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추도하라
“자. 지금부터 나는 죽은 거야.”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제 망자에 대해 한 마디씩 돌아가면서 얘기를 하는 것이다. 룰도 정했다.
“망자의 단점 두 개 정도에 장점 한개 꼴로 말하되, 망자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망자의 추도식에 와 있는 것이다. 대신 살아서 그 추도의 말을 듣게 해주는 자리일 뿐이다.”
다들 신이 났다.
자신에게 돌아올 얘기는 어떤 것일까하는 호기심에 눈이 반짝인다. 그리고 상대의 장·단점을 생각해 내느라 머리가 바삐 움직인다. 다섯 명이서 얘기가 돌아간다.
“그 친구가 그리 빨리 갈 줄은 몰랐어.”
서두를 꺼내니 모두 낄낄대며 웃는다. 망자가 된 친구도 허탈한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 친구 사람은 좋아. 그런데 흥분을 잘하고 주사가 좀 심했지.” 망자가 된 친구가 무어라 변명을 하려 하자 친구들이 가로막는다. “너 지금 죽은 몸이야.” 망자는 발언권이 없다는 규칙을 상기한 친구가 쓱 물러난다.
“그 친구는 열심히 살긴 하는데 손에 쥔 건 별로 없었어. 아쉬워.”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 친구 참 점잖았어. 그런데 생활력이 없는 게 좀 흠이었지.” 대상이 되는 친구에게 고개들이 쏠린다. 그 친구는 ‘틀린 말은 아니네’ 하는 눈치로 받아들인다. “아. 그 친구가 없어서 하는 얘긴데 그 친구는 대기업병에 걸렸었어. 그릇이 큰 것은 좋아. 그런데 퇴사한 뒤에도 자기가 계속 대기업에 다니는 줄 알고 행세를 했지.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는 소리다.
“그 친구 참 안됐어. 조직에서 오직 충성스럽게 일생을 바쳤어도 그렇게 잘릴 줄 누가 알았어. 술 인심은 좋았지.” ‘맞아, 맞아 ’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망자가 된 친구는 죽을 지경이다. 무어라 한마디 하고 싶은데 규칙이 있으니 나서지도 못하고 얼굴만 벌겋게 된다. 술기운으로 보여 다행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과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단점은 무엇이고 그들에게 남겨진 내 인상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옆의 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친구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아주 독특했어. 여행시의 스크래치 이론이라던가 삶에서의 잔디 이론 등 나름대로의 주장과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어.” 내가 나섰다. “아니 단점 위주로.” 앞의 친구가 말렸다. 망자는 입 다물라는 표시다.
“그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죄 하고 죽었으니 원 없을 거야.” “보통들 생각만 하고 실천을 옮기기 어려운데 저 친구는 나이키야. 저스트 두 잇. 누가 무슨 계획을 세웠다고 자랑하면, 그 자랑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지. 그 계획을 실천한 지 몇 달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 “늘 배우려는 열정이 가득한 친구였지. 수십 가지 관심사를 가지고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았던 놈이야.”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쯤 되면 단점이 터져 나올 때가 됐는데.’
“그 친구 가서 얘긴데, 막내라서 위아래 없이 치받는 게 문제야.”
‘그래, 드디어 나올게 나왔구나.’ 숨을 죽이기 시작했다.
“막내는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라는 게 문제야. 꼭 남이 알아주길 바라고 남에게 인정받는 걸 좋아하지. 남이 자기를 싫어하면 안 되는 거야.” 가로 늦게 심리상담을 배운 친구가 거품을 물었다. “남들이 ‘아니야’ 하면 못 견디고 슬퍼해 하는 거지.” 나는 생각해 봤다. ‘그랬던가? 내가? 그래서 내가 이 나이에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무엇을 열심히 올리고 자랑질 하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일리가 있는 해석이었다.
또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 그 친구 다재다능하긴 한데 정신이 없어. 너무 왔다 갔다, 진득하지가 못해.” 서로 얼굴을 보며 낄낄 웃는다. 나도 덩달아 웃는 얼굴을 할 수밖에.
한 친구가 내 얼굴을 살피더니 안 돼 보였는지 “그래도 그 친구는 정이 많았어. 후배나 동생 뻘 되는 친구들을 아끼고 이끌어 준 건 있어. 아마 막내라서 동생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어.” 다른 친구가 말을 받는다. “맞아. 그리고 후배들에게 보여줘. 자신의 행동을, 자기 스타일을, 말로 하지 않고.” 한 친구가 매듭 말 비슷하게 한다. “잘 살다 갔으니 다만 고인의 명복을 빌 뿐입니다.”
서로 얼굴을 돌아보며 한 잔씩 들이킨다. 속으로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 크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 것 아냐? 그저 한 두 마디 추억으로 정리하고 마는 것 아닌가. 다시 말하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 그렇게 신경 쓸 것이 없다는 얘기도 된다는 뜻 아닌가. 나도 단점이 있듯이 당신도 그 정도 단점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뜻 아닌가.’
술잔이 돌아가고 마음이 제법 안정되는가 싶었는데 한 친구가 슬며시 말을 꺼낸다. 고 이외수 작가와 친했던 친구이다.
“지난번에 외수형 빈소에 갔었지. 고인의 앞에서는 다들 옛 아름다웠던 시절 정담을 하고 덕담만 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내가 외수형의 뒷담화를 꺼냈더니 다들 귀들이 번쩍하며 몰려드는 거 있지.”
순간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추도게임 즉, 망자놀이를 하자고 한 것은 나였다. 죽어서 듣느니 옆에 앉혀놓고 살아서 한마디 하는 게 낫지 않나 싶어서였다. 그러면 진솔한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다. 비록 말을 못 하는 망자라고 가정하더라도 해당되는 상대 앞에서는 최대한 덕담을 해 주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진정 진솔한 것은 상대가 없는 뒷담화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갑자기 양자역학이 생각났다.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가진 것이 빛이다. 그러나 누가 보지 않을 땐 점잖게 파동으로 흐르다가 관찰자가 없으면 입자의 성질로 돌아간다. 누가 보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물질의 행태가 달라지는데 하물며 인간의 모습이랴. 추모게임에서 나온 내 얘기를 종합적으로 보아 그리 나쁜 얘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안도를 하고 있던 내가 갑자기 기분이 묘해지기 시작한다. 진정 내 모습은 내 뒤에서 뒷담화를 통해서 나온다는 사실에 뒷머리가 서늘해진다.
그러다 순간 고개를 젓는다.
‘아니 이것도 저놈이 얘기 한 것처럼 막내라서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행태의 하나가 아닐까. 기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 가면 되지.’
친구들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마지막 술잔을 기분좋게 들이킨다.
‘하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