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무대. 객석은 절간처럼 고요해지고 조명은 꺼졌다.
관객이 앉았던 의자 하나하나에 꽂혀있는 나의 목소리, 나의 표정은 관객의 마음속 심연에 닿았을까. 나의 손짓은 저들의 힘없는 과제를 짚어냈을까. 25일간의 공연 속에 나의 혼은 얼마나 자랐을까. 다녀간 천여 명의 기대를 얼마나 채웠을까. 4개월간의 연습동안 같이 한 동료들과는 얼마큼 대화의 거래가 이뤄졌을까. 330마디의 긴 대사를 쳐내며 1시간 반 동안 무대를 나가지 않고 10여 명의 다른 배우들과 열연하던 나를 보낸다. 무대는 나 혼자의 코미디로 끝나지 않았는가. 유머는 과장과 냉소 사이에서 굳어버리지 않았을까. 객석 맨뒤에서는 나의 목소리가 우물 속에서 맴돌지 않았는가.
극의 주제에서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다시 나타난 것처럼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그들이 돌아와서 내가 가진 것, 아니 내가 훔친 것을 내놓으라고 할까 봐 그 사람을 아예 죽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애썼던 나. 사랑을 뺏길까 봐. 권력을 놓칠까 봐. 어느 영화에서도 그랬지. 유명화가가 병이 들어 죽으면 그림값이 더 올라갈 것을 기대했던 주변인들. 그가 건강을 회복하여 돌아오자 그를 죽은 인물로 만들려 시도하는 저 욕망의 군상들.
혁명은 언제 일어나는가. 원래 없을 때는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가지게 되었다가 다시 그것을 빼앗기게 되었을 때 혁명이 일어나는 것. 역사에서 증명하는 부분이다. 목사님도 예수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싫어하고 스님도 부처가 다시 나타나는 것은 반대할 것이라는 조크. 지금의 자리를 빼앗긴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돈과 사랑과 권력의 유지를 위해 각종 사기와 위조와 거짓말을 일삼는 중생들. 개인보다 집단으로 묶일 때 죄는 아무렇지 않게 증대된다는 역설. 그 중심에서 욕망을 지키려 분투했던 내가 떠나려 한다. 분장을 지우며 의상을 벗으며 나를 보낸다. 멀리멀리. 떠나고 있는 나는 인생이란 무대 위의 또 다른 나에게 죽비를 내려치고 있다. ‘잠깐 이 몸과 목소리를 빌려 누구의 역할을 하고 있는 나. 관객에게 나는 어떤 배우로 남을 것인가. 삶이란 불이 꺼지면 과연 배웅할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