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조 노래가 있다.
‘창밖에 국화 심고 국화밑에 술을 빚어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 돋는다.‘ 또 시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湛湛露斯 匪陽不晞(담담노사 비양불희),厭厭夜飮 不醉無歸(염염야음 불취무귀)'라, '함초롬이 내린 이슬방울은 햇볕이 아니고는 아니 마르리, 오늘밤의 즐거운 이 술자리는 취하 지 않고는 못 돌아가리’
술이란 기다림과 만남이란 그릇을 채우기 위해 오랜 기간 숙성된 신비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멀리서 그 사람이 나타나면 벌써 보리내음이 따라온다. 넓은 들에서 바람에 사각대는 푸른 보리, 그 상큼하고 구수한 향이 춤을 추듯 다가온다. 보고팠던 마음이 파도처럼 일어 하얀 거품으로 다가서는 그리움. 기다리던 마음으로 데워진 속을 시원하게 채우고 나면 애탔던 마음이 찌꺼기처럼 흘러내리는 맥주잔. 맛이 변하지 않게 자외선 차단을 위한 갈색의 빈병들이 탁자 위에 비워지기 시작한다. 우리의 우정과 애정 또한 변하지 않는다는 다짐으로 시간은 외부와 차단되고 닫혔던 비밀의 문이 서서히 열리게 된다.
무언가 일을 제대로 시작하기 전이라면 기를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생각이 다져지고 정성이 발효되면 기포처럼 행동으로 터뜨리기 직전, 막걸리 한 사발이 필요한 것이다. 한 줄로 서서 모내기 한판이 시작될 때, 벼베기의 힘을 북돋아 줄 때, 일필휘지로 글씨를 휘갈기기 직전이 바로 그 시간이다. 깊은 데서 묵묵히 견뎌온 압력이 드디어 주인공들 몸에 투척되어 힘으로 기로 발포되는 것이다. 썰물처럼 비워지는 잔 너머로 밀물처럼 채워지는 흥과 신바람.
그것은 시작할 때도 엑셀 연료가 되지만 일이 끝날 때도 필요하다. 힘든 등산후나 운동 후, 낯선 여행지에서 어렵게 숙소에 안착할 때 그 한잔 속에 채워지는 그 안도감과 성취감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발효주는 가스로 생겨 터질 수 있기 때문에 병으로 담을 수 없다. 유연한 플라스틱 용기가 제격이다. 터질 것 같은 우리의 열정을 부드럽게 안아줄 가슴 같은 술이다.
스트레스로 소위 열불이 날 때가 있다. 이럴 땐 가슴을 희석시키고 가열된 열을 증류할 필요가 있다. 일차 발효된 술을 가열하여 찬물에 냉각시켜 만든 증류주, 즉 소주이다. 이미 나처럼 뜨겁게 가열되고 차갑게 식어봤으니 내 심정을 얼마나 잘 헤아릴 것인가.
또한 외롭고 고독한 저녁을 맞이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거나 내 주변에 그림자가 없는 저녁. 이럴 땐 위스키나 와인이 제격이다. 많은 시간을 지하 창고 오크통 속에서 지독한 고독을 숙성시켜 온 술이니 이 앞에서 고독을 논할 수 있으랴. 나보다 더 아픈 이를 만났을 때 그가 주는 위로는 서서히 개는 안개같이 환하게 안아주는 맛일 것이다.
물론 창밖에 묻은 술이 국화의 향기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기억이란 그릇이 깨지거나 몸과 마음에 부상을 입기도 하며 지하철 막차에서는 발효가 지나쳐 부패된 냄새가 달릴 때도 있다. 과유불급이라 모든 것이 적당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밥그릇처럼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눅눅한 몸과 마음에 따스한 생기를 불어주는 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온단다. 어느 술을 내어 볼까. 국화는 또 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