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싶은 인물
사진을 좋아할 때는 기다림의 미학을 만든 앙리브레송이 있었고, 여행을 좋아하니 국내 첫 세계 여행가인 김찬삼 선생이 부러웠다. 문학을 좋아하니 헤르만 헤세의 동서양을 아우르는 깊이가 닮고 싶었고, 시를 좋아하니 극적 대조를 보여주는 윌리엄 블레이크를 따르고 싶었다.
자연을 좋아하니 데이비드 소로의 도전이 부러웠고, 철학을 읽을 때는 버트런드 러셀의 생애가 눈에 들어왔다. 영화를 좋아하니 삶과 죽음에 초연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고전을 접하다 보니 거칠지만 넓게 섭렵하고 있는 도올 선생의 자신감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나의 삶에 스며들어 마음을 흔든 사람을 굳이 좁혀서 고르라고 하면 다음의 세 사람을 뽑고 싶다.
갑자기 무슨 조선 시대, 그것도 기생의 신분인 여성을 닮고 싶다니. 의아해 할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사회적 신분으로 봤을 때 내세울 것 없는위치에서도 그녀는 시, 서, 화, 창, 악기, 무용 등 모든 분야를 커버하는 진정한 예인이라 할 수 있다.
예인으로서의 다재다능함은 물론 벽계수, 서경덕과의 마음을 나눌 줄 알고 그 덕분에 맛깔스러운 명시조를 남겼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존심을 세울 줄 알았다. 당시 중국은 문화 예술마저 조선을 통제하고자 사신을 보내왔다. 조선의 예악을 금지시키고 중국의 음악을 숭배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신 앞에서 거문고를 타기로 되어있는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리 잘 연주하더라도 사신은 트집을 잡을 것이 뻔했다. 그녀는 고심 끝에 현이 없는 거문고를 들고 나섰다. 예상대로 사신은 자신을 능멸하는 것이냐고 화를 냈다. 이때 황진이는 조용히 상대의 심미안을 존중하면서 우리의 자존심을 살리는 발언을 한다.
자신의 높은 감각을 인정해 주는 말에 대인이 다가서며 묻는다. “만약 네 거문고 소리가 비루하다 하면?” “대인의 마음에 비루한 소리가 담긴 게지요.”
“네 소리가 값지다 하면?”
사신은 결국 작은 조선에 와서 중국보다 배포가 큰 여인의 태도에 감동하여 조선의 예악을 유지토록 하고 돌아갔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황진이는 훌륭한 ‘설득가’요 ‘외교사절’이기도 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그녀는 예술의 근본이 무엇에서 나오는지 알았다. 화려한 궁궐 속의 무용보다 민초들이 먹고 자는 무지렁이 시장 속의 춤이 더 백성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아는 진정한 예술인이었다.
두 번째는 우리 현대서예 머엉 선생님이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뜻도 되지만 그 속에 우주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다는 뜻도 들어있다. 이 분과 함께 십여년을 서예를 접하고 있는데 한번도 흐트러짐이 없다. 술은 말 술이시지만 말씀은 늘 정갈하다. 무엇보다 본인의 얘기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분이다. 다른 서예 선생도 모셔봤지만 거의가 본인의 얘기하느라 모임 자리가 늘 축축하다.
마음대로 놀고 떠들라고. 글씨도 항상 새로운 구도와 형태를 시도한다. 늘 몸으로 보여주는 스승, 과골삼천이라 했던가. 다산 선생이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하느라 복숭아뼈에 구멍이 세번 났다 하는, 그런 인품이다.
마지막으로 희대에 아날로그 사나이 류 시인이다.
카톡도 물론 없다. 그와 접하는 방법은 전화밖에 없는데 그것도 엔간해선 받지 않는다. 집에서도 전화를 처박아 놓고 있다가 우연히 지나가다가 벨소리가 울리면 받는단다. 참 무던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울림이 있다. 철학이있고 삶이 묻어난다.
열심히 SNS를 하고 조그만 자랑거리라도 있으면 냉큼 올려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경지의 상대이다. 그에게선 된장 냄새, 냉이 냄새가 난다. 도저히 도시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 도시에 살고 있다. 사실 조용한 산에서 혼자 도를 깨우쳤다는 선승을 나는 존경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서민들의 시장 바닥에서 뒹굴면서 득도를 하는 사람이 더 높은 도사라고 본다. 이 양반이 그런 부류다. 그의 흉내낼 수 없는 그여유와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닮고 싶은 인물. 왜 닮고 싶을까. 나와 비슷한 점이 있어서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갖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가 많은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