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걸침 Feb 13. 2024

이웃은 로또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마을에 누가 이사 왔는데 집값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주었다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하도 이상하여 물었다. 그 사람 왈, 옆집에 좋은 사람이 산다길래.   

        

시골촌놈이 서울 와서 살려하니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발은 도시에 있지만 마음만은 늘 자연의 품이 그리웠다. 한 번은 우연히 지나다 새로 짓는 집이 나왔길래 덜컥 계약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집안 어른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가장 피해야 할 세모난 모양의 땅에다가 그것도 하천변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하천을 파리의 센 강으로 보았던 것이다. 낭만적인 강변 베란다에 앉아 노을 진 커피를 마실 생각이었다. 한해 지난 여름 엄청난 폭우가 와서 강물이 집안으로 역류해서 들어왔고 주변의 집들은 모두 인근 고지대 학교 교실로 피신을 했다. 멋진 센 강이 그렇게 범람할 줄이야.         

  

정신을 차려 다들 산다는 아파트로 들어갔다. 닭장 같은 출입이 시작되었다. 엘리베이터 하나 두고 두 개의 문이 마주하고 있는데도 몇 년이 지나도록 저쪽 문하고는 인사도 없다. 도시가 유령들의 마을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다. 어느 날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조그만 손글씨로 방이 붙어있었다. 모월모시에 아파트 우리 동 앞 벤치로 나오라는 것이다. 바비큐파티를 한다는 것이다. 고기와 요리기구는 자기 집에서 준비할 것이니 부담 없이 내려오라는 것. 집안에 잠겨놓은 술이라도 있으면 갖고 와도 좋다는 정도였다. 모두 의아했다. 아니 이런 도심에서 시골 정자 같은 만남을 하자니. 그날이 되었다. 두 세집밖에 안 나타나나 했더니 앞에서 떠드는 소리에 열 집이 넘게 모였다.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만나던 유령들이 사람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술 한잔 돌아가니 공통화제가 생기고 취미가 나눠지고 다음 약속이 이어진다. 한 사람의 베풂과 열림이 흑백도시에 색깔을 입혀놨다.       

    

나중에 어쩌다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번엔 내가 나서서 그런 역할을 해볼까 했으나 마음만 있었지 실행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어가 보니 거실에 물이 한가득이다. 놀란 나머지 윗집에서 물이 내려왔나 해서 올라가 급히 인사를 하고 체크를 했는데 아무 이상 없었다. 아랫집에도 새나 해서 내려가 물어봐도 역시 문제없었다. 알고 보니 우리 집 식기세척기 수도꼭지가 빠져 물이 새 나온 것이다. 급히 밖의 조절기를 잠그고 수습을 했지만 수선을 피운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간단한 선물을 돌리니 그쪽에서 커피초대를 한다. 결국 아랫집은 커피친구가 되었고 윗집은 술친구가 되었다. 사람이 사는 동네가 된 것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엉뚱한 사건이 이웃을 만들어 주었다.     

      

모든 조건을 갖춘 동네라는 것 없을 것이다. 센 강이라 생각되는 멋진 동네도 나중에는 다른 난제가 생기듯이. 또한 아무리 좋은 경관도 매일 보면 감각이 둔해진다. 동네란 어느 곳이냐도 중요하지만 누구를 만나느냐가 더 중요할 수가 있다. 바로 이웃사촌이다. 슬리퍼를 끌고 나가 가볍게 농을 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어찌 보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 커피모임이 그렇고 동네 문화센터의 시모임이 그렇고 그림이나 서예모임도 좋다. 요새는 탁구친구가 나를 즐겁게 한다. 어떤 만남이건 몇 시간 동안 같은 놀이를 할 수 있고 끝나면 새털 같은 가벼운 이야기로 삶의 두께를 재어보는 것이다.    

  

비싸게 이사 오지도 않았는데 동네에 이렇듯 귀한 이웃이 있으니 이건 횡재다. 자, 오늘은 어떤 만남이 나를 기쁘게 할까. 모여서 판소리나 한 대목 할까 아님 탁구를 한판 칠까, 날도 그렇고 하니 술이나 한잔 걸칠까.

매거진의 이전글 술이 좋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