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림은 무언가 특별해요. 다른 사람하고는 달라요.”
유화반에서 가끔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 판소리반에서는 목청이 좋다 하고, 현대서예반에서는 독창적이라 하고, 시 창작반에서는 색깔이 있다 하고, 연극 극단에서는 발음이 좋다 하고, 피리반에서는 그 곡을 어떻게 악보 없이 외워서 하느냐고, 여행모임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기획을 해서 실행에 옮기냐는 얘기를 듣는다. 오랜만에 동창모임에 나가면 티브이에서 가끔 본다고 반색을 한다. 페북이나 인스타에 가끔씩 촬영 후기나 여행기를 올리면 ‘좋아요’와 ‘댓글’을 고정적으로 달아주는 친구들이 있다. 각종 전시와 공연을 빼지 않고 찾아와 주는 멤버도 있다. 나에겐 모두가 소중한 친구들이고 나를 특별하게 여기는 친구들이다. 고맙다. 그 친구들이 있어 살 맛이 난다.
그런데, 그런데. 무언가 허전하다. 칭찬을 들으면 한동안 기분이 좋아져 있어야 하는데 무언가 비어있는 구석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저녁에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하늘의 달을 쳐다보았다. 달. 그렇다. 우리는 저 달의 뒷면을 보지 못한다. 달은 지구 주위를 한 쪽 면만 보이게 공전을 하기 때문이다. 저들에게 칭찬을 받는 내가 허전한 이유가 저 뒷면 아닐까. 그들은 나의 뒷면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칭찬을 서슴없이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만약 나의 다른 측면, 나의 모자란 점, 약점을 그들이 같이 알게 된다 해도 똑같이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옛 성인들도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의 성장과정에서의 장단점을 훤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장단점을 꿰뚫고 있는 가족에게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단점투성이의 아버지를, 낭비가 심한 어머니를, 이기적인 자녀를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원이야 말로 대단한 가족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복한 놈이다. 나의 부족한 점을 알면서도 꾸준히 나를 만나고 있는 친구가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소중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 보는 것 뿐이다. 나를 칭찬하지도 질책하지도 않는다. 그냥 무덤덤하다. 옛 시에 그러한 글귀가 있지 않은가. ‘소인지교(小人之交)는 감여밀(甘如蜜)이요 대인지교(大人之交)는 담여수(淡如水)’라. ‘소인배들의 교우관계는 꿀같이 달콤하고 대인들의 교우관계는 물같이 담담하’라고. 대인까지는 안되더라도 그저 덤덤한 관계이다. 꼭 보고 싶거나 애타서 전화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와주는 친구이다. 아주 심심할 때 아무 용건 없이도 몇 십분을 통화할 수있는 친구다. 가끔 친한 사이에서 생기는 ‘하라’, ‘하지말라’ 등의 이성적인 머리로 생각하여 이의를 제기하거나 토를 달지 않는 사이다. ‘좋아요’나 ‘댓글’도 없는 친구이다. 아니 그게 없으니까 친구다. 칭찬을 너무 받아 건방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조차 없는 친구다.
나를 전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친구, 어떨 때는 섭섭하기도 얄밉기도 한 그런 친구다. 40년이 넘는 친구. 그저 만나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두병이면 족한 그런 친구. 대화도 남북통일에 전혀 지장이 없는 내용이다. 흔히 나오는 소재인, 부동산, 자녀교육, 골프, 정치, 건강 얘기 전혀 없다. 노자를 논하다가 장자로 넘어갔다가 모든 종교의 원리를 지나가다가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논하다가 애창 시를 읊다가 자기의 말 못할 치부를 들어내 보이다가. 뒤면을 보여주지 않는 달과는 달리 서로의 못난 뒷태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까발린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는 나의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일 것이다. ‘그런 장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런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 것이다. 전화를 걸면 ‘왜’가 아니라 ‘어’라고 답해주는 친구. 그런 물 같은 친구 하나가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