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추억을 따며
고향의 산은 높다.
앞산을 겨우 기어 올라온 달은 하얗게 지쳐있다. 달은 그제야 산 능선을 따라 쉬엄쉬엄 걷기 시작한다.
우리가 마당에 누워 시시덕거리다 보면 달은 어느새 또 한 능선을 넘었다. 고향의 친구들은 그렇게 달빛을 쬐며 자랐고 좀 더 크면 저 달을 따러 올라가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우리는 웃음의 뚜껑을 따면서 늦여름엔 자두를 따고 가을엔 밤을 따고 밤엔 엄마 몰래 광의 문을 따고 들어가 곶감을 훔쳐다 나눠 먹곤 했다. 앞개울에 잡은 미꾸라지 배를 딸 때는 그렇게나 즐거웠다.
후길이는 선길이와 쌍둥이다. 두 시간 늦게 나왔다고 평생을 동생으로 살아야 했다. 선길이는 동생을 아낀답시고 엄하게 대하고 우리 보는 데서 야단을 많이 쳤다. 그래도 후길이는 실실 웃으며 형하고 노는 우리를 따라다니며 어울리고 싶어 했다. 앞산의 달이 키가 커질 때쯤 친구들은 하나둘씩 힘든 능선을 올라가기 시작했 다. 입의 풀칠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 남의 밑으로, 택시 기사로 나섰다. 나는 공부를 위해 고향을 떠났고 우리는 그렇게 뿔뿔이 흩어졌다.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후길이만 혼자 남아 앞산의 달을 독차지하였다. 내가 방학 때 모처럼 시골을 내려가면 너무나 반갑게 뛰어나와 그 누런 앞니로 웃어 주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외로운 날이 늘어가던 후길이에게 술이 늘어간 것이. 주정이 늘어나니 부모의 잔소리가 늘고 동네 주민과의 부딪힘이 늘었다. 어렵게 처 자를 만나 결혼식을 올렸지만, 한 해도 못가 여자가 야반도주하였다. 그러나 후길이는 경우가 밝은 친구였다. 마을 사람들이 어른들 체면 때문에 감히 얘기 못하는 부분도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고 하며 입을 열면 대부분 끄덕이게 한다. 그러나 그 때뿐 술 한 잔 들어가면 그 공덕을 까먹어버리고 만다. 정도가 심해 형인 선길이가 정신재활시설에 넣기도 했다. 그 소식에 나도 깜짝 놀라 병원을 방문해 몰래 사식비를 전해주고 오기도 했다.
나도 고향을 거의 잊고 있다가 오십 대쯤 아버지가 남긴 조그만 텃밭에 주말농장을 하기 시작했다. 후길이는 다시 집으로 풀려나와 있었다. 내가 내려갈 땐 멀리서 내 차 서는 것을 벌써 알아보고 뛰어나오곤 했다. 말도 안 했는데 우리 밭의 풀을 거의 매 놓았다. 내가 대접으로 술을 한잔 받아주면 그렇게 신이 나서 노래까지 불러댔다. 귀가 안들리기 시작한 그의 얼굴은 외로움으로 덮여 있었다.
어느 해 겨울엔 시골에 갈 일이 없어 뜸하던 날이었다. 아침 일찍 다른 고향 친구에게서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후길이가 갔단다. 농약 뚜껑을 땄단다. 얼마 전 에도 그런 적이 있어 동네 사람이 발견하고 위세척을 하고 살아났었다 했다. 그때 후길이 엄마가 하도 화가 나서 죽으려면 제대로 죽으라고 입에 없는 말을 내 뱉었다 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엔 엄마 말씀을 따라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한 것이다.
빈소에 놓인 사진 속 후길이가 나보고 한마디 하는 것 같았다.
뭐하고 긴긴 겨울 나 혼자 내버려 뒀냐고.
후길이는 뒷밭 자기 아버지 산소 옆 나무에 수목장으로 묻혔다.
얼마 전 내려가보니 후길이네 땅이 팔리고 후길이 누웠던 나무 자리 옆엔 새 컨테이너 하나가 들어 서 있었다.
난 그 텅 빈 공간을 멍하게 쳐다보다가 우리 밭으로 내려와 발갛게 익은 고추를 땄다.
마당에 누워 같이 달을 따자던 후길와의 추억도 한 땀 한 땀 같이 땄다.
조금 지나면 누워서 같이 뜯던 옥수수 딸 때가 되겠지.