밖은 아직 뜨거운 여름이었지만 상선은 덥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더 뜨거웠던 지난주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카페 한구석으로 자리해 노트북을 켰다. 열기가 식기 전에 정리해두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지난주 7박 8일의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첫 경험이었다. 그것도 묵언으로 하는 수행을 친한 친구 무이와 같이 참여했다. 들어가면서 첫날부터 핸드폰과 소지품을 맡기고 묵언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주위 동료들은 둘이 친구라는 것을 끝까지 몰랐다. 상선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스스로 노장사상을 연구하면서도 이 시대에 필요한 노장은 과연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들곤 했었다. 작게는 조직에서의 갈등부터 크게는 사회 전역에 널린 민초들의 고통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전해줄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율곡과 퇴계 선생이 있었다. 작금에 이르러서도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 함석헌 선생이나 이영희 선생 등의 일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상선은 생각했다. 남에게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자는 자신부터 깨달은 자일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어찌 깨달아야 한단 말인가. 부처나 예수가 깨달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해서 깨달았다는 말은 없다.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에서도 그 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출생과 죽음은 타의적이지만 자신의 삶만큼은 주도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상선은 자신과의 대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들어간 것이 달마산 미황사의 참사람의 향기 프로그램이다.
우선 새벽 4시 아침 예불부터 시작하여 저녁공양 후 마지막 좌선까지 7~8시간 동안 앉은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중간중간 운동장을 쓸고 풀을 뽑는 울력 시간 외 청소시간 등 힘든 여정이다. 뭐니 뭐니 해도 한 시간에 50분씩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는 시간이 괴로웠다. 몸이 많이 굳은 상선은 첫날은 반가부좌 자세도 20분을 넘기기 힘들었다. 몇 번씩 몸을 비틀었다 꼬았다 하면서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래도 40분 채우기 힘들었다. 나머지 시간은 스스로 일어나 서있기를 몇 번이나 했다. 하도 엉덩이가 저리던 두 번째 날 점심시간이었다. 절 뒤쪽에 있는 울퉁불퉁한 바위에 앉아 엉덩이를 비비기 시작했다. 신경을 무디게 할 작정이었다. 엉덩이의 신경이 무뎌지고 그 신경을 두뇌까지 보내지 않으면 아프다는 통증을 못 느낄 것 아닌가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하고 나니 오후 좌선은 덜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니 마찬가지였다. 참아내느라 방석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또한 가부좌에다가 어깨는 곧장 편 자세여야 한다. 한 시간을 어깨를 곧게 펴있기란 상선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것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빨랫줄에 어깨를 걸어놓은 듯이 곧되 힘을 빼는 자세. 상선은 마음먹었다. 젖어있는 자신을 말리는 시간이라고. 습관에, 주관에, 욕심에 젖어있는 자신을 이번 기회에 뽀송뽀송하게 말려 보리라고. 절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의 글씨가 들어온다. 암실아손향외간(暗室兒孫向外看 : 미혹한 중생은 바깥만 내다보네). 컴컴한 내 안에서 밖을 보기 바빴다. 밖이 환하니 거기서 자신을 찾으려 했다.
이제는 안을 들여다볼 때이다. 섬 안에 있으면 섬이 아름다운지 모른다고 했다. 밖으로 나와봐야 한다. 무수한 선사들이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들의 화두인 이 뭐꼬?로 그들은 과연 답을 찾았을까. 답은 없는데 그저 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깨달았을까. 화두는 고양이가 쥐를 잡듯,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 간절해야 한다 했다. 그러나 그 간절함, 절실함이란 것도 잊어야 되는 것 아닌가.
점심공양 후 쉬는 시간, 밖의 대웅전 앞에는 도반 하나가 호미를 씻고 있다. 저 양반은 누구보다 먼저 연장을 챙기고 누구보다 나중까지 뒤 마무리를 하는 친구다. 시키지 않아도 저리 행동하는 친구가 이미 깨달은 친구 아닌가. 상선은 나름대로 매시간 화두를 잡아 좌선에 집중했다. 어떤 시간은 그동안 살면서 잘못한 점을 죽 펼쳐보았다. 또 다른 시간은 즐거웠던 순간만 모아봤다. 사과해야 할 사람들만 분류해 보기도 했다.
참선 5일째 나름대로 한 두 가지 생각이 모아진다. 첫째, 내가 졌다. 상선은 그동안 이기려는 마음이 가득했던 자신을 보았다. 주변에 못나 보이지만 곰곰이 뜯어보니 다 나보다 잘 난 사람이었다. 내가 제일 부족하다. 그들에게 미안했다. 두 번째는 집착을 말라. 다른 사람에게서 그림자를 떼어내려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말라는 것, 말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 스스로 깨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단점이 있으니 화내지 말고 실망하지 말라는 것. 파리를 잡으려고 온 동네를 들쑤시지 말라는 것이다.
참선 마지막 날, 모든 도반들이 일주일의 고행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도반들 앞엔 모기장이 달린 창문이 하나씩 있었다. 수행스님이 한 명씩 각자의 등 뒤로 가서 죽비를 내리친다. 깨우쳤냐는 물음이다. 그리고 창문의 모기장을 걷어 올린다. 그때 상선은 보았다. 저 멀리서 올라오는 구름 한 조각을. 그저 인간은 한 조각구름이 나고 없어지는 것과 같거늘. 그런 구름 한 조각이 상선 앞으로 다가오더니 이내 오른편으로 사라져 올라간다.
그 순간 상선의 머리를 무언가 내리쳤다. 나는 그동안 얼음이었다. 깨지기 두려워하는 얼음이었다. 내가 가진 것, 나를 알아달라는 상, 내가 얼마큼 공부했다는 마음, 그 모든 것이 나를 얼음으로 만들고 있었다. 늘 변하는 물의 입장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얼음이 곧 물이 되고 다시 구름이 된다는 것을 잊었었다. 얼음氷 물水 , 빙수. 상선은 자기가 가끔 팥빙수를 즐겨 먹으면서도 그 의미를 이제야 깨닫는다.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 현자나 성자들이 간 길이었다. 누구나 내려와 마실 수 있는, 그런 물. 상선은 왜 자기 이름이 상선인지 문득 생각했다. 상선약수,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자기 이름에 이미 답이 숨어 있었다. 그동안 자신을 멀리서 찾았다.
상선은 조용히 노트북을 덮었다. 창밖은 여전히 햇살이 강하다. 나가자. 나가서 물이 되자. 아니 구름이 되자. 그리고 이 뜨거운 사막을 건너자. 물이 사막을 건너는 방법은 구름이 되는 것이라 했지. 상선의 몸이 가벼워졌다. 정말로 구름이 되는 기분이었다. 저만치 발아래로 카페가 보인다. 그가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